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박미정(시니어매일 기자) 씨가 그리는 고 박방희 전 대구문인협회장

입력 2023-09-03 14:17:43 수정 2023-09-03 17:40:25

"동심을 가슴으로 노래한 분…지금은 어느 별에서 시 한 수 읊고 계시는지요"

사연을 보낸 박미정 씨와 고 박방희 전 대구문인협회장과 찻집에서의 즐거운 한때.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고 박방희 전 대구문인협회장. 왼쪽에서 두 번째가 박미정 씨. 본인 제공
사연을 보낸 박미정 씨와 고 박방희 전 대구문인협회장과 찻집에서의 즐거운 한때.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고 박방희 전 대구문인협회장. 왼쪽에서 두 번째가 박미정 씨. 본인 제공

청천벽력 같은 비보를 접하고 달려간 영전에는 나의 스승 박방희 선생님이 환하게 웃고 계셨습니다. 문학사랑방에서 문우들과 함께 시 공부를 하던 날들이 엊그제 같은데 인생사 황망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병마를 이겨내시고, 하마 우리 곁으로 돌아오시려나 노심초사 기다렸건만 그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침 문상을 가던 날이 입관식이었습니다. 저린 가슴을 달래며 선생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했습니다. 언제였던가요. "이승에서의 소풍은 아주 짧은 것이기에 후회 없이 잘 살아야 된다"던 선생님의 말씀이 귓가에 쟁쟁합니다. 보통 사람들의 '잘 살아야지' 하는 바람이 자신을 사랑하며 이웃을 돌아보는 삶이라면, 박방희 선생님의 생전의 삶은 문학을 위한, 문학에 의한, 문학이 전부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15여 년 전, 선생님을 문학교실에서 처음 뵌 순간부터 저는 호감을 느꼈습니다. 소탈하고 수더분한 모습이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를 보는 듯했습니다. 때로는 범접할 수 없는 위엄과 다재다능한 예술적 감각이 탁월하여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무엇보다 세속에 찌든 저를 아름다운 동심의 세계로 이끌어 주신 스승이기에 더욱 좋았습니다.

선생님은 아동문학으로 등단해 맑은 아이의 순수한 동심을 가슴으로 노래하셨습니다. 또한 시조 시인으로도 활동하며 현대 시조 100인에 선정 되기도 하셨지요. 시조, 동시, 자유시 등 전 장르에 주옥같은 명작중에서도 '이별' 시조는 제가 한 눈에 반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지금껏 한 별이다 두 별이 되는 거다 / 헤어진 반과 반이 서로를 잊지 못해 / 새도록 반짝이면서 잠 못 드는거다 / 몸은 멀리 떨어져도 마음은 지척이라 / 밤마다 애태우며 그리움에 반짝이다 / 눈물에 젖고 젖어서 보석별이 되는 거다"

몇 해전 다녀온 '촉촉한 특강'에서도 선생님은 자작시 '나무 다비'를 낭독을 마치고, 특강을 이어가셨지요. "나무야말로 태생부터 진정한 선물이며, 하늘을 향해 바로 서 있고, 겨울이 되면 잎들은 모두 버리고 맨몸으로 용맹적이다. 그 나무가 위로 손을 뻗어서 하늘을, 우주를 받치고 어루만지며 뿌리는 땅에 박고 지상과 하늘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며, 그 뿌리는 어둠 속에서 지구를 옮기고 있다. 또한 지구가 떨어지지 않고 계속 돌아 가는 것은 나무들이 지구를 붙잡고 있기 때문이며, 그래서 나무는 태생적으로 선사를 닮았다. 마침내 이 나무는 노쇠하여 아궁이 속으로 들어가 스스로 다비한다"던 말씀이 머리를 스칩니다.

어느 날, 선생님과 스산한 낙엽길을 걸으며 "동시는 어른이든 아이든 어린이의 마음과 생각으로 표현한 시"라며 "거기에는 특별히 어린이를 위한다는 전제도 없고, 오로지 문학으로서 동시가 있고, 동화가 있을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글 쓰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유이며, 이것저것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어야 최대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던 그 말씀이 머릿속에 생생합니다.

그리고 대구교육박물관 벽화길에서 만난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동시 '함께 쓰는 우산'은 메마른 제 가슴에 촉촉한 단비가 되었습니다. 평생 동심을 품고 살아온 선생님의 말씀을 되새겨봅니다.

"어린아이보다 더 자유롭고, 마음 가는 대로 해도 거칠 것이 없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잔다. 걷고 싶을 때 걷고, 쓰고 싶을 때 쓴다."

동시로 어린이의 마음을 노래하고, 어린이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셨습니다. 서점에서 만난 선생님의 10번째 시집 '누란의 미녀'가 유고시집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은 어느 별에서 시 한 수 읊고 계시는지요. 생전에 못다 이룬 꿈이 있다면 그곳에서 모두 이루시고, 이제는 고통 없는 세상에서 새처럼 자유롭게 훨훨 날아오르소서. 가을이 무르익으면 선생님과 함께 거닐던 두류공원 단풍길이 더없이 쓸쓸하겠지요. 선생님! 멀리 떠나시고, 해도 바뀌지 않았는데 벌써 그립습니다. 어찌하오리까.

선생님은 시를 통해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셨지요. 한 편 한 편이 가슴에 다가와 심금을 울리는 작품들은 선생님을 사랑했던 모든 이들이 마음에 오래토록 잊지 못 할 '큰별'로 기억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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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매일신문이 함께 나눕니다. '그립습니다'에 유명을 달리하신 가족, 친구, 직장 동료, 그 밖의 친한 사람들과 있었던 추억들과 그리움, 슬픔을 함께 나누실 분들은 아래를 참고해 전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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