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무량판이 문제가 아니야

입력 2023-08-08 14:51:55 수정 2023-08-08 18:34:11

홍준표 경제부 기자
홍준표 경제부 기자

지난주 윤석열 대통령이 "무량판 공법으로 시공한 우리나라 모든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대해 전수조사를 조속히 추진하라"고 주문한 날, 우리 가족은 식사를 하러 길을 나섰다. 차를 타고 5분가량 이동했을 무렵 아내가 창밖을 보며 말했다. "저기는 '순살 자이' 아니겠지?"

그로부터 며칠 후 국토교통부에서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민간 아파트 293곳을 전수조사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날 저녁 인척으로부터 식사 초대를 받아 그의 집으로 갔다. 그가 몇 해 전 분양받은 집에 올 초 입주했고, 우리 가족이 그 집에 처음 방문했으니 집들이인 셈이었다. 오래간만에 만난 반가움을 표하고 웰컴 드링크를 마시며 한숨을 돌리자 자연스레 집 이야기가 화제가 됐다. 그러다 한 가지 부탁을 받았다. "우리 집은 무량판 아파트 아니겠죠? 한번 알아봐 주면 안 되나요?"

"대구 지역 신축 무량판 구조 아시는 분 올려주세요. 거르고 봐야죠." 이 무렵 온라인 대구 부동산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무량판 구조 진짜 괜찮을까요? 너무 불안해요" "우리 아파트도 조사해서 문제가 있다면 보강공사라도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 아파트는 기둥식인가요 무량판인가요? 정확한 정보 아시는 분?" 등 온라인에서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나 주변 아파트에 적용됐을지 모를 무량판 구조에 대한 불안감의 표현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아파트 건축 공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벽식 구조 ▷기둥식 구조 ▷무량판 구조다. 이 가운데 무량판 구조는 없을 무(無), 대들보 양(梁)이라는 말 그대로 대들보가 없는 구조다. 기둥식 구조에서 보 없이 기둥 위에 슬래브(콘크리트 천장)를 얹는 공법이다. 여기까지 들으면 '이래도 괜찮을까?' 싶다.

정말 무량판 구조는 위험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특히 주거동의 무량판 구조는 엄청난 부실시공이 아닌 이상 큰 문제가 없다는 게 전문가의 판단이다. 국토부의 장수명 아파트 기준에서 1급(사용 가능 햇수 100년 이상)은 기둥식 구조이고, 2급(65년 이상 100년 미만)이 바로 무량판 구조이다. 오히려 국내 초고층 아파트의 경우 비용 절감은 물론 장수명 성능, 건설 폐기물 절감 등을 위해 조금 더 많이 채택됐다.

게다가 정부와 자치단체도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시 허용 용적률 상향 조정과 분양가 규제 완화 등 인센티브 등을 주며 장려해 왔다. 보가 없으니 공간 활용에 유리하고 시공비와 공사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벽식 구조보다 층간 소음을 현저히 줄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심지어 한 1군 업체 임원은 "무량판 공법은 2010년대부터 널리 쓰였다"면서 "아파트 입주민과 택배 기사 간의 분쟁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하면서 재건축조합 등에서 지하 주차장으로만 택배 차량이 다니게 해 달라는 요구가 많았다. 여기에서도 무량판 공법이 해법으로 등판했을 정도"라고 전했다.

이 정도면 무량판 구조는 우리 사회의 요구가 불러온 산물이다. 공법이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무량판에 대한 오해를 거두고, 진짜 부실시공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할 때다. 아울러 이번 사태를 계기로 무량판 구조에 대한 이해도를 더 높이고 관련 지침을 체계화할 때다.

만약 다른 공법을 적용한 현장에서 사고가 나면 또다시 관련 공법을 적용한 단지가 어디인지, 혹여 그 집이 우리 집은 아닌지, 집값이 내려가는 것은 아닌지 공포감에 휩싸이게 할 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