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의 인세이셔블 연극리뷰] 윤미현 작가의 ‘멧돼지가 나오는 집’, 황태선 연출의 ‘가정식 백반이 나오는 집’

입력 2023-04-26 10:01:24 수정 2023-04-26 17:04:46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
'우리 멧돼지가 나오는 집으로 갈까요?'. 조현지 극단 은행나무 기획 제공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

윤미현 작, 연출의 <우리 멧돼지가 나오는 집으로 갈까요?> (극단 은행나무, 삼일로창고극장, 기획 조현지)는 멧돼지가 출몰하는 죽음 집, 한 가족의 이야기다. <광주리를 이고 나가시네요, 또>, <장판>, <평상>, <목선>의 희곡을 써온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고령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 대(代)를 잇는 가족 간병의 사회문제를 진단하고 있는 작품이다. 간병 살인사건 판결문을 다루고 있는 심층분석을 보면, '죽어야 끝나는 간병 전쟁' 살인의 10명 중 6명은 아들과 남편의 가해 살인이 많았으며 경제적인 어려움도 컸다. 간병 기간은 평균 6년 5월 정도였다. 의료비와 생활고를 감당하지 못한 청년은 신체를 움직일 수 없는 아버지 영양식을 끊어 숨지게 한 사건도 있었다. 2020년 보건복지부의 노인실태조사를 보면 간병은 배우자, 딸, 아들, 며느리 순으로 이어지고 있다. 독박 간병의 사회비극을 윤미현은 그 집으로 멧돼지와 노루(궁뎅이)를 한집에서 살게 만든다. 낯과 야밤 도심과 들판으로 돌진하는 멧돼지는 인간의 죽음까지 내몰며 위협적으로 일상을 파괴하고 멧돼지 습격 사망 사건은 많다. 야생 노루도 로드 킬로 불리며 운전자를 위협하고 있다. 윤미현의 멧돼지는 희망이 전깃불처럼 꺼져 가는 집으로 돌진하는 국가이면서도 비극을 생산하고 있는 사회간병제도의 문제점을 희곡으로 들고 은유적으로 타격한다. 옥탑으로 보이는 집에는 아들 현준 (진현태 분)과 뇌졸중으로 중증 치매를 앓고 살아가는 아빠 (이영석 분)'은 1980년대 중반 쓰러진 후 심해져 가는 치매로 멧돼지, 노루궁뎅이가 출몰하는 환청 상상에 시달리고 있다. 독박간병으로 삶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아들은 마지막 장면에서 " 나한테 검정 멧돼지는 아빠잖아요" 하며 간병 살인을 하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다루며 윤미현은 멧돼지가 나오는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희망의 탈출구가 없는 한국 사회의 '간병 살인'의 사회적 책임은 누구인지 묻고 있다. 현준이네 산속 같은 집과 가족을 위협하는 멧돼지와 노루는 누구일까. <우리 멧돼지가 나오는 집으로 갈까요?>는 간병 살인으로 4년 만에 출소한 후 집으로 돌아오면서부터 시작된다.

◆ 죽음을 위협하는, 멧돼지가 나오는 집

삼일로 창고극장 무대 공간은 70여 석으로 관객석을 마주 보게 배열하고 폭 1미터 50센치 정도 사이와 극장 공간의 가변형 구조는 집, 길가와 하천, 병원, 지하철 플랫폼, 경양식집 등으로 활용했다. 영상으로 집 내부와 벽면, 창문 그리고 장면과 무대 배경을 넓혔다. 멧돼지가 위협적으로 달려들 것 같은 집 구조는 환자용 침대가 보이고 계란과자를 구워내던 녹슨 1980년대식 전기오븐은 방치되어 있고 그 앞으로 낡은 TV 한 대가 보이는데, 집의 온기는 정전상태로 박제(剝製)되어 있다. 음식을 데우며 현준이네 가족 식탁으로 온기를 나르던 전기오븐은 더 이상 삶의 희망을 해동(解凍)시킬 수 없는 상태로 놓여있고 그 안에는 아빠의 배설물을 닦아내던 기저귀만 수북하다. <우리 멧돼지 나오는 집으로 갈까요?>는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현준 집으로 시간을 되돌린다. 치매와 중증 뇌졸중으로 멧돼지 악몽에 시달리는 아빠를 간병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는 엄마의 헌신적인 간병은 아들로 이어지며 시간은 30년이다. 아빠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시점은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있는 몇 해 전이다. 아빠는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중증 치매에 시달려도 80년대 기억만큼은 또렷하다. 80년대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아파트 붐이 일어나며 한국 사회는 중산층이 증가 되던 시기였다. 월급봉투만으로도 내 집 마련 아파트 한 채 희망이 있었고 지하철 2호선 개통(1984)으로 도심 빌딩은 높아졌다. 서울발전은 초고속 속도를 내며 한국프로야구도 국민적인 스포츠로 성장해 가던 시기였다. MBC 청룡, 롯데자이언츠, 삼미 슈퍼스타즈, 해태 타이거즈, OB 베어스는 구단별 어린이야구 회원을 모집하며 야구 유니폼 전성시대가 열리던 던 시절이었다. 돈가스와 함박스테이크를 썰던 경양식집은 외식 장소였고 영화의 특정 장면이 그려진 극장간판으로 줄거리를 상상할 때였다. 88올림픽 개최지로 가슴은 벅찼고 굴렁쇠 소년은 국민 가슴을 심쿵거리게 만들었다.

