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서울만 쳐다보는 출마 희망자

입력 2023-05-31 16:57:28 수정 2023-05-31 19:17:18

이창환 정치부장
이창환 정치부장

용산과 인연을 맺지 못한 출마 희망자는 안달이 났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용산 주변에 기웃거리며 얼굴을 알리고 이력서를 전달해야 안도의 숨을 쉰다. 그래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인연의 깊이에 따라 낙점 여부가 결정되고, 경쟁자가 용산과 더 가깝다는 소문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간다. 당 핵심 지도부나 윤핵관을 제외한 2024년 국회의원 선거 국민의힘 공천 희망자들은 대부분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국민의힘 3·8 전당대회를 돌이켜 보면 공천 희망자들이 윤석열 대통령 주변 기류를 살필 수밖에 없다. 용산 대통령실에서 당대표 경선을 쥐락펴락했기 때문이다. 정치권 주변에서는 대구경북(TK) 국회의원 25명 중 살아남을 의원과 탈락할 의원들의 실명이 거론된다. 기준은 용산과 얼마나 깊은 인연이 있느냐다.

공천 희망자들을 지역에서 만나기 힘들다. 윤 대통령과 윤핵관이 내년 공천에 대한 그립(주도권)을 워낙 세게 쥐고 있어서다. 공천을 받으려면 유권자들에게는 욕먹지 않을 정도만 하고 용산에 잘 보여야 한다는 게 정설처럼 굳어져 있다. 공천 희망자들이 지역구보다 서울에 신경을 더 쓰는 이유다. 과거에도 추세는 비슷했지만 이번 총선은 정도가 더 심하다.

용산에서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검사 수십 명을 공천할 것이라는 낭설까지 회자됐었다. 급기야 해명까지 했다. "시중에 떠도는 괴담"(김기현 대표), "그냥 설(說)"(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이라고 했다. 용산과 윤핵관들은 억울할 것이다.

그러나 공천을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공천을 받으려면 유권자들과 소통과 스킨십도 중요하다"고 한마디했으면 공천 희망자들이 골목마다 다니면서 얼굴 알리기에 나섰을 거다.

윤 정부의 생사(生死)가 내년 총선에 걸린 탓에 공천을 잘 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피 튀기는 경쟁을 벌여야 하는 수도권과 전통적 지지 지역인 대구경북(TK)을 비롯한 영남권의 공천 기준이 다르다는 것도 이해한다. 수도권은 당선 가능성이 가장 중요하고, 영남권은 충성도를 앞머리에 둘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평가인 '세평'(世評)이라는 게 있다. 세평이 좋은 국회의원은 롱런하는 경우가 많았다. 세평이 최악이지만 공천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단명에 그쳤다. 원론적인 얘기가 아니다. 정치만큼 세평이 중요한 분야도 없다. 정치는 남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세평은 유권자와 소통하고 스킨십을 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전통사회에서는 신언서판(身言書判)으로 사람을 평가했다. 유권자를 만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몸가짐과 언변, 문해력, 판단력 등 현대판 신언서판이 드러난다.

세평의 기회도 갖지 못한 상황에서 느닷없는 낙하산 공천은 안 된다. 전략 공천을 받은 지 한두 달 만에 손쉽게 배지를 달고는 지역구를 나 몰라라 하는 국회의원도 적잖이 지켜봤다.

지금 분위기라면 내년 총선에서 이런 국회의원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용산과 윤핵관이 공천을 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일찌감치 지역구에 내려보내길 요청한다. 그래야 유권자에게 한 표 받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지역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발로 정치를 배워야 오래가는 법이다.

느닷없이 내리꽂는 공천은 거야(巨野)의 공세로 지지율이 바닥을 맴돌 때도 변함없이 지지한 TK 유권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TK 공천이 매끄럽지 못하면 수도권 승부에 직접 악영향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