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같이 살자

입력 2023-08-31 15:25:45 수정 2023-08-31 18:18:33

유광준 서울취재본부 차장

유광준 서울취재본부 차장
유광준 서울취재본부 차장

지역이 위기다. 처음엔 젊은이들이 서울로 떠나서였다. 일할 사람이 없으니 공장이 문을 닫았다. 산업 기반이 무너지자 도로와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도 멈췄다.

구도심 상권이 흔들리고 문화 인프라도 척박해졌다.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지역 소멸 얘기까지 나온다.

지방정부가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먼저 기업 유치에 공을 들였다.

하지만 기업의 반응은 싸늘하다. '일할 사람을 구할 수 없어서 지역에는 공장을 세울 수 없다'는 하소연이 돌아온다.

지역민들은 고개를 갸웃한다. '처우가 좋은 기업이 지역에 들어선다고 하면 구직자가 줄을 설 텐데 인력난이라니!'

지난주 국내 대기업의 한 임원과 이 주제로 한참 얘기를 나눴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이 지역에는 없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됐다.

구체적으로 세계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기술경쟁력을 보유한 인력은 서울 생활을 고집하고 단순 작업을 맡기기엔 국내 인건비가 너무 비싸다고 한다.

민간이 움직이지 않자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라는 극약처방이 나왔다. 침체된 지역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을 마중물 역할을 기대했지만 아직까지는 지역민의 성에 차지 않는 분위기다.

효율을 좇는 '시장'은 수도권의 소화불량과 지역 소멸이라는 양극화를 촉진한다. 이 같은 각박한 환경에서 지역은 오늘도 생존을 위해 외롭게 발버둥을 치는 중이다. 지역균형발전은 헌법적 가치인데도 말이다.

설상가상 최근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역균형발전의 가치에 대한 공격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가 마무리됐다. 준비 부실로 세계적 망신거리가 될 뻔한 국제행사가 가까스로 예정된 일정을 채웠다.

그런데 일련의 과정에서 우려스러운 프레임이 감지됐다. '지방정부가 망친 행사를 중앙정부가 나서서 수습했다'는 식으로 분위기가 흐르는가 싶더니 급기야 '앞으로 지방정부의 국제행사 유치와 관련해 중앙정부가 보다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은연중 '촌에서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라는 인식의 확산으로 이익을 보는 무리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인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하지만 사실도 적절한 대응도 아니다. 태풍 '카눈'의 북상으로 새만금 야영장을 떠난 세계 각국의 스카우트 대원들은 전국 8개 시·도에 머물면서 다양한 문화체험 행사에 참가했다. 지방정부가 두 팔을 걷어붙이고 힘을 보탰다.

아울러 국제행사 유치를 통해 지역 발전 동력을 확보하려는 지방정부의 처절한 몸부림까지 도매금으로 폄훼해서는 안 된다. 서울도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다양한 국제행사 개최를 통해 도시 기반을 정비했다.

지역 숙원 사업인 달빛내륙고속철도 건설을 향한 '중앙'의 공세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4조5천억 원이나 되는 돈을 수요가 불투명한 곳에 쏟아부을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이다.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돼 온 지역주의가 촉발한 사회적 비용을 고려해야 한다. 달빛내륙고속철도가 수도권 일극 체제를 보완할 남부경제권의 뼈대가 될 수 있다는 미래지향적 안목이 필요하다.

횡축 철도망 확충을 통한 국토의 효율적 이용도 가능해진다. 대승적 차원에서 수도권이 지역구인 현역 국회의원들도 대거 달빛내륙고속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에 공동 발의자로 참여했다.

지역이 아흔아홉 칸 집을 지어 놓고 백 칸을 채우려고 욕심을 내는 과정이 아니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같이 살자. 함께 행복해야 진짜 행복하다는 말도 있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