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김민경 씨의 아버지 고 김영완·어머니 고 백옥화 씨

입력 2023-06-11 14:21:54 수정 2023-06-11 17:49:25

"어릴 적 못 했던 공부 원 없이 하고 있습니다…이제 그만 미안해하셔도 됩니다"

김민경 씨가 18세 설날 때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앞줄 왼쪽 첫 번째가 아버지 고 김영완 씨, 두 번째가 어머니 고 백옥화 씨, 뒷줄 오른쪽 첫 번째가 김민경 씨. 가족 제공.
김민경 씨가 18세 설날 때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앞줄 왼쪽 첫 번째가 아버지 고 김영완 씨, 두 번째가 어머니 고 백옥화 씨, 뒷줄 오른쪽 첫 번째가 김민경 씨. 가족 제공.

"'철커덩 철커덩' 속 빈 철 필통 소리가 요란하다. 가방이 없었던 시절 난 보자기에 책과 철로 만든 필통에다 몽당연필 두 자루 지우개 하나를 보자기에 싸서 허리에 묻고 십 리 길을 뛰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그 비를 온몸으로 다 맞아야 했고, 버스를 타려니 돈이 없었다.

당시 버스요금이 3원이었는데 늦은 날이면 버스 정류장에서 '저 좀 태워주세요.' 를 몇 번이나 외쳤는지 모른다. 그리고 마음씨 좋은 차장 언니를 만나면 공짜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갈 수가 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학교에 다니던 중, 어느 순간 내 허리엔 책이 아닌 동생이 업혀있었다. 그렇게 난 공부를 포기하고 동생을 키워야 했다."

위의 글은 저의 어린 시절의 한 때입니다. 1947년, 어머니께서는 내 위 언니를 임신한 채로 아버지를 따라서 북한에서 월남하셨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서울 영등포에 정착하셨고 그 당시는 아무 땅이나 집을 짓고 살아도 괜찮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장 먹고사는 게 문제였습니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했지만 늘 부족한 살림에 어머니께서도 일터로 나가셔서 일을 하셨답니다. 그럭저럭 살다 보니 어느새 우리 4남매가 태어났고 그중 저는 둘째 딸로 어머니를 대신해 남동생과 여동생을 돌보아야 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항상 "미안하다, 먹이지도 못하고 공부도 못 시키고…" 라고 하시며 "우리 둘째 공부만 시켰으면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텐데" 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이제 그 소원을 풀어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 지금 그렇게도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며 살고 있습니다. 2022년, 저는 영남이공대학교 신입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릴 적 하지 못했던 공부를 마음껏 원 없이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혹시 하늘나라에서도 미안해하고 계신다면 이제는 그만 미안해하셔도 됩니다.

아버지, 어머니, 전 지금 많이 행복합니다. 비록 나이는 70줄에 섰지만, 마음은 청춘이랍니다. 어머니께서 끼니때마다 쌀 한 줌씩 단지에 모아 놓으셨다가 생일 때는 하얀 밥을 지어주시며 "많이 먹어라" 하시던 부모님 생각에 오늘도 목이 멥니다. 부모님께서 지금 이렇게 좋은 세상에 살고 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너무도 오랜만에 옛날 그 모습을 떠올려보니 참으로 힘들 무서운 날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고향을 그리워하시며 목이 메시던 모습, 친정에 인사도 못 드리고 아버지 따라 서울로 오신 어머니의 하루하루가 어땠을까 내가 이 나이 되고 보니 그때를 생각하면 울컥울컥합니다.

"통일만 되면…" 하시면서 웃음 지으시던 부모님 모습이 지금도 선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살아생전 고향만 그리다 가셨기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보내드리려고 저희 남매들은 부모님을 임진각에 모셔드렸습니다. 고향이 바로 보이는….

아버지, 어머니, 옛일 다 잊으시고 지금쯤은 고향에 가 계시겠지요. 고향에서 행복하게 지내시길 바랄게요. 저희 4남매 잘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 잊으시고 편히 계세요.

아버지, 어머니, 너무너무 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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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매일신문이 함께 나눕니다. '그립습니다'에 유명을 달리하신 가족, 친구, 직장 동료, 그 밖의 친한 사람들과 있었던 추억들과 그리움, 슬픔을 함께 나누실 분들은 아래를 참고해 전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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