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혁 소설가
지역의 건실한 중견회사에서 중역으로 퇴임한 지 벌써 20년을 째인 80대 초반의 J씨는 요즘 부모님 산소를 돌보는 것으로 소일을 하고 있다. 영업직으로 한 세월을 보낸 J씨는 비슷한 연배의 친구들에 비해 조경 작업이나 흙을 다루는 일이 서툰 편이었다. 게다가 시골 출신도 아니라 전답에서 허리를 숙여 일해 본 적이 없다보니, 벌초를 하고 흙을 골라 산소 주변에 화목(花木)을 심는 일이 처음에는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오늘도 J씨는 종묘상에서 백일홍 묘목 몇 단을 사서 사는 곳에서 차로 40여 분 떨어진 부모님 산소로 향했다.
누가 알아달라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왁자지껄한 등산회에 나가는 것도 이제는 부질없는 것 같고, 한때 싱글 플레이까지 했던 자신이 파크골프장에서 나무공을 뚝딱거리는 것도 영 재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동이 완전히 힘들어지기 전에 뭔가 의미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일주일에 하루 이틀 산소를 오간 것이 벌써 3년이 넘었다. 그간 부모님 산소는 조금 어설프기는 하지만 작은 정원처럼 바뀌어 갔다. 봉분 두 개에 대리석을 다듬은 묘석과 재단 하나가 전부였던 예전을 생각하면, 지금의 이 변화가 노년의 자신이 만든 하나의 이정표인 듯 싶어 괭이질을 하다가 몇 번 가슴이 뭉클해진 적도 있었다.
그런데 사실 J씨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이런 삶의 의미를 찾겠다는 거창함 말고도 또 하나가 있다. 70년대 초반에 입사해 2000년대에 퇴직한 J씨는 누구보다 세련된 월급쟁이였다고 자부했다. 재산도 연금도 보험도 그럭저럭 잘 쟁여뒀고 자식들 교육이나 혼사, 일가친척의 대소사를 돌보는 일에도 궁색하게 굴지 않았다. 무엇보다 절대 생색을 내지 않았다. 그것이 장남으로서 또 어른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30년여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는 단 한 번도 큰아들인 J씨를 집안 벌초에 부르지 않았다. 그 사실이 요즘 들어 싸리나무 회초리에 맞은 것처럼 J씨의 가슴을 아프게 찔러댔다.
벌써 추석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셋이나 되는 동생놈들이 전화가 없다. 하나뿐인 아들도 이제 쉰 살 넘긴 조카 녀석들도 매한가지다. 노구(老軀)를 움직여 저희들의 일을 대신해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을 텐데 안부 인사 한 번 제대로 묻지 않는 것이 마냥 섭섭하고 괘씸했지만 이번 추석에도 아이들을 불러 벌초를 지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대행업체의 인부 두엇이면 반나절에 끝날 일이었다.
백일홍의 여린 뿌리를 싸고 있던 비닐봉지를 벗기며 J씨는 쓴 입맛을 다셨다. 작년 봄에 어머니 산소 옆에 심어 놓은 연산홍이 두어 뼘쯤 더 자라 있었다. 잎새가 건강한 것이 이번 여름, 뿌리가 더 깊어진 모양이다. 문득 그 성장의 흔적을 살피는 것도 그리 오래 남지 않은 듯 싶어 J씨는 잠시 허둥거리며 산소 주변을 걸었다.
이거 전부, 처음부터 다 내가 한 것 아니냐. 아버지, 어머니 장례도, 석 달에 한 번 돌아오는 제사도, 너희놈들 혼사도… 당연하다는 듯 다 내 돈 들여서 한 것 아니더냐. 돈이 아까워서 이리 섭섭한 것이 아니다. 나도 이제 늙었고…. J씨는 거기까지만 생각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아이들 앞에서 꺼내지 않았던 말이니 올해도 그냥 넘기면 그만이지만,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라는 말을 애써 저리도 아끼고 있는 피붙이들이 마냥 섭섭해서 J씨는 오래된 산석(山石)처럼 말없이 아버지 산소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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