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달빛어린이병원 확대 계획 내놨지만... 의료계 "수가 조정 없이는 회의적"
달빛어린이병원 지정 아동병원, "차라리 반납하는 게 나아"
늦은 시간까지 어린 환자를 돌보는 '달빛어린이병원'이 열악한 환경에 시름하고 있다. 낮은 수가·인력 부족 등 열악한 소아청소년과의 현실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달빛어린이병원도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라는 지적이 계속된다.
지난달 28일 오후 7시에 찾은 대구 남구의 한 달빛어린이병원은 우는 아이 소리로 가득했다. 병원이 떠나가라 울던 아이는 이내 엄마 품에 안겨 주사실을 나왔다. 아이는 자기 손을 다 덮는 작은 주삿바늘을 손등에 꽂고는 기력이 없는지 팔다리를 축 늘어뜨릴 뿐이었다.
달빛어린이병원은 평일에는 오후 11시, 휴일에는 오후 6시까지 소아 환자들이 진료받을 수 있게 정부가 지정한 병원이다. 정부는 소아 야간·휴일 진료기관 확대로 응급실 소아경증환자를 분산시키고 응급실 이용으로 인한 불편 및 비용 부담을 경감하고자 2014년부터 달빛어린이병원 제도를 도입했다. 대구에는 남구와 동구 2곳에서 운영하고 있다.
◆오전에 왔다가 저녁까지 기다려 겨우 진료
문제는 병원 2곳으로는 몰려드는 환자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높은 업무 강도와 전문의 공백으로 기존 인력도 점차 유출되고 있는 탓에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날 3일 동안 오른 열이 내리지 않는 아이를 이끌고 병원을 찾은 박기윤(41) 씨는 "오전 10시에 왔다가 진료 접수가 마감됐다고 해서 야간진료로 예약하고 다시 왔다"며 "사람이 많을 때는 새벽 2~3시에 다음 오전 진료를 기다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야간진료 시작 시각인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 진료 예약은 빼곡히 차 있었다. 병원 관계자는 "4시간 동안 50명에 가까운 환아를 봐야 한다"며 "달빛어린이병원으로 지정된 아동병원은 운영시간 내 방문한 환자의 진료를 거부할 수 없다는 별도 조항이 있어 당직 의사가 초인적인 힘으로 환자를 봐야 한다"고 증언했다.
환아와 보호자도 지치기는 마찬가지다. 취재진이 만난 환아 보호자 대다수는 오전에 왔다가 예약이 밀리고 밀려 야간시간까지 기다린 경우였다. 저녁 식사도 거르고 병원 한편에서 2~3시간씩 진료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5시부터 진료를 기다렸다는 김세진(44) 씨는 10분 간격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대기 순서가 나와 있는 스크린을 확인했다. 그러나 빽빽이 차 있는 앞 대기자들을 확인하자 이내 고개를 떨구고 아픈 아이에게 돌아갔다.
김 씨는 "오늘 아침부터 아이가 열이 나기 시작해 오전에 바로 병원에 왔는데 예약이 다 찼다고 해서 저녁까지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 정부 대책에도 의료계는 회의적…"반납 고려"
'오픈런', '마감런'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소아환자가 당일에 진료를 보기가 어려워지자 올해 2월 정부는 달빛어린이병원을 100곳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대구시도 오는 2024년까지 대구의료원에 '달빛어린이병원'을 신설하고 응급실 소아전문의 인건비를 일부 지원하는 '24시간 소아응급진료 지원사업'을 마련하기로 했다.
정작 의료계는 회의적이다. 소아청소년과 의료 인력이 부족하니 업무 강도는 날로 높아지는데, 수가는 낮아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달빛어린이병원으로 지정된 아동병원도 자격 반납을 고려하는 실정이다.
병원 관계자는 "야간 근무를 기피하는 추세라 달빛어린이병원 지정 이후에 오히려 직원 구하기가 힘들어졌다. 야간 업무로 피로도가 높은 상황에서 소아 진료는 보호자까지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특징이 있어 이직률도 높다"며 "지금은 달빛어린이병원 지정을 반납하는 게 이득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의료계는 달빛어린이병원이 본래 취지에 맞게 운영되려면 달빛어린이병원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수가 조정 등 근본적인 처우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구기영 한영한마음아동병원 원장은 "일본의 경우 야간 소아 응급 진료에 대한 처우가 확실하다. 6세 미만 진료비는 50~70%, 3세 미만의 진료비는 330%~500%까지 높게 책정된다. 하지만 한국의 소아 야간진료 진찰료는 성인의 2~7%밖에 되지 않는다"며 "근본 원인을 찾고 거기에 맞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정부에서 내줘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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