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박임선(전몰군경미망인회 대구 달서구지부 총무) 씨의 남편 고 정용운 씨

입력 2023-06-08 14:28:36 수정 2023-06-08 18:18:32

"당신 덕분에 참 행복했어요 다시 태어나도 만나서 재미있게 살아요"

박임선(사진 왼쪽 첫 번째) 씨의 남편 고 정용운(사진 오른쪽 첫 번째) 씨가 베트남 파병 직전 촬영한 가족 사진. 가족 제공.
박임선(사진 왼쪽 첫 번째) 씨의 남편 고 정용운(사진 오른쪽 첫 번째) 씨가 베트남 파병 직전 촬영한 가족 사진. 가족 제공.

6월이 되면 그리운 것들, 생각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초여름이 되니 지나간 봄이 그립고, '의병의 날'인 6월 1일에는 곽재우 장군이 그립고, 현충일에는 순국 선열과 호국 용사들의 희생이 그립고, 북한이 남침한 6월 25일에는 가곡 '비목'에 등장하는 무명 용사의 공헌과 희생이 또 그립습니다. 그리운 것들 중 가장 그리운 건 항상 따뜻한 모습으로 나를 대하던 당신의 얼굴입니다.

지난 1일 당신을 보러 대전에 있는 국립현충원에 갔다왔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던 우유 한 팩을 놓고 당신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을 어루만지며 당신과의 추억을 되돌아봤습니다. 당신 또한 조국을 위해 베트남 전쟁에 파병을 갔었고, 돌아와서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 교육자로 헌신하며 살아왔지요.

여보, 우리가 만났던 그 시절을 기억하나요? 처음 만났을 때 나는 학생이었고 당신은 갓 임관한 소위였지요. 매일같이 편지를 주고받고, 주말이면 당신이 대구에 와서 만났던 그 시간이 지금도 무척 생각이 많이 납니다.

5년동안의 만남은 결국 우리를 부부로 만들었고 저는 군인의 아내가 됐지요. 든든한 남편을 만났다는 기쁨도 잠시, 당신이 베트남 전쟁터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내 가슴 한 켠이 쿵 내려앉으며 답답했는지 당신은 알았으려나요. 베트남에 가기로 결정한 이유를 "우리 집안이 어려우니 파병 가서 돈 벌어 오겠다"라고 말했을 때는 정말 그 놈의 돈이 웬수같았어요.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전쟁터로 당신을 보내는 제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살아생전에 가끔 당신에게 했던 이야기 기억나나요? 당신이 베트남으로 떠나던 때, 첫째는 너무 어렸고 둘째는 아직 뱃속에 있을 때였죠. 파병 가신 이후에 첫째는 당신이 보고 싶었는지 군복 입은 사람만 보면 아빠인 줄 알고 따라가곤 해서 아이를 잃어버릴 뻔 한 적도 몇 번 있었죠. 아이들 모여 있을 때 그 이야기를 하면 첫째는 "군복 입은 사람 따라간 건 기억이 안 나는데 엄마가 울었던 건 기억이 난다"고 이야기해요. 당신도 그 이야기를 하면 흐뭇해했던 기억이 나네요. 아마 당신을 잊지 않고 있던 자식들의 모습이 흐뭇해서였던 건가요?

당신이 나와 결혼할 때 했던 약속, 기억나나요? "세상 떠날 때는 한 날 한 시에 같이 가자"고 했던…. 당신이 먼저 하늘로 간 뒤 사실 저는 한 3년간은 힘든 나날을 보냈답니다. 자꾸 당신이 생각나서 눈물이 자꾸 났어요. 당신이 병석에 있을 때 "나도 같이 가겠다"하니 "당신은 아이들 잘 보살피고 정리 다 해놓고 나면 그 때 와라. 내가 기다리고 있을게"라고 했지요.

한동안 당신 생각만 하다 그 말이 생각나기도 했고 저 세상에서 당신을 다시 만날 때 좋은 모습으로 만나고 싶어서 다시 힘을 내서 노인대학에서 공부도 하고 전몰군경미망인회 활동도 하면서 살고 있어요. 얼마 전에는 쓸개에 담석이 있어서 아팠었는데 당신이 좋아했던 손녀딸 덕분에 수술도 잘 받고 현충원에 갈 수 있었답니다.

여보, 난 당신 덕분에 참 행복했어요. 숱한 힘든 일이 있었어도 당신이 있어 이겨낼 수 있었고 세상을 행복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 다시 태어나도 다시 만나서 재미있게 살아요. 당신을 다시 만나서 또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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