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7일 한·미 정상은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북한이 핵을 사용할 경우 미국이 북한을 핵으로 응징하겠다는 확약을 채택하고 국제사회에 선언했다. 미국의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특정한 상대, 북한 정권의 종말을 경고하는 일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앞으로 미국은 핵무기를 탑재한 전략핵잠수함 등 전략 자산을 한반도 주변에 증강 배치하여 억제 태세를 높일 것이며, 고위급 '핵협의그룹'(NCG)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핵전략에 대한 기획과 실행은 물론 전략사령부 간 시뮬레이션도 함께 할 것이라는 점은 특기할 만한 진전이다.
주어진 현실적 여건 속에서 전술핵무기 재배치나 핵 공유의 효과에 최대치를 제시했다 하겠으며,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기조를 남겨둠으로써 북한의 퇴로를 열어 두었다. 핵 보유나 핵 단추를 갖지 못하는 조건에서는 그 어떤 방안도 성에 안 찰 것이다. 비핵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지가 워낙 강고하고, 현 시점에서는 막대한 국익의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북한의 길을 따라 갈 필요가 없으며 그럴 상황도 아니다.
오히려 이번 선언에 즈음해 정치권은 과연 '동맹의 토양'이 어떠했는지를 자성해 봐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 민족공조를 앞세운 반미 운동은 흔한 광경이다. 주한미군 철수를 외치면서 미대사관을 점거하고 불 지르며 농성장으로 만들어 한때 미군들은 한국 근무를 기피하기도 했다. 시대착오적인 죽창가를 외치고, 사드는 배치 6년 만에 겨우 이동 훈련을 했다.
헌법에서 자유 조항을 삭제하자 하고 연합훈련 폐지를 입법하려 하며, 이적단체로 판명된 단체가 이름을 바꾸어 활개치고, 곳곳에서 고정간첩이 준동한다. 얼마 전에는 북한 정찰총국에 의해 61개 기관이 해킹을 당하고 그 수장이 워커장군 추모 호텔에 숙박하게 하는 등등 무절제하고 보안에 취약한 우리 사회다. '동맹의 토양'이 이래서야 되겠는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미국은 중요한 정보가 북한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다.
북핵 위기가 발생하자 정치권은 어떻게 처신했는가. '의심만 가지고 제재를 하려면 안 된다' '북한 핵 개발에는 이유가 있다' '북한은 비핵화 의지가 있다'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먼저다' '핵 개발로 재래식 전력비를 줄여 민생에 전환하게 되었다'는 등 상황을 어렵게 한 게 누구인가. 오죽하면 북한보다 한국과 일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이러한 과거를 망각한 채 이번 선언에 새로운 것이 없다느니 낙제점이니 하는 것은 가당찮다. 실인즉 핵 '청구서'를 내민다는 자체가 사리에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정치권은 '성적표'를 따지기에 앞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한·미 공조를 뒤로하고 남북 관계를 앞세워 지금과 같은 재앙적 위험을 초래한 그 책임 소재부터 밝히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이런 '정치적 불안정'에도 불구하고 이번 확약은 계속 보완될 것이며 행동계획은 보다 구체화될 것이 분명하다. 왜 그런가. 미국은 본토 방어와 핵확산금지조약(NPT) 유지뿐 아니라, 북한이 제네바 합의 이후 근 30년간 속여 왔다는 점에서 공분하고 있다. 1994년 제네바 합의는 미국이 북한과 합의한 최초의 양자 약속이다. 제네바 합의가 어떻게 진행되고 어떻게 파기되었는가.
애당초 '핵을 만들 의사도 능력도 없다'더니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이 드러나자 '핵보다 더한 것도 갖도록 되어 있다'며 둘러대다가 '미국이 압살하려 하기 때문에 가지지 않을 수 없다'로 둔갑하고 결국 제네바 합의는 파기되고 말았다. 이후 6자 회담도 판박이였다. 주요 국면마다 사찰 목록, 검증 방식 등으로 트집 잡고 시간을 끌며 파탄으로 몰더니, 9·11 테러와 이라크 사태가 나자 2005년 '핵보유국'이라고 선언했다.
2017년 6차 핵실험 이후에는 '핵 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그렇게 부인해 오던 핵이 어느 날 갑자기 큰 산이 되어 솟아난 것이다. 핵 동결도, NPT 복귀도, 사찰도, 남북 대화도 모두 형식이었다. 2019년 하노이 협상이 결렬되자, '비핵화는 있을 수 없다'며 연일 핵 증강 프로그램을 돌리고 있다.
미국은 인권유린과 불법행위를 일삼는 북한 세습 정권을 불량국가, 테러지원국가, 악의 축으로 규정한 바 있다. 자유민주 체제에 대한 신념이 강한 미국이다. 이 땅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6·25전쟁에서 사망자를 포함해 17만2천800여 명의 희생이 있었다. 북한 핵 도발 시 반드시 핵 응징을 할 것이다. 최근 북한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이용하여 핵심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러시아에 파병하는 등 밀착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이참에 김정은과 북한 노동당에 민족의 이름으로 고언한다. '미국은 북한이 무분별하게 도발하길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북한 세습 체제가 지도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시험대에 올리고 싶은가, 아닌가.' 한국은 나토 정상회의에 초대될 정도로 국제적 위상과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 또한 명심하고 경거망동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워싱턴 선언을 보장하기 위해 두 가지를 유념하자. 첫째, 핵무기는 실제 사용이 어렵다 하더라도, 재래식 전투 여하에 따라 효력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가 돈바스 지역을 위성지구로 강제 편입하려는 예에서 보듯이, 만약 핵을 가진 국가가 재래식 전투에서 승산을 가질 경우 핵무기의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으로 하여금 전면전이든 국지전이든 그 어떤 재래식 전투에서도 승산이 없다는 점을 각인시켜야 한다. 한·미 연합훈련을 강화해야 하며, 우리의 강력한 응징 의지를 지속적으로 북측에 전달해야 한다.
둘째, 북한의 핵전략은 동맹관계를 이간하고 남남 갈등을 증폭하는 데 중점이 있다. 지난 4월 김여정은 미국의 핵우산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한·미 확장 억제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초래하고 핵 논란을 정치쟁점화하며, 동맹관계를 이간하려는 속셈이었다. 또한 사회 일각에서는 한반도를 둘러싼 강 대 강 대립 구도가 자칫 불행한 사태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한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거나 조장하여 '전쟁이냐 평화냐'라는 식으로 국민을 갈라 세우려 해서는 안 된다. 실상 전쟁을 가장 두려워하는 자는 김정은이다. 북한 핵 개발은 결코 미·북 불신과 적대시 정책의 산물이 아니다. 김일성의 공산화 통일이라는 망상이 작동하는 '교조적 유훈' 때문이다. 정치권은 국민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주고 국론 통합에 나서라.
동맹의 토양과 정치적 안정성, 재래식 전투태세, 올바른 대북관, 총화 단결이야말로 워싱턴 선언을 보장하는 평화의 길임을 명심하자.
윤광섭 예비역 육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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