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까지 갤러리CNK에서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어느 날, 장재록 작가는 인터넷으로 자연 풍경의 이미지 자료를 수집하다 흠칫 놀랐다. 현실인줄 알았던 그 풍경이 사실은 게임 속 이미지였던 것. 그는 어쩌면 이 디지털 시대에는 게임 속 풍경들이 곧 우리가 인식하는 자연의 이미지가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갤러리CNK(대구 중구 이천로 206)에서 열리고 있는 장재록 작가의 개인전 '순응'에서는 검은 픽셀로 표현한 게임 속 풍경들이 펼쳐진다. 2층에 설치된 픽셀 작품 사이를 거닐어보면 이곳이 가상인지 현실인지, 모호하고 묘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는 3층에 전시 중인 극사실주의 형태의 전작들과는 전혀 다르다. 그는 자동차와 화려한 외국 거리 풍경 등을 표현하며 인간의 욕망을 가감 없이 작품에 담아왔다.
고화질에서 저화질로 풍경의 표현이 바뀌었지만, 전작과 신작의 공통점은 있다. 한지와 먹을 사용했다는 것. 신작의 경우 한지에 격자를 그리고 실제적인 풍경을 연필로 스케치한 뒤 그 위에 먹으로 픽셀을 채운다. 풍경을 덮은 풍경인 셈이다.
검은 픽셀 사이로 언뜻 보이는 연필 스케치가 상상력을 자극한다. 또한 멀리 떨어져서 보면 검은 픽셀은 숲 속 풍경 같기도 하고, 전혀 알 수 없는 형태로 보이기도 한다.
장 작가는 "아버지가 토목 설계를 하셔서 항상 책상 위에 격자 무늬의 설계도면이 있었고, 어머니는 서예가셨기에 먹이라는 재료가 친근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며 "신작은 사실적인 표현에 픽셀로 한 겹을 더 덮어, 추상성을 더하고 해석의 여지를 넓혔다"고 말했다.
한국화를 전공한 그는 사라져가는 장인의 전통 한지를 찾아 5배접을 하는 수고로움과 정성으로 작품의 기초를 다진다. 또한 궁극의 짙은 검정을 보여주고자 직접 먹과 아크릴, 미디엄 등을 배합해 사용한다.
이렇듯 꼼꼼하고 계획적인 그의 성향은 작품에 그대로 드러난다. 전작에서 색의 극명한 대비를 보인 그만의 발묵법, 먹임에도 번짐 없이 반듯하게 채워진 픽셀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먹을 소재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한편, 한국 예술의 자세와 깊이를 지키고자 꾸준히 연구하고 고민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화와 서양화,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가상 등 극과 극의 공존을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고 작품을 바라보면,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토대로 무한한 해석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동시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가 있죠. 어떤 것이 실제고 가상인지 모호한 시대, 새로운 리얼리티에 순응하는 자세를 함께 고민해볼 전시라고 생각합니다."
전시는 오는 20일까지. 053-424-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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