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여기는 구미, '문화창작집단 공터다'
원작<접견>으로도 알려진 <청중>(번역, 오세곤)은 구미지역을 거점으로 전국 활동을 하는 극단 '사) 문화창작집단 공터다'의 황윤동 대표(연출) 작품이다. 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연극불모지나 다름없었던 구미지역에서 연극으로 버텨내면서 '구미 아시아연극제'로 전국적인 시선을 받아왔다. 해외 퍼포머와 연출자, 예술가들을 초청해 다양한 워크숍을 개최하면서 구미연극은 황윤동으로 통하게 됐다. 구미연극의 출발은 1986~1987년도 극단현장 (구미 무대), 두루마기, 너나들이, 한마음, 국회 불모지 극단들이 활동하면서 구미연극이 형성하게 되었다. 현재는 사) 문화창작집단 공터다, 극단 늘 봄, 극단 날다, 청소년 극단 꿈꾸다가 활동하고 있다. 1995년도에 사) 한국연극협회 구미지부 윤곽이 형성되면서 구미청소년연극제(1999)를 개최하게 되었고 황 대표는 '소극장 공터다'를 개관하면서 본격적으로 구미연극을 재생(再生)시키게 되었다. 2010년부터 '구미 아시아연극제'를 개최하면서부터 구미는 경북연극의 통로가 되고 있다.
'사) 문화창작집단 공터다'는 극단현장(1986)이 모태다. 극단 <구미 레퍼토리>로 통합된 후 초대 김용원 대표와 2대 황윤동 대표를 거쳐 현재 사단법인으로 전환(2011)하면서 <산 밖에 다시 산>(2022), <작은 무대에 부는 바람>(2022)은 공연예술 중장기창작 사업 및 공연 창 제작 유통지원사업 작품으로 작품성을 평가 받았다. <명예로울지도 몰라, 퇴직>(2021,동경연극제), <아도가 남쪽으로 온 까닭은>(2021), <왕상허위>(2008, 구미시 승격 30주년 기념공연, 지역 역사 발견프로젝트) 등 대표적인 작품들을 지속해 발표해 왔다. 연극<삼장사의 용감>(2022)은 '제33회 경북연극제' 최우수 작품상, 연출상, 우수연기상을 받아 제40회 '대한민국연극제 in 밀양'에 경상북도 대표로 참가한 작품이 되었다. '문화창작집단 공터다'의 차별성은 연극 중심이면서도 탈 연극적인 활동이 두드러진다. 연극예술을 활용한 사회적 캠페인과 콘텐츠 제작을 하면서 '구미아이쿱생협'과 공동으로 탄소중립 실천 문화를 확산하고 있다.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 '종이 물병'캠페인을 벌이고 있는데 그 물(생수)맛이 색다르고 문화와 연극으로 연대하고 이어지는 사회적 기업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제7회 문학동네 동시 문학상' 대상 수상 작품인 <외톨이-왕>(임수현) 지역작가 작품을 공연화 하면서 구미지역을 기반으로 다양한 공연 콘텐츠 제작을 하고 있다.
◆연극 <청중> '전체주의를 무력화하는 한 인간의 '신념과 자유화'
작품<청중>은 대표적인 희곡작가이자 제1대 체코 공화국 대통령을 지낸 바츨라프 하벨의 자전적 이야기로 부조리한 작품이다.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분리(1993)되기 이전 작품으로 그해 비엔나에서 초연이 되었고 체코 공연은 정치적인 상황으로 1990년도에 할 수 있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1948년 2월 소위'평화적 정권 이양'을 통해 공산화되었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선동 전술로 국민들 지지를 확대하며 공산화를 이루려고 하던 시절이었다. 바츨라프 하벨은 정치인, 예술인, 시민들과 반체제 활동을 하면서 국가의 자유화를 갈망하였는데 바츨라프 하벨은 정치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정치적인 억압과 탄압에 시달리며 국가권력의 감시를 받아야 했던 작가는 통제와 억압, 삶의 모순과 부조리함, 자유화의 열망을 <정원 파티> <공문> <거지 오페라> <유혹> <재개발> <떠나가기> 등으로 표현해 왔다. <청중>은'프라하의 봄'이 실패로 돌아간뒤 '77헌장'으로 자유화를 위한 정치지도자로 유명해진 하벨이 정치적인 탄압을 피해 맥주 양조장에서 노동자로 일을 하면서 겪은 이야기가 내재하고 열망의 (민주자유화) 시대와 정치적 의미는 무거워 지는 작품이다.
