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를 만나게 된다면 안부도 묻고 젊었을 때 이야기도 하고 싶은데"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저는 대구 달성군 화원읍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 중퇴 후 형님과 제과점을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오다 1967년 3월 입대 영장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키가 크다는 이유로 육군의장대원으로 선발됐다가 다음해에 베트남전쟁 파병 모집에 지원, 맹호부대원으로 베트남에 가게 됐습니다.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대부분의 군인들이 그렇듯이 베트남에서의 생활은 늘 매복작전과 교전, 적진 소탕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매복작전에 나갔다가 적이 설치한 크레모아 파편에 맞기도 했습니다. 다행이 방탄조끼를 입은 덕분에 목숨은 건질 수 있었지만 자칫 잘못했다가는 그 곳에서 돌아오지 못했을 수도 있지요.
쏟아지는 총알과 포탄 속에서 늘 하루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가고 나면 그때서야 겨우 부대원들의 얼굴이 보이곤 합니다. 주둔지로 돌아오면 젊은 군인들이 늘 그렇듯 전공(戰功)을 올린 이야기, 위험을 뚫었던 이야기, 때로는 이성(異性)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곤 했습니다.
살벌한 전장 속을 누빈 많은 전우들이 있지만 그래도 그 곳에서 정 붙이게 된 전우와 저를 도와줬지만 불귀의 객이 돼버린 전우가 생각나 이 자리를 빌어 그 때 이야기와 안부를 전해 봅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모를 이태준, 김화수라는 전우입니다. 이 둘은 같은 경상도 사람이어서 친하게 지냈습니다. 이태준 씨가 저보다 먼저 베트남으로 갔고, 김화수 씨가 저와 같은 시기에 베트남에 파병됐습니다. 나이 차이가 서로 한 살 차이라서 친하게 지냈습니다.
서로 친해지게 된 건 말투 때문이었습니다. 낯선 파병지에서 익숙한 경상도 사투리를 들으니 마음이 놓이는 부분이 있더군요. 그래서 고향을 물어보니 둘 다 대구라고 하더군요. "내가 달성 화원 사람이라 대구 잘 아는데, 대구 어디 사느냐"고 물어보니 둘 다 실토를 하더구만요. 이태준 씨는 경산, 김화수 씨는 청송 사람이었던 것이지요. 그 중 김화수 씨는 경기도 모처에서 옹기 만드는 곳에 있다가 왔다고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앞서 말한 두 사람은 파병 후 한국으로 무사히 돌아온 뒤 소식이 끊겨서 그립지만, 작전 중 전사해버린 전우 한 명이 또 그립습니다. 막상 전쟁터로 가려고 하니 알아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총은 훈련소에서 쏴 본 게 전부고 군장 싸는 것도 헤메고 있을 때 도와준 이가 있었으니 바로 고 유중호 씨입니다.
그를 알게 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작전에 투입됐습니다. 분대에서 첨병 역할을 하던 유중호 씨는 앞서 나가다가 그만 적군이 쏜 총알에 머리를 관통당하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교전이 벌어졌고 제가 기억나는 건 얼굴이 피로 범벅이 된 유중호 씨를 업고 내려가 헬기에 실었던 것, 그리고 나중에 무전으로 "이송 중 사망했다"는 말을 들은 것까지입니다. 제가 처음 겪은 작전이고, 총격전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를 처음으로 챙겨 준 이가 전사하는 모습까지 보았습니다. 전쟁의 참혹함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이지요.
생계를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던 젊은 날을 지나 지금은 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 대구시지부 달성군지회에서 국가·사회 발전에 공헌하고 있습니다. 간혹 TV를 보다 전쟁 이야기가 나오면 그 때의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그럴 때마다 아내에게 베트남 전쟁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매번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아내가 참 고맙습니다. 이태준, 김화수 씨를 만나게 된다면 안부도 묻고 고 유중호 씨 이야기와 더불어 당시 젊었을 때 이야기도 하고 싶은데….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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