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없는 날’ 휴식 강요에 비노조 택배기사들 발끈
'택배 없는 날'을 맞아 국내 대형 택배사 대리점에 소속된 택배기사들이 3일간 쉬는 가운데 쿠팡 로지스틱스서비스(CLS) 택배기사(퀵플렉서) 등 택배 없는 날에 쉬지 않은 택배기사들 사이에서 "휴식시간이 부족한 대형 택배사의 편의를 위해 만든 날에 왜 무조건 동참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현장에서 거세지고 있다.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 등 주요 택배사들은 14일 '택배 없는 날'을 기점으로 13~15일간 쉬는 반면, 쿠팡·마켓컬리·SSG 등 직매입 기반의 유통사들은 정상배송한다.
문제는 최근 민주노총과 일부 대형 택배사들은 "쿠팡 등 유통업체들도 택배 없는 날에 동참해야 한다"고 나섰지만, 정작 택배 없는 날에 쉬지 않은 비노조 택배기사들의 반응은 싸늘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택배 없는 날이라고 택배가 전부 쉬면 생활 물류가 마비된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퀵플렉서 기사들 "돈내고 휴가가는 것을 막기 위해 탄생한 '택배 없는 날'.. 동참 이유 없어"
14일 택배업계에 따르면, 노조와 대형 택배사들이 '택배 없는 날'에 전국 모든 택배기사들이 동참해야 한다는 논리는 크게 하나로 압축된다.
택배기사들이 평소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데, 이들에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정부는 주요 대형 택배사, 민주노총 택배노조와 함께 2019년부터 택배 없는 날을 만들었다.
노조는 이를 '사회적 합의'라고 부른다. 이 날이 제정된 이후 쿠팡 등 일부 온라인 유통사들은 자체 유통과 물류망을 이용해 자사 고객 제품을 배송하면서 택배 없는 날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이에 쿠팡은 이날 "'택배 없는 날'은 원할 때 쉴 수 없는 대기업 택배사를 위해 민주노총이 주도해 만든 산업계 유일한 휴무일로, 쿠팡,마켓컬리, SSG 등 자체 배송 기사들이 있는 곳은 연주 휴무가 가능해 택배 없는 날과 무관하며, 강제 휴무 후 대기업 택배사처럼 물량 폭증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쿠팡 로지스틱스(CLS) 소속 비노조 기사(퀵플렉서)들이 택배 없는 날을 바라보는 관점은 판이하게 다르다.
상당수는 택배 없는 날은 용차비(20~30만원)를 내야만 휴무를 하는 대형 택배사 관행 때문에 노조 주도로 만든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A택배대리점 대표 김모씨는 "대형 택배사 소속 택배기사들은 휴가를 가기 위해선 용차비를 내야 하는데, 과거 B대형택배사에서 배송 건당 1200~1500원씩(배송물품 200개 기준 30만원)을 하루 낸 적이 있다"며 "예비군 훈련 3일에 100만원을 냈다"고 했다.
근무하는 날에 휴가를 낼 경우 별도의 용차를 쓰면서 내 빈자리를 채워 넣는 것이다.
그는 "하루 20~30만원이면 모르겠지만, 2~3일씩 휴가를 가면 용차비 규모가 커지기 때문에 아예 날을 정해 쉬자고 정한 것 아니냐"고 했다.
일부 대형 택배사들은 경조사일 경우 기사에게 용차비를 지급하거나, 일부 대리점은 기사 용차비를 대신 내준다. 그러나 업계 전체의 일관된 제도로는 안착하지 못한 상태다.
또 다른 퀵플렉서는 "여름휴가는 반드시 가야 하는 건데, 휴가철엔 용차도 휴가를 내면서 비용이 비싸진다"며 "택배 없는 날은 내가 벌 돈을 휴가 때문에 지불하기 싫은 일반 택배기사들을 위한 날"이라고 했다.
반면 CLS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들은 대형 택배사와 달리 별도의 용차비가 없어도 휴가를 가고 있다.
