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조국의 ‘길 없는 길’ 그 끝은 어디일까

입력 2023-06-12 20:11:54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을 방문해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났다. 그리고 페이스북에 "지도도 나침반도 없는 '길 없는 길'을 걸어가겠다"고 썼다. 문 전 대통령과 인연, 함께 한 일 등도 구구절절 나열했다. 그 글에서 그가 내년 총선 출마를 결심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조 전 장관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기소돼 올해 2월 1심에서 유죄를 선고(징역 2년)받았다. 항소심과 상고심이 남아 있지만 자녀 입시 비리와 관련, 이미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배우자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와 공모 혐의를 받는 부분이 있어 조 전 장관 역시 대법원에서도 유죄 판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나라 법은 재판 중인 사람의 출마를 제한하지 않는다. 조 전 장관의 출마는 오직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 재판 중에 출마한 정치인들이 이미 있었다. 다만 그들의 혐의는 한국 사회의 '역린'(逆鱗)이라고 할 수 있는 입시 비리, 병역 비리와 관련한 사항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들 사건은 국가적 '이슈'가 되지도 않았고, 그들의 혐의에 대한 국민적 평가가 조 전 장관의 경우처럼 극명하게 갈리지도 않았다.

조 전 장관이 내년 총선에 출마한다면 말 그대로 '길 없는 길'을 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만약 당선된다면 그는 한국 사회에 '일찍이 없었던 길'을 만든 선구자가 된다. 이제 어떤 죄로 하급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이라도 거리낌 없이 출마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국회의원 임기 중에 유죄가 최종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하면 '정치 탄압'이 된다. 상식과 이성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괴력난신(怪力亂神)의 시대가 도래하고, 한국의 '사회상'(社會相)이 통째로 바뀌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를 구성했던 세력들은 '정의와 상식의 기준 자체를 바꿔 버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세력들은 어떤 혐의가 드러나도, 설령 대법원 유죄 판결을 받아도 '진실은 따로 있다'는 '대안 현실'을 지지층에게 끊임없이 퍼뜨려 왔다. 민주당의 한명숙 전 총리 무죄 주장, 유시민 작가의 "대안적 사실을 제작해 현실에 등록하면 그것이 곧 새로운 사실이 된다"는 발언 등이 그런 예다.

사실 문 정부 5년은 거의 전부가 '대안 현실'이었다. 그 결과가 국가부채 1천조 원, 일자리 폭망, 자영업 박살, 부동산값 폭등, 전기료 폭탄, 전세 대란, 극심한 빈부격차 등등이다. 그럼에도 문 전 대통령은 "5년간 이룬 성취가 순식간에 무너져 허망한 생각이 든다"라고 했다. 조 전 장관 역시 "문 정부의 모든 것이 부정되고 폄훼되는 역진과 퇴행의 시간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전 장관이 총선에 출마한다면, 대한민국은 중대한 결정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대안 현실'을 사실로 받아들일 것인지, '대안 현실'은 거짓이고, 거짓에 의지하면 망한다는 것을 아는 사회로 남을 것인지.

참 궁금한 한 가지.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장관이 지금까지 겪었던 고초만으로도 저는 크게 마음의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번 복기해 보자.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을 임명했다. 지명 단계부터 개인적 문제로 엄청난 논란에 휩싸였음에도 대통령은 굳이 임명을 강행했다. 하지만 장관은 36일 만에 사퇴했다. '마음의 빚'이 있다면 어느 쪽에 더 크게 있어야 할까? 문 전 대통령은 5년 내내 잘못한 국민에게는 '마음의 빚' 따윈 없는 듯한데, 조 전 장관에게는 무슨 마음의 빚이 그토록 큰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