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광복 78주년이다. 광복(光復)은 어둠에서 빛을 다시 찾았다는 뜻으로 우리에게는 일제로부터 독립한 것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 내에는 완전한 광복이란 통일과 함께 '잃어버린 우리의 역사를 되찾을 때'이며 아직은 '미완의 광복'이라는 주장이 적지 않은 힘을 얻고 있다. 역사는 궁극의 정신 유산인 까닭이다.
우리 역사를 보는 시각에는 크게 두 부류가 있다. 민족사관과 반도사관이 그것이다. 민족사관은 우리의 주 활동 무대를 대륙에서 찾고자 하는 데 반해 반도사관은 주 활동 무대가 한반도이다. 조선조 이래 근 650년 동안 우리 삶의 현장이 한반도였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반도사관에 보다 익숙하게 한다.
그렇다고 이 현실이 결코 우리 역사를 대표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는 조선조를 거슬러 올라 근 4천 년의 유구한 역사가 더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반도사관에 동원된 근거는 사대와 중화사상, 일제 군국주의가 맞물린 정치적 소산이어서 사실의 왜곡과 조작이 심하며, 소중한 사서들이 유실된 배경이라고 한다.
예컨대 고구려 건국 초에 '유기 100권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고조선과 그 열국 시대에 대한 기록이 분명하지만 안타깝게 실전됐다. 그나마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정사(正史) 삼국사기 같은 경우 2018년에 와서야 국보로 지정되었고 고려사는 아직도 보물급이다. 세칭 기록문화 대국답지 않은 일들이다.
이런 연고로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며 역사 광복을 생각하는 지사들은 반도사관을 단호히 거부하며, 우리를 포함한 중국 정사 등에 대한 철저한 교차 검증, 현지 탐문 등을 통해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였다.
◆민족사관 의식 가져야
그러나 우리 역사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의 동북공정을 맞았다. 동북공정은 글로벌 시대를 무색게 하는 분명한 역사 횡포이지만, 당시 학계 일부에서는 중국이 아무리 역사를 조작하려 해도 그 많은 사서를 어찌하겠는가 하며 느긋해했다. 더구나 한국 사회가 북핵 문제와 이념 대립의 소용돌이 속에서 역사 문제는 점점 멀어졌다. 이런 와중에 중국은 동북공정을 마쳤다고 한다. 과연 지금의 우리 역사 현장은 어떠한가.
중국에서 임의로 제작된 역사지도가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통용되고 있다. 특히 만리장성 지도는 가관이다. 모 교수는 중국국가박물원에서 만리장성을 평양까지 연결해 놓은 것을 보고 기가 찼다고 한다. 만리장성의 동쪽 끝은 하북성 산해관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우리를 무시하는 노골적인 날조 아닌가.
산동성 임기시에는 동이족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박물관을 조성했다. 역대 산동성 출신의 명사들을 열거하고 우리의 뿌리인 동이족을 교묘하게 중국사의 일부로 둔갑시키고 있다. 고대 동이족의 우월성이 중화주의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국내 모 역사연구소에서 고구려 서북 경계의 정확한 위치를 찾기 위해 내몽골 지역을 답사했는데 당시 현지 주민은 '고구려성'이 있는 곳을 안다며 안내를 해 주었고 현지 박물관장도 확인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방송에 나간 뒤 다시 답사를 했을 때는 박물관은 물론 그 지역 주민들 모두 입을 다물고 불응했다고 한다. 강력한 중앙의 통제가 있기 때문이며 진실이 두려운 까닭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광개토대왕비를 찾는다. 그 비석 옆에는 '오랫동안 명성을 떨쳐온 중화민족의 비석 문화'라고 5개 국어로 적혀 있는 안내판이 있는데 고구려가 자신의 지방정권이었다는 설명을 빠뜨리지 않는다.
◆반도사관 프레임에서 탈피해야
젊은 학생들에게 한국인들이 이 비석을 자기들 것이라 한다고 덧붙이면 어김없이 욕을 하며 화를 낸다고 한다. 순진한 학생들을 상대로 참으로 어이없는 적반하장이다. 정부는 이의를 제기했다고 하나 그때뿐이다. 되레 시진핑까지 나서서 세계를 향해 '한국은 중국의 일부'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고 '종주국 행세'를 하려 드니 참으로 눈 뜨고 보기 어렵다. 우리가 방조한 측면도 결코 적지 않다. 더 늦기 전에 우리의 모습을 복원하는 것이 근본 해결책이다.
첫째, 무엇보다 관점이 중요하다. '동이족에서 고조선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연원'을 명확히 하고, 사료에 근거하되 '우리의 관점'으로 원형을 찾아야 한다. 얼마전이다. 가야사 복원과 모 지역 천년사를 작성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그 연구 산물이 공개되자 지역 주민들은 분노했다.
가야의 건국 시기를 삼국사기가 아닌 일본서기를 인용해 근 400년의 역사를 도외시하고 일본서기에 나오는 국명을 우리 땅에 옮겨오는 등 임나일본부설을 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왜의 지배를 받은 적이 없고 우리가 일본 내에 분국을 설치했다며 항의하고 있다. 우리의 관점이 없고 객관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귀추가 주목된다.
둘째, 논란이 많은 요수(遼水)·갈석산·살수 등 '중요 지명의 위치'를 명확히 해야 한다. 연암 박지원은 '요동벌이 다 우리 땅인데 고조선, 한사군(낙랑군), 패수 등의 위치가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당대 사대부들을 향해 '만일 평양이 요동에 있었다고 하면 큰일이나 난 줄 야단'일 거라면서, '조선의 옛 강토는 싸움도 없이 쭈그러들고 말았다'고 개탄하고 있다. 이미 250년 전에 똑같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연구 성과가 있다. 전향적으로 따져 보자.
셋째, '이치에 맞지 않는 학설은 즉시 시정'할 일이다. 예컨대 1107년 윤관은 여진을 정벌한 후 9성을 쌓았는데 그 위치를 함흥평야라고 했다. 후일 여진족은 이 9성을 돌려받고, 이를 거점 삼아 금나라를 세워 요와 북송을 멸하게 되는데, 과연 함흥평야 일대로써 가당키나 한 일이겠는가. 최근 학계에서는 두만강 넘어 700리 선춘령에 경계비를 세웠다는 기록을 외면하기 어렵게 되자 9성의 위치에 대해 3개 설이 있다는 식으로 넘어가니 답답하기만 하다.
넷째, 반도사관의 프레임에서 탈피해야 한다. 이 프레임으로는 우리의 뿌리는커녕 간도협약으로 상실된 간도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간도는 청나라와의 국경 문제를 놓고 "나의 목을 자를 수는 있어도 나라 땅을 축소할 수는 없다"(吾頭可斷國疆不可縮)는 결연한 심경으로 담판을 했던 미결된 우리 강역이다. 간도협약이 무효화된 지금, 과연 정부는 중국과 어떤 담판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다섯째, 우리의 역사 광복은 단순히 과거의 영광을 되찾자는 것이 아니다. 국제사회에 책임 있는 국가로서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고 '홍익인간을 자유민주주의의 구심 이념'으로 인류와 공유하는 데 중점이 있다. 역사 광복은 이 대의에 부합해야 할 것이다.
뜻있는 국민들의 역사 광복 열풍은 갈수록 뜨거운데 사학계는 언제 긴 잠에서 깨어날쏜가. 하루빨리 제대로 된 역사 교과서가 나오길 고대한다. 그날이 바로 광복이 완성되는 날이 틀림없다. 정치권·관료·언론계의 역할이 필수다.〈끝〉
윤광섭, 예비역 육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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