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이차순, 김명희(대구적십자사 동구지구 봉사원)씨가 그리는 고 한경애(전 대구적십자사 동현봉사회 회장) 씨

입력 2023-04-27 11:36:04 수정 2023-04-27 17:48:31

"열심히 타안을 도우며 살고는 있지만…크신 사랑 다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2010년 적십자사봉사회 대구시협의회 정기총회에서 고 한경애 전 동현봉사회장이 사회봉사사업유공 공로패를 받았을 때 촬영한 기념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가 고 한 회장, 오른쪽 첫 번째가 이차순 씨.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제공.
지난 2010년 적십자사봉사회 대구시협의회 정기총회에서 고 한경애 전 동현봉사회장이 사회봉사사업유공 공로패를 받았을 때 촬영한 기념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가 고 한 회장, 오른쪽 첫 번째가 이차순 씨.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제공.

한경애 선생님, 생전에 대구적십자사 동구지구에서 같이 봉사활동했던 후배 김명희, 이차순입니다. 저희들을 떠난 그 곳에서는 어찌 편하게 계시는지요? 저희 곁을 떠나신 지 얼마나 됐나 세어보니 벌써 10년이 넘어가네요. 이렇게 세월이 빠르게 지나 편지를 쓰는 저희들도 한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 선생님 연배가 돼 버렸습니다.

저희들은 한 선생님을 항상 봉사활동에 열정적이었던 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항상 자기의 몫을 나누길 주저하지 않는 분이셨지요. 고교시절 국군대구병원에서 빨래일을 도와주셨던 게 봉사활동 인생의 시작이라 하셨으니 어찌보면 남을 돕는 일에 한평생을 보내신거지요. 젊었던 시절 옆집에 땔감이 없어 동동거리던 모습을 보고 남편의 월급을 털어 연탄을 사 주신 통에 정작 자기 가정에 쓸 돈이 떨어져 고생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 이분은 천생 남을 돕고 사는 팔자이신가보다'라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어찌나 봉사에 진심이셨는지 한 선생님 남편께서 "그렇게 봉사활동 하려거든 차라리 이혼하고 하지 그러냐"고 농담을 하셨다지요? 그 말을 선생님께서는 "갔다 와서 이혼할게요"라고 맞받아치시면서 넘어가셨다지요?

한 선생님, 저 이차순이 처음 적십자 봉사활동 시작할 때 저를 보고 "아이구, 이쁜이가 들어왔다"고 하셨던 걸 기억하시려나요? 저는 한 선생님만 생각하면 죽어도 잊혀지지 않는 하루가 있습니다. 20년 전 쯤인지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구에 도시철도 1호선이 개통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초봄으로 기억합니다. 새벽 6시, 제가 사는 아파트에 한 선생님이 갑자기 찾아오셨지요. 그것도 3㎏짜리 설탕 한 봉지를 머리에 이고 말입니다.

선생님은 당시 동구지구 협의회장을 하고 있던 제게 "회장 일 하는게 고마워서, 그 생각이 나서 들고왔다"고 하셨지요.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선생님께 설탕을 받을 정도로 도와드린 일이 생각이 안 나는데 갑자기 선물을 안겨주셔서 어안이 벙벙했던 게 사실입니다. 게다가 가녀린 몸에 날씨도 꽤 추웠을 초봄에 선생님이 사는 안심에서 저희 집까지 지하철을 타고 오신다는 건 너무 힘든 여정이었을텐데 제가 어디가 그렇게 예쁘고 고마우셨길래 이런 수고를 하셨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그 설탕이 제게는 너무 귀한 식재료가 됐습니다.

게다가 손재주도 좋으셔서 선생님 댁에 가게 되면 손수 만드신 커텐, 침대나 소파에 씌우는 커버, 식탁보가 어찌나 예쁘던지요. 저희들 또한 선생님이 수공예로 만든 차 깔개 등을 선물로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교육이나 봉사활동 중에 보여주셨던 솜씨와 맵시 때문에 저희들은 선생님의 별명을 '새댁'이라고 부르기도 했었지요.

생활이 넉넉하지 않으셨는데도 그렇게 봉사에 진심으로 임하시는 까닭이 무엇인지 궁금할 때가 많았습니다. 고교 시절부터 해 오던 것이라 이미 인생에 인이 박혀서 그런 것인가 싶기도 하고, 남을 돕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남들이 말하는 '팔자소관'인가 생각도 해 봅니다. 저희 또한 남을 도우면서 뭔가 인생이 살만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다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알게 모르게 다 배웠나봅니다.

한경애 선생님, 저희들에게 이렇게 사랑을 많이 주셨는데 저희들은 이를 어떻게 갚아나가야 할까요? 열심히 타인을 도우며 살고는 있지만 이걸로 선생님의 크신 사랑을 다 갚아갈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걸 배웠고 많은 걸 받았습니다. 선생님의 크신 사랑이 오늘따라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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