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기부는 시간·비용 덜 드는 최고의 복지”

입력 2023-09-01 15:52:18 수정 2023-09-01 20:05:25

12년간 나눔운동본부 대표 맡아…나눔·헌신·환경 운동·개혁 앞장 서는 진정한 원로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나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실천하는 윤리의 가치를 역설했다. 이무성 객원기자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나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실천하는 윤리의 가치를 역설했다. 이무성 객원기자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만큼 여러 단체와 모임을 맡아 활동하는 '실천적 지식인'을 찾기 어렵다. 학문과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눔과 헌신·환경 운동·사회 개혁을 활발하게 펼쳐 '우리 시대의 참 어른', '살아있는 성현(聖賢)'이라며 따르고 존경한다는 이들이 무수히 많다. 손 교수는 나눔 운동을 전개하는 것에 대해 "기부는 즉각적이고, 시간과 비용이 훨씬 적게 드는 복지"라며 나눔 확산의 중요성과 당위성을 역설했다. 지난 12년 동안 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로 뛰다가 최근 고문으로 물러난 손 교수를 만났다. '윤리 실천'을 강조하는 손 교수는 "윤리라는 건 태도가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라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윤리의 핵심이므로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2세 교육과 국민의 자긍심 고취를 위해 위인을 기리는 일을 소홀해선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나눔에서 활동한 지난 12년은 어떤 시간이었나?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있다. 우리 국민에게 나눔의 중요성을 좀 일깨워 주지 않았나 한다. 나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나눔 강사를 양성하기도 했다, 전국의 여러 곳에 개설해 선(善)한 영향이 좀 있었을 거라고 본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같은 곳에서 모금 목표를 초과 달성하는 것을 보면 기부문화가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는 걸 느낀다.

-나눔의 가치는?

▶미국이나 영국 같은 선진국에 비하면 우리 기부문화가 많이 뒤떨어져 있다. 정부의 복지정책은 제도에 따라 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이고 비인격적이 되기가 쉽다. 반면 기부는 구체적인 상황에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 시간과 비용이 훨씬 덜 든다. 그런 점에서 아주 좋은 복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조 받던 나라에서 원조 하는 나라'가 됐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가 한국을 '거지였던 국가가 주는 나라가 됐다'고 표현했다. 그런 칭찬과 기대에 걸맞게 우리 국민들이 기부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면 한다.

-윤리는 공부하는 게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라고 역설해왔다. 무슨 의미인가?

▶윤리를 너무 복잡하게 이해할 필요가 없다. 인간의 도리를 지키는 것, 양심을 지키는 것 등 보다 간단하게 '다른 사람에게 직접 혹은 간접으로 해를 끼치지 않게 행동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면 그 사람도 나를 해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결과적으로 내게 손해다. 서로 피해 주지 않는 게 서로에게 이익이다.

-말처럼 그게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 같은 데?

▶물론 그렇다. 1960년대 초반 대구에서 군대생활을 했는데 부대에서 도둑질하지 않는 군인이 하나도 없다고 느낄 정도로 한심했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때 비하면 선진국이 됐다. 과거에 비해 법(法)도 좀 작동한다. 작은 도둑은 대부분 사라졌고, 큰 도둑만 남았다. 서민 다수를 대상으로 한 경제범죄나 정치인의 부정부패는 아직도 남아 있는데 엄벌해야 한다.

-여러 기념사업회 이사장이나 시상 심사위원장 등 봉사를, 그 것도 무보수로 하고 있다. 그 밑바탕은?

▶우리나라처럼 역사적 위인들에 대한 선양에 인색한 나라가 없다. 도시에 역사적 인물의 동상이 우리나라처럼 적은 나라가 없다. 서울에도 광화문에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두 분의 동상만 있을 뿐 큰 길 가의 동상을 찾기 힘들다. 미국은 다르다. 리버사이드 시(市)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동상이 도심 한 가운데 있고 양쪽에 마하트마 간디와 마틴 루터 킹 목사 동상이 서 있다. 위인과 영웅을 선양해야 그들이 청소년의 롤 모델이 되어 후세 교육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국민의 자긍심이 생겨서 애국심 또한 커진다.

우리 역사의 위대한 인물을 기리는 것이야 말로 2세 교육과 국민의 자긍심 함양에 최고라고 들려주고 있는 손봉호 서울대 교수. 이무성 객원기자
우리 역사의 위대한 인물을 기리는 것이야 말로 2세 교육과 국민의 자긍심 함양에 최고라고 들려주고 있는 손봉호 서울대 교수. 이무성 객원기자

손 교수는 나눔에 있어 모범을 보여 왔다. 지난해 12월에는 13억 원 상당의 재산을 내놓았다. 기부처는 그가 초대 이사장을 맡은 밀알복지재단. 재단 측은 장애인을 위해 써 달라는 손 교수 뜻에 따라 기부금을 종잣돈 삼아 '장애인 권익 기금'을 운영할 계획이다. 또 국제기아대책기구 이사장으로서 아프리카 장애인돕기에 앞장서고 있다. 손 교수는 장기려 기념사업회 등의 이사장과 각종 시상의 심사위원장 등의 직책을 30개 이상 맡았다. 통상 임기 3년에 연임까지 감안하면 100년 이상 몸 바친 셈이다. 손 교수는 거의 유일하게 회의비를 받은 곳이 있다며 신용호 교보생명그룹 창업자 기념사업회를 거론했다. 서울의 금싸라기 땅을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별 이익이 생기지 않는 서점을 낸 정신을 기려야 한다는 것이다. "식당을 하거나 임대를 줬으면 떼돈을 벌었을 겁니다. 직원들도 그런 건의를 했다고 해요. 하지만 신 회장은 서점으로 만들었어요. 거기에 가면 거의 모든 책을 구할 수 있고, 시민들이 책을 사지 않아도 거기서 읽도록 허용합니다. 이런 분들을 선양해야 합니다."

