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 '비상구' 포비아…좌석 판매 금지에도 "또 열리면 어쩌나" 불안

입력 2023-05-28 17:58:04 수정 2023-05-28 20:26:20

높은 고도에서 강제로 비상구 여는 건 '불가능'…하지만, 착륙 직전이라면 상황 달라져
사고 당시 여객기도 상공 213m 높이…기압 차이가 크지 않아 충분히 열 수 있어
아시아나항공 A321-200 여객기 비상구 옆 좌석 판매 '전면중지'

26일 오후 대구국제공항에 비상착륙한 아시아나 비행기의 비상구가 당시 비상개폐되며 파손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오후 대구국제공항에 비상착륙한 아시아나 비행기의 비상구가 당시 비상개폐되며 파손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6일 제주국제공항을 떠나 대구국제공항으로 향하던 아시아나 여객기에서 착륙 직전 한 남성이 비상구 출입문을 무단으로 여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여객기 비상구'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중소형 기종의 경우 비상구 접근이 용이하고 잠금장치도 없는 탓에 같은 사고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 중소형 기종 취약…사고 이후 좌석 판매 중지

28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기내에서 비상구를 강제로 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객기가 높은 순항고도에서 비행하고 있을 땐 기내 안팎 기압 차이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고처럼 여객기가 200m 상공에 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기압 차이가 크지 않아 비상문 손잡이를 힘을 주고 올리면 충분히 열릴 수 있는 것이다. 사고 당시 아시아나 여객기는 착륙을 위해 상공 213m 높이에 있었다. 이와 관련해 항공업계는 처음엔 문이 조금 열렸다가 거센 맞바람을 받아 활짝 열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A321-200 여객기가 비상구 관리에 유독 취약한 구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해당 기종은 최대 195명이 탑승할 수 있는 중소형기다. 대형 항공기는 비상구 자리라고 해도 비상구와 조금 떨어져 있어 안전벨트를 풀고 좌석에서 일어나야 문에 닿을 수 있다.

하지만 A321-200 여객기는 승객이 앉았던 '31A' 좌석에서 앉은 채 비상구를 열 수 있을 만큼 가깝다. 해당 기종은 다른 여객기와 달리 비상구 잠금장치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가 발생하자 아시아나항공은 급히 대책 마련에 나섰다. 아시아나항공은 "28일 0시부터 '비상구 문 열림' 사고가 발생한 A321-200 여객기의 비상구 앞 좌석을 판매하지 않는다"며 "이 조치는 항공편이 만석일 경우에도 적용된다"고 밝혔다. 애초 만석이 아닐 때 해당 좌석을 판매하지 않겠다고 했었는데 '전면 중단'으로 방침을 바꾼 것이다. 판매가 중단된 좌석은 174석으로 운용되는 A321-200 항공기 11대의 '26A 좌석'과 195석으로 운용되는 A321-200 항공기 3대의 '31A 좌석'이다.

◆ 과거에도 비슷한 사고…관리시스템 마련해야

기내 비상구 관련 사고는 과거에도 있었다. 2019년 9월 인천국제공항에서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향하던 아시아나 여객기에서 승객이 비상구 개방을 시도해 이륙 4시간 만에 회항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2017년 2월에는 이륙을 준비하던 인천발 베트남행 대한항공 여객기에서 비상출입문 레버를 화장실 문손잡이로 착각한 승객의 실수로 출입문이 열려 두 시간 넘게 이륙이 늦어진 일도 있었다.

일각에선 비슷한 사고를 막으려면 항공사 직원이 비상구를 관리하는 제어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비상시에 승무원을 도와야 하는 중요한 자리인 만큼 승객을 받지 않거나 배정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지적이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비상구 자리 탑승을 요청하는 승객에 대해선 신분 검사를 철저히 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며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신속한 조치가 가능할 수 있도록 비상구 앞엔 반드시 승무원이 마주 보고 앉는 자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항공보안법 제23조 제9항에 따라 항공기가 이륙하기 전에 승객에게 협조의무를 알려주는 영상물을 상영하거나 방송하고, 의무를 따르지 않을 시 처벌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알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판매가 전면 중단된 A321-200 항공기의 비상구 옆 좌석(파란색 사각형). 왼쪽이 174석, 오른쪽이 195석 항공기. 아시아나항공 홈페이지 캡처
판매가 전면 중단된 A321-200 항공기의 비상구 옆 좌석(파란색 사각형). 왼쪽이 174석, 오른쪽이 195석 항공기. 아시아나항공 홈페이지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