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찾지 못한 채 끝난 가창골 유해 발굴…"뼈 한 조각도 없어 가슴 아파"

입력 2023-06-13 15:33:40 수정 2023-06-13 22:11:10

빈손으로 끝난 유해 발굴…지형 변화·경작 등 이유로 유해 훼손 추정
"일회성으로 끝나선 안 돼…유족들 힘 모을 것"

13일 오전 대구 달성군 가창면 가창용계공원에서 한국선사문화연구원 관계자가 유해 발굴을 통해 발견한 유류품들을 공개하고 있는 모습. 신중언 기자
13일 오전 대구 달성군 가창면 가창용계공원에서 한국선사문화연구원 관계자가 유해 발굴을 통해 발견한 유류품들을 공개하고 있는 모습. 신중언 기자

"이제 한번 시작했으니까…. 실패하더라도 두세 번은 해봐야겠거든요. 우리는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야겠습니다."

73년 만에 이뤄진 6·25전쟁 전후 대구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해 발굴 작업이 별 소득 없이 마무리됐다. 유족들은 허탈한 마음을 일으켜 세우고, 진상규명을 위해 계속 나아갈 것을 다짐했다.

13일 오전 10시 대구 달성군 가창면 가창용계공원에 마련된 10월항쟁유족회 간이 사무실에서 '가창골 학살' 유족 자문회의가 열렸다. 발굴 조사를 수행한 한국선사문화연구원 관계자들은 유족 대표 5명을 만나 그간의 결과를 발표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와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은 지난달 25일부터 가창골 학살 희생자 매장지로 지목된 용계리 산 89-6 일대(225㎡)에서 유해 발굴 작업을 이어왔다. 해당 지역은 인근 주민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선정된 곳으로, 유해 약 30여 구가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날 복토 작업과 함께 유해 발굴 조사는 종료됐지만, 유의미한 단서는 찾지 못했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에 따르면 조사지에서 단추와 쇠붙이, 겨울옷 등 유류품이 20~30점 발견됐으나 가창골 학살 사건과 연관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윤병일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조사원은 "(유류품들은) 1980년 가창댐 증축 과정에서 사용된 것들로 보인다"며 "조사지는 경작이 이뤄졌던 밭이다. 실제로 유해가 가매장된 곳이라고 해도 경작 과정에서 훼손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발굴 작업의 자문위원인 노용석 부경대 국제지역학부 교수는 "이곳 일대는 가창댐 건설과 증축 공사로 지형 변화가 크게 발생한 곳이다. 일부 증언과 실제 조사 사이의 간극이 클 수밖에 없다"며 "또 다른 발굴 대상지인 상원동 역시 유해 훼손 가능성이 있다. 추후 조사에선 이 간극을 좁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간절했던 만큼 실망도 컸다. 유족 대표들은 일련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고개를 떨궜다. 가슴이 답답한지 입술을 깨물기도 했다.

채영희 10월 항쟁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장은 "조사지 면적이 너무 좁아 가능성이 높다고 보진 않았는데, 뼈가 한 조각도 나오지 않으니 마음이 아프다"며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소식만 기다렸다. 전화가 울리면 가슴부터 뛰었다"며 울먹였다.

비록 원했던 결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유족들은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다. 억울하게 죽어간 아버지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밝은 곳으로 모시고자 하는 일념 때문이다.

채 회장은 "유해 발굴은 일회성으로 끝나선 안 될 일이다. 비록 이번엔 실패했지만, 매장 가능성이 있는 곳이 남아있다"며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유족들이 힘을 모아 다음 발굴 계획을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은 이번 조사 과정을 정리한 결과 보고서를 작성해 8월 중 진화위 측에 제출할 계획이다.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조사원이 유족들에게 발굴 작업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신중언 기자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조사원이 유족들에게 발굴 작업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신중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