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가난에 혹독한 폭염

입력 2023-08-03 20:17:50

김교영 논설위원
김교영 논설위원

'살인적인 폭염'이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올여름 온열질환 사망자(2일 기준)가 벌써 23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7명)보다 3배 많다. 사람들은 불볕더위와 사투를 벌인다. 냉방된 실내, 지하 상가, 건물 처마, 다리 밑을 전전한다. 손바닥만 한 그늘이라도 좋다. 이 땡볕에서 밭일하는 농부, 공사 현장 노동자, 폐지 줍는 노인들도 있다.

대구 중구 반월당 지하 상가는 피난터를 방불케 한다. 엉덩이 붙일 만한 곳이면 노인들이 자리 잡고 있다. 70대 어르신과 잠시 얘기를 나눴다. 홀몸노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집에서 아침 식사를 한 뒤 이곳에서 한나절을 보낸다고 한다. 그는 "여기 노인들의 상당수는 한 달 30만 원 정도의 기초연금으로 생활한다. 전기 요금 걱정에 에어컨은커녕 선풍기 켜기도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집 근처에는 더위 피할 곳이 없냐고 여쭸다. 그는 "은행이나 대형마트가 있지만, 솔직히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염천(炎天)에도 염치를 차리겠다는 자존감이다.

폭염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가혹하다. 에어컨 빵빵한 카페나 백화점에서 더위를 피하는 사람들도 많다. 돈 없는 사람들에겐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2020 폭염 영향 보고서'를 보면, 1만 명당 온열질환 발생률은 저소득층(의료급여 수급자·13.8명)이 고소득층(5분위·4.8명)보다 3배 높다.

행정안전부는 3일 폭염 상황에 대비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2단계를 가동했다. 폭염 위기 경보 수준은 4년 만에 가장 높은 '심각' 단계이다. 폭염은 '침묵의 재난'이다. 집중호우, 태풍처럼 산사태를 내거나, 건물을 부수지 않는다. 소리 없이 목숨을 앗아간다. 폭염은 풍수해와 함께 여름철 중대 자연 재난이다. 정부가 2018년 온열질환으로 48명이 사망한 이후 취한 조치이다. 질병청 집계를 보면, 최근 4년간 호우·태풍 등 자연재해 사망자는 218명. 이 중 폭염 사망자는 146명(66%)이다.

기후 위기가 심각하다. '극한 폭염'이 일상이 되고 있다. 폭염은 경제·사회적 약자에겐 생사가 걸린 문제이다. 폭염 정책의 획기적 변화가 필요하다. 이용도 낮은 무더위 쉼터, 미흡한 에너지바우처 등 기존 정책으론 부족하다. 기후 위기 시대에 냉방 복지는 국가의 의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