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나쁜 평화가 낫다’는 비루(鄙陋)한 ‘평화 타령’

입력 2023-05-08 19:58:13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 프랑스의 군사력은 1918년 베르사유 조약으로 약해진 독일을 압도했다. 당시 프랑스의 육군 사단은 76개였으나 1935년 재군비를 시작한 독일은 그 절반도 안 되는 32개였다. 하지만 프랑스는 독일에 6주 만에 항복했다. 이런 군사적 무능의 뒤에는 전쟁 공포증과 결합된 평화주의가 있었다. 당시 평화주의자들은 침략을 준비하고 있는 다른 나라를 적으로 보지 않고 전쟁 자체를 적으로 봤다. 엄청난 사상자를 낸 1차 대전의 트라우마 때문이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싸울 의지를 포기했다. 베르사유 체제를 뒤엎은 독일군의 라인란트 진주를 프랑스가 보고만 있었던 이유다. 프랑스가 마음만 먹었으면 독일의 현상(現狀) 변경 시도는 충분히 저지할 수 있었다.

히틀러는 1939년 폴란드 침공 성공 후 군 지휘관들에게 프랑스 침공 계획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군은 독일의 군사력으로 보아 프랑스 침공은 1941년 이전에는 불가능하며 1942년에도 실행에 옮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히틀러는 1940년 봄까지는 침공 준비를 완료하라고 지시했다. 실제로 독일은 1940년 5월 10일 프랑스에 쳐들어갔고 성공했다.

히틀러는 군사력이라는 객관적 요소가 아니라 프랑스 사회에 만연한 평화주의와 전쟁 의지 결여에 대한 자신의 분석을 바탕으로 조기 침공을 밀어붙였다. 처칠은 그런 프랑스의 현실을 정확히 보고 있었다. 독일이 재군비를 시작하기도 전인 1932년에 이미 "프랑스는 빈틈없이 무장했음에도 뼛속까지 평화주의자"라고 했다.

평화주의가 전쟁을 막지 못함은 인류 역사가 증명한다. 평화를 강제할 힘이 없으면 원하지 않아도 전쟁은 일어난다. 혁명 러시아의 적군(赤軍) 총사령관 트로츠키는 이를 냉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당신은 전쟁에 관심이 없을지 몰라도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런 냉엄한 사실을 외면한다.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핵우산'을 강화하는 '워싱턴 선언'이 채택되자 최고위원이라는 사람은 "확장 억제, 핵무기, 전쟁 등의 단어만 난무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책과 대답은 없었다"며 "아무리 나쁜 평화라고 해도 좋은 전쟁보다 낫다"고 비난했다. 그 무지가 놀랍다. 북핵에 맞서 전쟁을 억제하고 한반도 평화를 지키기 위한 대책이 '확장 억제'다. 그런 말이 오간 것은 전쟁 억제와 평화 구축 의지의 천명이다. 이런 노력을 하지 않은 문재인 정권이 5년간 북한에 평화를 구걸해 무엇을 얻었나? 더욱 고도화된 핵 능력 아닌가?

"아무리 나쁜 평화도 좋은 전쟁보다 낫다"는 더욱 고약하다. 문 전 대통령도 이재명 대표도 같은 말을 했다. "이긴 전쟁보다 더러운 평화가 낫다"는 이 대표의 수사(修辭)는 특히 고약하다. '전쟁이냐 평화냐'는 기만적 양자택일 프레임이다. 전쟁의 반대는 평화가 아니라 항복이다. 고(故)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평화와 전쟁 중에서 선택하라면 답은 명확하다. 그러나 평화를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은 오직 하나, 항복뿐이다."

'더러운 평화'는 어떤 평화일까. 필경 자유와 번영을 포기한 평화일 것이다. 이는 굴종이다. 그런 점에서 전쟁도 불사한다는 의지와 그에 수반된 준비 없는 '평화 타령'은 이재명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더러운' 굴종의 기정사실화일 뿐이다. "전쟁의 공포를 장황하게 늘어놓는다고 전쟁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절대 없다." 처칠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