-권부(權府)나 정치권의 유혹이 적지 않았을 텐데.

▶한번은 청와대 수석비서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총리를 맡을 의향이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사실 입각 제의가 많았고, 선거 때면 공천을 주겠다는 정당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 사양했다. 저는 그쪽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능력이 모자란 인물이 중직을 맡게 되면 본인과 나라 모두에게 손해다. 또 스스로를 살펴보니 정치적인 센스가 약하더라.

-지금 살고 있는 경기도 광주시의 모기가 교수님 댁으로 다 몰려든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실천적 환경 운동을 벌이는 계기는?

▶하하, 살충제를 쓰지 않으니까. 유럽에서는 70년대부터 이미 지성인들은 큰 차를 타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다. 네덜란드에서는 총리, 총장, 정치인들도 어지간하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한다. 가능하면 자동차 대신 걷거나 지하철을 이용한다. 광주시에서 처음으로 집에 태양광 시설을 설치해 거기서 생산된 전기로 전기 자동차를 충전한다. 소비를 줄여야 환경이 좋아지고,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된다. 이발도 지난 40년 간 집에서 아내가 해준다. 아끼니 기부할 여유가 생기더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나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로 시끄럽다. 견해가 있다면.

▶제게 결론적인 주장을 할 만한 능력은 있지 않다. 다만, 야당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여당이나 정부 역시 옹호만 할 게 아니라 오염 수치 등을 철저히 조사해서 국민을 안심시켜야 한다. 정치 색깔을 빼고, 과학적으로 접근해 실사구시(實事求是) 쪽으로 나가야지 정치적으로 떠들면 시간과 에너지가 낭비된다. 홍범도 장군 동상 이전 문제는 제가 역사를 잘 모르는 데 왜 불필요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반적으로 돌아가신 분들의 허물은 덮어드리고 장점만 부각시켜야 후손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한국의 지도자들에게 한 말씀 해 달라.

▶과거 우리나라 지식인들, 예를 들어 선비들은 점잖고, 행실이 바르고 욕심 많이 내지 않았다. 지식 많고 말과 글에만 능하면 지식인이라고 생각 하는 것 같은 데 요즘 '지식 장사꾼'이 너무 많다. 잘못 됐다는 걸 뻔히 알면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 하지 않는 게 어떻게 지식인인가. 또 리더들 가운데 위선자들이 너무 많다. 국회의원이면 무식한 분들이 아닌 데 요즘 그들의 위선에 아주 아연실색을 한다. '내로남불'이 우리 국회의원들의 특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손봉호 교수 누구인가

지금은 경북 포항시가 된 과거 영일군 기계면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경주고와 서울대 영문학과를 거쳐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신학 석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철학 박사)를 졸업했다.

귀국해 한국외국어대 네덜란드어과 및 철학과 교수·서울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를 지냈고, 정년퇴임 후 한성대 이사장·동덕여대 총장·정보통신윤리위원장·세종문화회관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손봉호 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가 지난 2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취임식에서 지난 12년간 대표로 지낸 소회를 밝히고 있다. 독자 제공
손봉호 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가 지난 2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취임식에서 지난 12년간 대표로 지낸 소회를 밝히고 있다. 독자 제공

신앙인으로서 본업인 교수 뿐 아니라 사회활동가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1987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을 설립해 진보적 복음주의 계열의 개신교 시민운동을 주도했다. 또 초기 기독교 정신인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의 뿌리를 만들었다. 70년대부터 장애인 인권운동에 참여한 시민운동가이기도 하다. 오래 전부터 환경운동에 뛰어 들어 지금도 몽골에 80만 그루 나무를 심은 푸른아시아 이사장으로 있다.

가장 기억나는 일로는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를 이끌며 관철해낸 군 부재자 영외 투표와 대선 후보 TV토론을 꼽는다. 실제로 투표의 공정성 확립과 더불어 세몰이 유세 동원을 근절시켜 금권(金權) 선거를 추방하고, 대통령 선택의 합리적 선택 폭을 크게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향과의 인연을 소중하고 끈끈하게 이어가고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념사회에 참여했고, 2~3일에는 대구불꽃교회에서 설교가 예정돼 있다. 행동하는 신앙과 함께 이념은 절대적인 게 아니라는 걸 강조할 구상이라고.

'쉽게 풀어쓴 세계관 특강'·'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고통받는 인간'을 포함한 저서 및 논문 다수. 저서 '나는 누구인가'는 고교 독서 참고서에 수록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