민주화 열기가 뜨거웠던 한국 사회 80년대 '서울의 봄'과 맞닿아 있으며 해방 이후부터 제1대 이승만 대통령이 선출되기 이전까지 극심한 이념으로 갈등으로 시달려야 했던 한국 사회 현대사가 지나온 시간의 길이면서 바츨라프 하벨은 한국 사회 정치적인 지도자를 연상하게 하고 있다. 노골적인 정치적인 이념과 장면묘사, 체제비판의 서사적 표현과 출판 자유가 검열과 정치 탄압으로 제안되던 시기 '프라하의 봄' 이후 양조장에서 노동자로 일을 하는 바넥(정성호 분)과 맥주 양조장 감독관 슬라덱(김귀선 분)과 대부분 장면이 대화로 이루어진다. 작품은 대화로 이루어지는데도 하벨은 두 사람 대화 사이와 무대배경과 특정 장면의 설정만으로도 숨을 그림 찾기를 하듯 인간이 살아갈 수 없는 체제의 부조리함과 모순을 비판하고 있으면서도 국가는 정치적 체제와 이념 보다 억압받지 않는 '자유로운 인간의 삶'을 우선해야 한다는 바벨의 정치적인 신념을 담아내고 있다.
◆ '바츨라프 하벨'의 부조리에 대한 은유
무대는 체코슬로바키아 시절 낡은 맥주 양조장이다. 연극은 슬라덱 양조장 감독관이 코를 골며 잠을 자는 사무실로 바넥 (정성호 분)이 들어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무대로 맥주 상자들이 보인다. 좌측은 내부와 화장실로 통하는 문이 보이고 우측으로 지하 공장과 외부로 이어지는 출입문이다. 무대 중앙에는 원탁형 책상이 놓여있고 좌측 편 벽에는'맥주가 있는 곳, 고통이 없는 곳' 광고 포스터가 전체주의 체제 선동 구호처럼 붙어있다. "이 세상 사람들 다 믿지마. 다들 정말 개새끼들이지"로 부 터 시작되는 두 사람 대화에 맥주잔이 오고 가면서부터 마치 접견을 하는듯한 대화 장면들이 쏟아진다. 바넥의 정치적인 활동을 지지해 온 슬라덱은 바넥을 맥주 양조장에 일을 시킬 정도로 존경하는 정치적인 지지자다. 구호를 되돌려보자. '맥주가 있는 곳' 은 체코슬로바키아 공산 체제를 은유하고 맥주는 그 이념 체제의 민중들이며 '고통이 없는 곳'은 민중을 선동하는 이상적인 공산국가 체제를 의미한다. 맥주는 그 체제가 주는 풍요로움이며 민중을 위한 이념적인 공산체제는 '고통이 없는 세상'인 것이다. 공산화된 민중이 살아가는 천국같이 낙원의 세상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는 작품에서도 부조리한 상황을 만들어 은유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극 중 인물 슬라덱은 대화를 하면서 바넥한테 극이 끝날 때까지 반복적으로 맥주를 따라주고 바넥은 슬라덱의 맥주잔에 몰래 채워 넣으며 맥주를 거부하는 장면들이 연속해서 그려진다. 표면적으로는 바넥을 유도하는 인간적인 분위기와 웃음을 유발하는 설정된 장치로만 보인다. 반체제 인사이면서도 정치적인 지도자였던 바넥은 공산체제의 감독관이 따라주는 고통이 없어지는 맥주를 마시지 않는 것은 정치적인 내전과 체제이념의 갈등을 표면화하고 있는 것이다. 양조장 감독관으로 근무하면서 맥주를 혼자 즐기고 취하는 슬라덱은 전체주의 이념과 체제에 동화되어 고통이 없는 사회체제를 즐기고 있는 것보다 자유화되어 가는 욕망이 무기력해지는 상태가 된다.
