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정읍 선언’의 의미

입력 2023-05-23 20:04:55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남북 분단의 원흉.' 좌파가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씌운 모욕의 올가미이다. 이런 모함을 '입증'하기 위해 드는 증거가 1946년 6월 3일 전북 정읍에서 이승만이 한 발언, '정읍 선언'(정읍 발언)이다.

"무기 휴회된 공위(共委·미소공동위원회)가 재개될 기색도 보이지 않으며, 통일 정부를 고대하나 여의케 되지 않으니 우리 남방(南方)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 38 이북에서 소련이 철퇴하도록 세계 공론에 호소하여야 할 것이다."

좌파는 이를 권력 장악을 위한 남한 단정론(單政論)으로 몬다. 거짓말이다. 단독 정부를 먼저 세운 쪽은 북한이다. '정읍 발언' 4개월 전인 2월 8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결성됐다. 김일성이 위원장, 김두봉이 부위원장이었다. 이들은 이 위원회를 '우리의 정부'라고 선언했다. 선언대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즉시 10개 부처와 공안기관을 설립했다. 이어 3월 5일 무상몰수 무상분배 방식의 토지 개혁을 실시했다. 이로써 대화와 타협으로 통일 국가를 건설할 가능성은 사라졌다.

이런 '북한 단독 정권 수립'은 소련의 치밀한 기획하에 추진됐다. 스탈린은 1945년 9월 20일 극동전선군 총사령관 바실레프스키와 연해주 군관구 군사회의에 "북한에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권 수립하라"는 지령문을 보냈다. 그 의미는 우파 민주주의자들과 통일 전선을 형성했다가 제거하고 공산 정권을 수립하라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그해 10월 8일 '북조선 5도 인민위원회 연합회의'가 개최돼 '북조선 중앙은행' 설립이 결정됐고, 같은 달 28일 중앙행정기관인 '북조선 5도 행정국'이 만들어졌다. 사실상의 정부가 들어선 것이다.

소련의 목표는 북쪽에 먼저 친소 정권을 수립한 뒤 한반도 전체를 적화(赤化)하는 것이었다. 한반도에 민주적인 통일국가를 수립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모스크바 3상(相)회의'(1945.12.15~25)가 열리기 석 달 전에 스탈린이 '북한 단독 정권을 수립하라'는 지령을 내린 것은 이를 증명한다. 그런 점에서 '정읍 선언'은 소련의 전략을 간파한 탁월한 '한반도 적화 저지' 행동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정읍 선언' 77주년 기념 행사가 6월 3일 정읍 YMCA에서 열린다고 한다. 좌파들도 가서 잘 배우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