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청소 작업자 구조하려다 1년째 의식불명된 공무원…고통받는 가족들

입력 2023-07-02 16:14:53 수정 2023-07-03 14:48:21

결혼 1년 차 새신랑, 지난해 죽곡정수사업소서 가스 중독 쓰러져
공무상 재해처리?…"지원되는 비용만으로 환자 감당하기 어려워"

지난해 7월 죽곡정수사업소에서 발생한 황화수소 중독 사고로 쓰러진 공무원 김성배 씨의 아내 이현주 씨가 대구 북구 모 병원에서 매일신문과 인터뷰를 하던 중 남편을 보살피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지난해 7월 죽곡정수사업소에서 발생한 황화수소 중독 사고로 쓰러진 공무원 김성배 씨의 아내 이현주 씨가 대구 북구 모 병원에서 매일신문과 인터뷰를 하던 중 남편을 보살피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마치고 일찍 올게."

여느 때와 똑같은 아침이었다. 결혼 1년 6개월 차 신혼부부는 평소처럼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다. 그날 남편은 친정 식구들과의 저녁 약속을 기억하곤 집에 일찍 들어오겠다고 했다. 한여름 무더위로 조금 지쳐 보이긴 해도 180cm가 넘는 건장한 체구가 그렇게 쉽게 무너질 것 같진 않았다. 출근을 준비하던 남편은 평소처럼 성실했고, 건강했고, 다정했다.

평소와 달랐던 건 남편의 신발이었다. 그날따라 낡은 운동화를 꺼내 신고 출근하던 뒷모습이 눈에 밟혔다. 다른 신발을 신고 갔다면 약속대로 웃으며 돌아올 수 있었을까. 그날 점심때부터 남편의 회사에서 사고가 났다는 뉴스가 인터넷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닐 거야' 되뇌던 아내의 가슴에 사진 한 장이 비수처럼 꽂혔다. 인터넷 뉴스 사진 속에는 낯익은 운동화를 신고 쓰러진 남자가 소방대원에 둘러싸여 있었다.

◆무너진 새신랑의 꿈

남편 김성배(40) 씨는 대구시 상수도사업본부 죽곡정수사업소의 정화조 청소 담당자였다. 지난해 7월 20일 오전 9시 45분쯤 지하 2층 저류조에서 청소 용역업체 직원이 황화수소에 중독돼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하자 작업자 구조에 나섰던 공무원 중 한 명이다.

이 사고로 저류조를 청소하던 작업자 1명이 가스 중독으로 숨졌고, 성배 씨는 사고 이후 1년 가까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극을 주면 통증에는 반응하지만 스스로 생각하거나 움직일 수 없으며 말도 하지 못한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성배 씨는 한창 신혼생활 중이던 행복한 새신랑이었다. 동갑내기 아내 이현주(40) 씨와 결혼해 예쁜 아이를 낳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삶을 꿈꿨다. 초등학교 교사인 현주 씨도 사고 6개월 전부터 휴직계를 내고 임신을 준비하고 있었다.

평범했던 부부의 꿈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보호장비 없이 사고 현장으로 들어간 그는 금세 맹독성 가스인 황화수소에 노출됐다. 대구경찰청은 당시 사고 현장에서 포집한 기체에서 황화수소 1천ppm 이상이 검출됐다고 밝혔는데, 이는 몇 분만 노출되더라도 사망에 이르는 수준이다.

현주 씨는 "신랑이 원래 안전에 굉장히 예민하고 집에서도 조금만 위험한 게 있으면 방독면을 쓰고 작업하는 사람인데 보호장비도 없이 그 위험한 곳에 내려갔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신랑이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 성향상 자기가 담당자고 책임자니까 사람 구하겠다는 생각으로 들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공상 인정?…부족한 간병비로 고통받는 가족들

지난해 10월 성배 씨가 공무상 재해를 인정받으면서 간병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됐지만 가족들은 그 혜택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르면 성배 씨처럼 씹고 말하는 능력이 없으면 간병 1등급에 해당하는데, 이때 지원되는 간병료는 1일 기준 전문간병인 6만7천140원, 가족‧기타간병인 6만1천750원이다.

그러나 실제로 간병인을 고용하면 드는 돈은 이보다 훨씬 많다. 현주 씨는 "우리 남편 같은 환자는 하루에 15만원, 16만원은 줘야 전문간병인을 고용할 수 있다"며 "비용 부담 탓에 가족들이 돌아가며 돌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기저귀 등 부가적으로 들어가는 위생용품 비용도 만만치 않다. 기저귀 두 박스만 해도 한 달에 약 15만원 정도인데 공무상 재해처리로 나오는 입원비는 한 달에 30만원이다. 보호자의 식대까지 포함하면 감당이 안 되는 수준이다. 현주 씨는 "환자에게 도움이 되려고 뭐든 더 해보려 하는데 현재 상태가 지속되면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각종 서류처리도 모두 현주 씨의 몫이다. 공무상 재해처리는 '사후 지급'되기 때문에 한 달에 400만원 가까이하는 병원비를 먼저 납부하고, 영수증 등 서류를 공무원연금공단에 제출해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다.

현주 씨는 "간병만으로도 버거운데 신랑 후견인이 되면서 온갖 서류를 떼러 다녀야 했다"며 "사고는 업장에서 났는데 뒤처리는 왜 가족들이 다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막막한 미래

이런 와중에도 성배 씨는 앞으로 기약 없는 치료를 계속 받아야 한다. 지금도 매일 물리치료와 전기치료 등 하루에 6시간 넘는 치료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가족들은 1년 가까이 환자를 간병하며 지칠 대로 지쳐있다. 아내 현주 씨와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는 성배 씨의 누나가 일주일에서 열흘 간격으로 교대하며 24시간 동안 성배 씨를 돌보고 있다. 최근 성배 씨 등에 욕창이 생기면서 밤엔 2시간마다 자세를 변경해 줘야 한다.

현주 씨는 홀로 견디기 버거운 상황을 호소했다. 그는 "환자가 빠르게 호전되면 간병하는 게 힘이 날 텐데 그런 것도 아니다 보니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지친다. 잠도 못 자고 하루 종일 간병한다는 게 너무 힘들다"며 "말도 안 되는 간병비 지원만이라도 나아졌으면 하고, 수사도 빠르게 진행됐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가장 바라는 것은 남편이 늦더라도 회복되는 것이다. 그게 전부다"라고 전했다.

지난해 7월 죽곡정수사업소에서 발생한 황화수소 중독 사고로 쓰러진 공무원 김성배 씨의 아내 이현주 씨가 23일 대구 북구 모 병원에서 가진 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남편과 눈을 마주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지난해 7월 죽곡정수사업소에서 발생한 황화수소 중독 사고로 쓰러진 공무원 김성배 씨의 아내 이현주 씨가 23일 대구 북구 모 병원에서 가진 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남편과 눈을 마주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한편 대구경찰청과 대구고용노동청은 지난해 8월 대구상수도사업본부 죽곡정수사업소를 압수수색하는 등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수사를 이어왔다. 지난달 1일에는 사고 관련 하청업체 직원 등 5명이 검찰에 넘겨졌다. 노동청은 대구시, 대구시 죽곡정수사업소장, 외주업체 법인과 대표 등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며,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