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직원에 "20살 많은 직원과 사귀라, 잘맞겠다"… 법원 "성희롱"

입력 2023-05-08 09:58:14 수정 2023-05-08 10:02:24

法 "지위 이용해 성적 굴욕감 줬다"

법원 자료사진. 매일신문 DB
법원 자료사진. 매일신문 DB

같은 회사 상사가 신입직원에게 나이가 많은 다른 직원과 사귀어 보라는 식으로 발언하면 직장 내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8-2부(이원중 김양훈 윤웅기 부장판사)는 국내 한 대기업 여직원 A씨가 상사 B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단한 1심을 유지했다고 8일 밝혔다. 재판부는 B씨가 A씨에게 진정성이 담긴 사과를 했는지 의문이라며 위자료를 300만원으로 정했다.

지난 2020년 입사 4개월 차인 A씨는 이듬해 옆 부서장 B씨 등 다른 상사 3명과 점심을 함께 먹었다. B씨는 근속연수 25년 차인 간부로 A씨와는 초면이었다.

성희롱 발언은 식사 당일 한 참석자가 A씨에게 거주지를 물으면서 발단이 됐다. 당시 A씨는 "○○역 쪽에 산다"고 대답하자, B씨가 "○○역? C씨도 거기에 사는데. 둘이 잘 맞겠네"라고 말했다.

C씨는 당시 자리에 없었던 타부서 직원이었고 A씨보다 약 20살 많은 미혼 남성이었다.

또 B씨는 A씨가 치킨을 좋아한다는 말에 "C씨도 치킨을 좋아한다. 둘이 잘 맞겠다"고도 말했다.

문제가 된다고 판단한 A씨는 "저 이제 치킨 안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지만 B씨는 멈추지 않았다. B씨는 "그 친구 돈이 많다. 그래도 안 돼?"라고 재차 말했다.

해당 사건인 이들의 직장에서도 공론화됐다. 회사 측은 두 사람을 분리했고 B씨에게는 견책 3일의 징계처분을 내렸다.

A씨는 이 사건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휴직까지 하게 됐다며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B씨는 "노총각인 남성 동료에 관한 농담일 뿐 음란한 농담과 같은 성적인 언동을 한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처럼 B씨의 발언이 성희롱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B씨가 A씨에게 정신적 고통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특히 상사가 직장 내 지위를 이용한 성적 언동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했다며 남녀고용평등법이 금지하는 '직장 내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대화가 완전히 대등한 관계에서 이뤄졌으리라 보기 어렵고 다른 사원들도 같이 있었던 자리라는 상황을 종합하면 남성인 피고의 발언은 성적인 언동"이라며 "여성인 원고가 성적 굴욕감을 느꼈겠다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희롱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행위자에게 반드시 성적 동기나 의도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남녀고용평등법 시행규칙상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도 성희롱 판단 기준 예시로 규정되어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