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돈 벌어 딸 셋 있는 태국 돌아가려 했는데"…문경 외국인 희생자 띠얍씨 안타까운 사연

입력 2023-07-18 13:55:01 수정 2023-07-19 10:12:36

문경서 취직 행복한 미래 꿈꿔…남편 "남은 아이들 어떡하나"
공무원 십시일반 성금 전달

지난 15일 경북 문경의 한 농장 숙소에서 집중호우와 산사태로 숨진 태국인 여성 이주노동자 띠얍 씨의 장례가 18일 문경 화장장에서 치러졌다. 띠얍 씨의 영정을 든 남편과 유해를 든 동료가 슬픔에 잠겨 있다. 유해는 주한 태국 대사관을 통해 본국 가족들에게 전해질 예정이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지난 15일 경북 문경의 한 농장 숙소에서 집중호우와 산사태로 숨진 태국인 여성 이주노동자 띠얍 씨의 장례가 18일 문경 화장장에서 치러졌다. 띠얍 씨의 영정을 든 남편과 유해를 든 동료가 슬픔에 잠겨 있다. 유해는 주한 태국 대사관을 통해 본국 가족들에게 전해질 예정이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집중호우에 사망한 외국인 띠얍(32) 씨가 지난겨울 동갑내기 남편과 함께 문경에서 눈사람을 만든 뒤 기뻐하고 있다. 유족 측 제공
집중호우에 사망한 외국인 띠얍(32) 씨가 지난겨울 동갑내기 남편과 함께 문경에서 눈사람을 만든 뒤 기뻐하고 있다. 유족 측 제공

"4년 전 딸아이 3명을 태국 친정에 맡기고 행복한 미래를 위해 동갑내기 남편과 경북 문경으로 와 한국 사람보다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올해 연말 태국으로 돌아가 떨어져 있던 아이들과 함께 살 예정이었는데…."

18일 문경화장장. 집중호우로 사망한 띠얍(32) 씨를 떠나보내는 자리에서 남편 탭(32) 씨는 말을 흐렸다. 이 자리에는 띠얍 씨가 근무했던 오미자가공업체 대표도 함께 했다.

집중호우로 희생된 유일한 외국인인 띠얍 씨는 4년 전 태국에서 한국 농촌으로 돈을 벌러 온 세 딸의 엄마다.

13세, 10세, 7세 딸 셋을 태국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남편과 함께 문경 동로면 오미자가공업체에 취직해 오미자 농사일 등을 했다.

열심히 일하면 태국의 아이들과 온 가족이 모여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고 힘든 일이 있어도 늘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다고 주위사람들은 말한다.

이번 경북북부지역 집중호우에 희생된 유일한 외국인 띠얍(32) 씨. 유족 측 제공
이번 경북북부지역 집중호우에 희생된 유일한 외국인 띠얍(32) 씨. 유족 측 제공

한국에서 평생 처음 보는 눈을 보며 남편과 동심으로 눈사람을 만들고, 휴일에는 업체 사장가족과 함께 한국의 관광명소와 맛집 등도 둘러보면서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도 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매일 태국에 있는 아이들에게 SNS 등을 통해 한국 생활의 이모저모를 이야기하는 다정한 엄마였다.

18일 오후 집중호우에 문경에서 희생된 외국인 띠얍(32) 씨의 유해와 영정을 남편 등이 가슴에 안고 태국 대사관으로 향하는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문경시 제공
18일 오후 집중호우에 문경에서 희생된 외국인 띠얍(32) 씨의 유해와 영정을 남편 등이 가슴에 안고 태국 대사관으로 향하는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문경시 제공

사고당일인 지난 15일 오전 7시 14분쯤 부부는 출근하기 위해 숙소 밖으로 나왔다가 장대 같은 비가 오자 띠얍 씨가 옷을 갈아입겠다며 숙소에 들어간 찰나에 "우지끈" 소리와 함께 산사태로 토사가 밀려와 띠얍 씨는 실종됐다.

남편 탭 씨는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손쓸 방법이 없었다"며 "우리 가족도 무너지고 세상도 무너진 것 같다. 딸아이들의 슬픔은 어떻게 하냐"고 계속 울먹였다.

띠얍 씨는 사고 3시간이 지난 이날 오전 9시 30분쯤 사고지점에서 200m쯤 떨어진 한 과수원에서 주민에 의해 발견됐다.

경북북부지역 집중호우에 사망한 외국인 띠얍(32) 씨가 동갑내기 남편과 한국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 유가족 측 제공
경북북부지역 집중호우에 사망한 외국인 띠얍(32) 씨가 동갑내기 남편과 한국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 유가족 측 제공

사고현장을 멀리서 목격한 이 마을 전 이장 최택종 씨는 "폭우 속에 걸어가는 띠얍을 보았는데 눈감짝할 사이 사라졌다"며 "띠얍은 마을에서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주민들과도 정답게 지내온 터라 마을 전체가 슬픔에 빠졌다"고 말했다.

띠얍의 유해는 이날 주한 태국 대사관을 거쳐 본국으로 이송될 예정이다.

이날 띠얍의 장례식에는 남편 탭 씨를 두 차례나 만나 위로했던 신현국 문경시장을 비롯한 간부공무원들도 참석했다.

띠얍 씨의 안타까운 사연에 지역사회의 온정의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문경시 간부공무원들이 십시일반 모금한 성금 300만원과 문경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서 장례비용 310만원 등 610만원을 이날 남편 탭 씨에게 전달했다.

18일 오후 집중호우에 문경에서 희생된 외국인 띠얍(32) 씨의 영정을 남편이 안고 있다. 문경시 제공
18일 오후 집중호우에 문경에서 희생된 외국인 띠얍(32) 씨의 영정을 남편이 안고 있다. 문경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