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속으로] 고교생이 학교에 소송을? 부정행위 인정하다 돌연 태도 바꿔

입력 2023-05-04 10:52:21 수정 2023-05-04 21:14:26

중간고사 종료 후 답안 작성… 주변 신고에 혐의 시인
주관식 0점 처리 학부모 통보 후 "강압·회유 있었다"며 부인
법원 "학생 측 진술 앞뒤 안 맞고 오히려 학교가 배려해준 것"
성적처분취소 청구 각하하고 소송비용도 학생 측 부담하라 판결

대구지법·대구고법 현판
대구지법·대구고법 현판

대구의 한 고등학생이 학교를 상대로 성적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패소했다. 대구지법 1행정부(채정선 부장판사)는 지난해 달서구의 한 고등학교 3학년에 다니던 A(18) 학생이 학교를 상대로 제기한 성적처분 취소 소송에서 A양의 청구를 각하했다고 4일 밝혔다.

A군이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낸 경위는 지난해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달 2일 실시된 '화법과 작문' 중간고사에서 A양이 시험 종료 후 주관식 서술형 문제 2개 문항 답안을 작성했다는 같은반 친구들의 신고가 다음날 학교에 접수된 것이다.

담임 교사가 A양을 추궁한 결과 A군은 5번과 7번 문항 답안을 종료 후에 작성했다고 인정했다. 이후 자신을 걱정한 담임과의 통화에서는 "내가 잘못한 것이라 괜찮다. 그때 진짜 손이 떨려서 유달리 글씨가 이상한 답안이 있을 것이다"라는 취지로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기도 했다.

학교 측은 이런 상황을 종합해 그달 13일 학업성적관리위원회를 열고 주관식 문항 점수를 0점으로 처리해 A양에게 53.7점을 부여했다.

A양이 돌연 태도를 바꾼 건 연구부장 교사가 이같은 성적처리 결과를 같은달 16일 A양의 어머니에게 통보하면서부터다. A양 어머니는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며 "부정행위를 한 적이 없고 앞서 담임과 연구부장 교사의 강압과 회유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A양 측은 대구시교육청행정심판위원회에 시험 서술형 답안 0점 처리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심판을 청구했으나, 지난해 7월 이 청구가 각하되면서 대구지법에서의 행정소송으로까지 이어졌다.

법원은 A양의 바뀐 진술이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우선 교사들이 A양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왜곡된 진술서를 작성하게 할 이유가 없었다. 아울러 부정행위를 신고한 학생들이 제출한 경위서에 부자연스러운 정황이 전혀 없고, 이 학생들이 평소 A양에게 악감정을 품을 이유나 허위 신고 동기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A양은 4일과 5일 담임과 연구부장 교사와의 대화에서도 부정행위를 모두 시인하며 얘기했던 내용이 A양 답안지에 남은 필체 변화와도 부합했다.

A양은 성적처리 과정에서 학교의 배려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학교의 학업성적관리지침에 따르면 부정행위자는 지필고사의 경우 부정행위를 한 해당 고사의 해당 과목을 0점으로 처리하도록 돼 있지만 학교는 A양의 사정을 감안해 서술형 답안만 0점 처리한 상황이었다.

법원은 이런 여러 사정을 들어 A양이 성적처분 취소를 구하는 부분은 모두 각하하고 소송 비용도 A양 측이 모두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시험과정에 부정행위가 개입될 경우 정확하고 공정한 평가를 할 수 없으므로 부정행위를 방지해야 할 공익이 크고, 엄격하고 일관된 대처가 필요한 점 등을 고려하면, 학교 처분에 어떠한 하자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