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를 꿈꾸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제172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 프레젠테이션(PT)에서 숨겨둔 무기 '여성'을 꺼내 들었을 때 축구 스타 손흥민이 떠올랐다. 그 직전 사우디 '오일 머니'가 이적료 6천500만 달러(약 835억 원)로 영입하려 한다는 보도와 마찬가지로 뜻밖이었기 때문이다. 절대왕정의 이미지가 고착화된 사우디의 달라진 면모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사실 사우디는 최근 유럽 스타들을 잇달아 끌어들이면서 축구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사우디 프로페셔널리그(SPL)에서 리오넬 메시의 영원한 라이벌 호날두가 뛰고 있고, 알 이티하드는 얼마 전 카림 벤제마를 영입했다. 연봉은 2년간 4억 유로(약 5천500억 원)로 추정된다. 유럽 축구계에서는 이미 은골로 캉테(첼시)의 사우디행(行)을 확정적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호날두가 최근 "2~3년 안에 SPL은 세계에서 중요한 리그 중 하나가 될 것이다"고 한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축구 변방 사우디의 이런 행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영국 프리미어리그(EPL)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구단주이기도 한 빈 살만 왕세자의 축구 사랑 때문이라면 오산이다. 그보다는 1차적으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는 인권 문제를 지우겠다는 속내다. 이른바 스포츠 워싱(이미지 세탁)이다. 나아가 국가를 완전히 뜯어고치겠다는 이행 플랜 중 하나라는 게 맞다. 이슬람 문화의 세계화를 노리는 사우디로서는 주목도를 높일 만한 콘텐츠로 스포츠만 한 게 없다. 축구로 한정해 보면 육성할 시간이나 능력이 없으니 돈으로 사겠다는 노골적 행태다. EPL은 이미 축구 흥행이 얼마나 부가가치가 큰 산업인지 보여줬다.
빈 살만의 사우디는 현재 '사우디 비전 2030'(Saudi Vision 2030)을 밀어붙이고 있다. 엑스포 유치는 물론 1천400조 원 규모의 네옴(NEOM)시티 건설을 꿈꾸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스포츠 산업도 그 일환이다. 축구에 앞서 e스포츠에도 무지막지하게 돈을 쏟아부어 게이머즈8이라는 총상금 4천500만 달러의 초대형 게임 대회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유에서 벗어나 첨단 기술과 민간 투자의 메카로 거듭나 나라를 대개조(大改造)하겠다는 의지를 산업 모든 분야에서 구체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일 수출 규제 현안을 푸는 데 4년이나 걸리면서 골든타임을 놓쳤고, 중국의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된 우리로서는 타산지석이거나 귀감이 될 수 있는 경우다. 산유국 중 한 곳에 불과하던 나라가 청사진을 만들어 하나하나 실현해 나가려는 모습에서 글로벌 경제 환경이 얼마나 급변하고 있는지를 절감한다. 인구 대국인 나이지리아와 인도네시아의 경제 규모가 2050년 한국을 앞지른다(골드만삭스 '2075년 글로벌 경제 전망' 보고서)는 대목을 떠올리면 우리나라의 저출산·고령화와 맞물려 답답해진다.
세계적인 경쟁력의 원자력 생태계를 초토화시키고, 포퓰리즘으로 나라 곳간을 텅텅 비게 하는 등 한동안 허송세월해 온 게 우리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주력 업종인 반도체마저 휘청거리면서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현실이다. 무엇보다 인식의 대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엑스포의 70개국 지지를 확보했다는 사우디에 맞서 "9회 말 투아웃 대역전을 하겠다"는 장담을 지키려면 자신감 하나로는 부족하다. 어디 엑스포뿐만이겠는가.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 따위야 아무렇지도 않다는 사우디의 모습이 글로벌의 새 질서를 예고하는 듯해 오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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