극 중 대화에 정치적으로 탄압되어 양조장 노동자가 된 무덤 파던 부레셰, 믈리나릭, 코후트, 마르슈카, 조르제뜨 가수, 카렐코드 등 무수한 이름들이 등장하면서도 슬라텍은 그중 바넥이 아는 인물을 동경한다. 정치적인 지도자를 감시하고 자신도 통제와 감시를 당해야 하는 체제에서 슬라덱은 자유화를 열망하는 정치적인 이념과 희곡작가로 사회적인 비판을 해온 정치지도자로서 바넥을 존경하는 것은 체제의 불안정성과 전체주의의 한계 때문이다. 슬라텍도 탄압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면서'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장면과 대사를 통해 이념 대립으로 혼란한 체제의 체코슬로바키아 민중의 특성을 그대로 들어내 주고 있으면서도 슬라덱은 바넥을 향해 파루드피체 '맥주양조종책'이라는 은밀한 제안을 하면서 극은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자유화와 그 정치적인 노선을 지키려는 고뇌가 그려진다. 정부 감시를 받으면서도 바넥을 감시해야만 하는 체제의 모순과 억압체제 안에서의 고뇌들이 터져 나오고 슬라덱은 바넥한테 자신의 활동 보고서를 작성하면 양조 총책 관리자를 시키겠다는 은밀한 제안을 한다.
◆권력의 은밀한 제안과 그 사이
바넥의 노동 활동 보고서를 매주 당국으로 보고해야 하는 슬라덱은 " 아무리 애를 써도 자네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걸세. 몇 주가 지나도 말야. 그저 자잘한 일 몇 개 정도지. 가끔 근무 시간에 몰래 실험실에서 쉬는 것 같더군.(중략)" 한다. 바넥은 "스스로를 고발하는 짓만은 할 수가 없습니다. 제 신념에 어긋나는 일에 끼어들지는 않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중략)"로 은밀한 제안을 거절한다. 슬라덱은 "내가 당신들을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누가 알아주지? 그런 삶이 내게 주는 건 뭐지? 거기서 내가 얻을 수 있는건 도대체 뭐지? 뭘 기대하며 살지? 뭘? 말해봐?"하며 바넥 가슴에 머리를 파묻은 채로 울기 시작한다. 맥주 양조장은 바넥이 바라보는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 체제의 모형이다. 사무실처럼 인간의 자유로운 욕망의 통로가 밀폐된 전체주의 사회이다. 이 공간에서 발화되고 있는 정치적인 사회현상들은 동일화된 이념 체제 안에서도 감시와 억압, 불안과 좌절, 정치적인 탄압으로 민중과 인간이 자율성은 박탈당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전체주의 체제의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바벨과 민중의 신념은 1989년 체코(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정권 붕괴를 불러온 '벨벳 시민혁명'으로 이어졌고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극은 70분 동안 동선이 절제된 대화로 채워졌음에도 김귀선, 정성호 두 배우의 연기로 무대는 뜨거워졌고 연출은 <청중>을 통해 정치지도자들과 민중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들여주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연극이 연출적인 시선보다는 희곡을 온전하게 따라간 느낌이었고, 바넥의 마지막 장면은 정적(靜寂)이다. 맥주잔을 들이키는 장면의 의미는 발화가 안되고 모호해졌다. 작품으로 투영되는 연출적인 미장센을 살렸으면 어땠을까. 이번 작품의 장점은 희곡을 따라가는 연출의 속도와 배우들의 연기가 반세기의 희곡을 살려내고 있다는 것이고, 아쉬운 것은 다소 난해한 대사와 부조리한 장면 설정의 원작을 현실적으로 동시대의 문제로 한 발짝 더 들어가 바라봤으면 어땠을까 한다. 그럼에도, 황윤동 연출의 지역연극을 생존시키는 투지(鬪志)에 박수를 보낸다.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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