A대리점 대표 김모씨는 "전체 기사가 약 250여명이 넘는데, 50% 이상은 이미 2~3일 이상 여름 휴가를 다녀왔고 나머지는 이달까지 갈 예정"이라며 "다른 대형 택배사와 달리 용차비가 없고, 백업 기사 30여명이 있어 동료 기사들이 자유롭게 휴가를 간다"고 설명했다.
대형 택배사가 '택배 없는 날'을 강조하는 또 다른 이유는 유연하지 못한 근무체계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반 대형 택배사는 월~토요일까지 쉬는 날 없이 똑 같은 날 같은 시간 근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백업 기사를 구하기 어렵고 이에 따라 휴가로 공백이 생긴 업무를 메워주기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쿠팡 CLS의 경우 365일 진행하는 쿠팡 로켓배송 시스템을 따라 근무일수를 조율한다. 일주일 동안 배송 하는 시스템 속에 평일과 주말 가리지 않고 쉬는 날을 택배기사가 스스로 정하는 선택권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B대리점 최모 대표는 "주5일 '월~수, 토~일' 일하거나 주4일 '화~목, 일' 등 다양하게 근무일정을 잡기 때문에 휴가를 가도 빈자리를 메워줄 기사들이 많다"며 "우리 대리점은 주4일 이내 근무하는 기사들이 전체 10%나 되고, 이런 시스템은 일반 대형 택배사들도 배워야 한다"고 했다.
◇"쉬는 택배기사만큼 하루 일당 20~30만원 급한 사람 많다…소비자들 "모든 택배 막으면 국민 생활 물류 위협"
결과적으로 유연한 근무체계 기반의 업무 배정은 자유로운 휴가가 가능한 근무환경을 조성했고, 택배기사 스스로 니즈에 따라 근무하는 풍토를 만들었다.
"무조건 8월 13일~15일은 택배없는 날이니 쉬라"는 노조와 기존 대형 택배사들의 요구가 현장에서 절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일반 택배사와 달리, 쿠팡은 자체 고객 주문 배송만 처리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각에서 다른 대형 택배사 물량이 쿠팡에 쏠려 기사들의 업무 강도가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택배 없는 날을 포함해 쿠팡 등의 배송물량이 늘어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일각에선 퀵플렉서들이 휴가를 자주 쓸 수 있는 등 기존 업계와 비교해 수입과 처우가 뛰어나지만 노조가 이를 함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A대리점의 경우, 일반 대형 택배사와 달리 택배기사의 60~70% 가량은 평균 월수입이 600만원 이상이고, 1000만원 이상 버는 기사도 적지 않다고 한다. 또 다른 대형 택배사와 달리 택배기사들이 추가 수입을 위해 뛰는 집하(영업) 부담도 없고, 대리점도 직접 고객 민원을 상대하지 않고 쿠팡에 맡긴다.
한 퀵플렉서 기사는 "경기침체 속에 하루 일당 20~30만원 벌 수 있는 택배기사로 투잡하려는 사람이 많다"며 "택배 없는 날이 소중한 사람도 많지만, 생계 때문에 일하려는 사람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노조는 마치 모든 택배기사들이 쉬는 것을 찬성한다는 현실과 동떨어진 왜곡된 주장을 펼치는 것 같다"고 했다.
택배없는 날을 두고 갈등이 커지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모든 택배를 다 중단하면 국민 생활은 누가 책임지냐"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2021년 전체 택배 물동량은 36억3000만개로, 하루 평균 물동량은 1억개에 달한다. 국내 경제활동인구 기준 1인당 이용 횟수만 128.4회다.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쿠팡 로켓배송, 컬리 새벽배송 등 유통업체도 배송을 하지 않으면 국민 생활 물류가 아예 마비될 것이다.
노조와 일부 택배사가 관행은 바꾸지 않고 국민 피해를 가중시키고 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쿠팡측은 "민주노총은 배송기사들의 휴무선택권을 뺴앗고 소비자와 판매자, 택배 기사 모두의 불편을 초래하는 선동을 멈춰주길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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