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김창곤(굿모닝마술사) 씨의 여동생 고 김순복 씨

입력 2023-06-18 13:47:55 수정 2023-06-18 17:35:16

"'오빠∼하모니카 어떻게 불어?'라고 물어볼 때 관심 가지고 챙겨 봤어야 했는데…"

김창곤(사진 왼쪽) 씨가 1984년 동생 김순복 씨와 함께 촬영한 사진. 가족 제공.
김창곤(사진 왼쪽) 씨가 1984년 동생 김순복 씨와 함께 촬영한 사진. 가족 제공.

순복아! 오빠다. 올해가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니가 우리 곁을 떠나 저 먼 하늘 나라로 갔는데 벌써 올해도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 세월이 참 빠르구나. 이렇게 세월이 빨리 흐르고, 너도 일찍 세상을 떠날 줄 알았다면 좀 더 잘 해주고, 한번이라도 더보고, 전화라도 한번 더 할 것인데 하는 생각에 오빠는 가슴이 너무 아프고 슬프다.

네가 혈액암을 앓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너 혼자 끙끙 앓았을 걸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 2년 동안 니가 아프고, 힘들었던 걸 눈치 못 챈 나 자신이 너무 원망스럽게 느껴지는구나. 아프기 전까지만 해도 밥도 맛있게 잘 먹고, 건강한 모습이었기에 그렇게 큰 병에 걸렸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너랑 가끔 전화 통화할때 목소리에 힘이 없길래 '심적으로 힘든 일이 있나?' 하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지. 오빠의 무심함과 소홀함을 용서해다오.

순복아! 그동안, 너와의 기억을 정리하면서 네가 한 말 중에 "오빠~ 서문시장 한번 가보고 싶어", "오빠~ 나도 중학교라도 나왔으면 좋았을 걸", "오빠~ 하모니카는 어떻게 배워?" 이 세 마디가 지금도 내 가슴을 찌른다. 아마 이 세 말은 내가 죽을 때까지 평생 못 잊을 것 같다.

나는 10살, 너는 8살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너는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집안은 어렵고, 결국 너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15살 어린 나이에 가족과 고향집을 떠나 대구로 돈을 벌러 가야만 했지. 그렇게 15년을 대구에서 일 하면서 늘 가족에게 생활비를 보내고, 오빠인 내 학비도 보태고, 평생을 엄마랑, 나랑, 은경이랑, 교회밖에 모르고 살았지.

대구에서 일하던 때 그나마 유일한 낙이 쉬는날 서문시장 다니면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군것질 하는 것이었다며? 그래서 병석에 누웠을 때 "오빠~서문시장 한번 가보고 싶다"고 했나 보구나. 너 살아있을 때 엄마와 널 대구로 오라해서 서문시장도 가보고, 대구 지상철도 타보고,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옛날 추억도 이야기 했었어야 했는데 이젠 그렇게 할 수 없게 됐구나. 오빠가 너한테 왜 그렇게 무심하고, 소홀했는지 정말 한이 맺힌다.

순복아! 니가 고등학교까지 검정고시를 합격했다는 말은 니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알았다. 얼마나 많이 힘들고 고생했니? 그래서 생전에 나한테 "오빠~ 나도 중학교라도 나왔으면 좋았을 걸" 했었구나. 네가 내 학비도 보태주고 한 덕분에 나는 공무원 생활이라도 할수 있었는데 나는 너한테 뭐라도 해준것이 없었구나. 니가 그동안 고생하면서 도와준것을 직접 너한테 말은 한번도 말 못했지만 항상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었다. 살아 있을 때 너랑 애기도 많이 못해보고, 입원해 있을때 간병 한번 못한것이 이 못난 오빠는 한이 맺히고, 눈물이 난다.

순복아! 더 안타까운 건 이제 니 아들, 딸, 둘다 공무원이 되어 좀 살아 볼만하고, 결혼도 한명 못했는데 니가 이렇게 세상을 떠났구나. "오빠~하모니카 어떻게 불어?"라고 물어볼 때는 자식들도 다 취직하고 홀로 남아있을 때 외롭고, 답답한 마음을 풀어보고 싶어서 나한테 물어 보았을 것인데 내가 관심을 가지고 일찍 챙겨 봤다면 병도 극복하고 더 오래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순복아! 오빠는 혼자 산행 갈때나 혼자 있을때는 니 생각이 많이난다. 산행중에 산길에서 다람쥐가 앞을 왔다갔다 하고, 나무에서 산새가 울때는 마치 니가 환생해서 "오빠 나여~"하고 꼭 부르는 것 같아, 나도 순복이야~ 하고 속으로 불러 본단다. 그러다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하늘 한 번 바라보고, 나무 한번 쳐다 보면서 순복아 거기서는 고생하지 말고, 행복하게 잘 살아라 하고 허공에다 속으로 말하곤 한다.

항상 네게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제대로 보답해 주지 못한 채 떠나버린 너..엄마와 나와 은경이만 생각하면서 고생한 너..네 어린 시절 대구에서 남원까지 버스만 세 번을 갈아타고 가방하나 둘러맨 채 "엄마~"라고 부르며 집으로 들어오는 네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이제는 더 이상 그 모습 볼 수가 없구나. 이제는 "엄마가 해준것은 뭐든지 다 맛있어" 하면서 음식도 맛있게 먹는 모습도 볼수가 없고, "은경아 니가 준것은 뭐든지 다 좋아" 하는 소리도 들을 수 없구나. 그래서 화장할때도 은경이가 준 목도리를 하고 갔구나.

순복아, 너는 아마 교회에 열심히 다닌 신실함 때문에라도 천당에 가 있을 것 같구나. 그 곳에서 살아 생전 누리지 못한 것 많이 누리고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란다. 돌아가신 할머니, 아버지, 작은아버지, 꼬마도 거기서 만나 봤겠지? 내가 갈 때까지 잘 지내고 있어라, 지금도 니가 너무 보고싶고, 너무 그립구나, 순복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