간병 살인이 일어나던 4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현준이는 대리기사를 하고 낮에는 아빠의 휠체어를 밀며 지하철이 끊기는 시간까지 서울 도심을 다니는 일이다. 이유가 있다. 휠체어를 오래 밀수록 아빠는 멧돼지가 집으로 출몰하는 악몽을 시달리지 않고 잠들기 때문이다. 길거리 사람들이 넘쳐나고 호황을 누리던 80년대 거리, 백화점, 경양식집 스프, 전자 오븐으로 계란과자를 구워내던 시간만 기억하는 아빠와 OB 베어스 야구모자를 쓰고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대화가 반복적인 일상으로 된 지 오래다. 아빠는 치매에도 검정 멧돼지가 습격하는 집을 피해 그 시절 파편적인 기억의 전류로 꿈을 꾸고 있다. 멧돼지가 나타나는 집은 어둡다. 스위치를 올려도 전기가 들어올 수 없는 집은 더 이상 아빠의 기저귀와 분유를 살 수 없는 숨통을 끊고 싶은 절망의 집이다. 흙빛 집으로 검정 멧돼지가 달려드는 악몽의 집은 전기선이 뽑히고 커튼으로 불빛을 가리며 살아가야 한다. 대를 이은 헌신적인 간병으로 버텨도 세계 경제 10위권의 한국 사회는 현준이네를 80년대로 되돌릴 수 없다. 방문하는 사람은 전기료와 밀린 월세 청구서를 내미는 집주인 소리와 이들 삶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고모( 박현미 분)가 유일하다. 연극은 4년 전으로부터 시간을 타고 아빠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10년 후 1996년 전 시간으로 VHS 비디오테이프처럼 다시 한번 되돌아간다. 80년대 어린이야구를 좋아하던 현준이는 교복 입은 현준(김영익 분)의 시간으로 성장했고 엄마(이금주 분)의 헌신적인 간병의 사투(死鬪)가 비디오 재생처럼 장면으로 쏟아진다.

'우리 멧돼지가 나오는 집으로 갈까요?'. 조현지 극단 은행나무 기획 제공

군복을 입은 현준(2003)의 시간에서는 간병으로 엄마도 쓰러져가면서도 호전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말에 현준은 "엄마는 할 만큼 했어요. 이렇게 이것보다 더할 수 있겠어요. 엄마는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했어요, 인간적으로 아빠 간병을 더 잘한다는 건, 그건 한계예요. 엄마는 열심히 해서 궁지에 몰리게 된 건데." 윤미현은 간병 살인을 할 수밖에 없는 현준이네 30년의 질긴 간병과 투병의 가족사(史)를 돌아 4년 전으로 장면을 멈춰 세운다. 현준이는 전기오븐에 기저귀를 채워 넣고 "이제 오븐에 구울 수 있는게... 아빠 기저귀밖에 없어요" 마지막 기저귀를 갈고 기억의 여행을 떠난다. 어린 시절 소풍 이야기, 단란한 가족들의 식사, 캠코더로 가족을 촬영하던 소소한 기억들, 소풍 가방에 넣어주던 오븐 계란과자 이야기를 꺼내며 아빠 휠체어를 밀고 마지막으로 향한 집은 서울경양식집이다. " 어릴 때 먹던 것을 먹고. 어릴 때 보던 숟가락과 포크를 보면 더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 봐... 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절망의 입으로 스프를 채워 넣고 마지막으로 아빠한테 던진 말은 " 저한테는 아빠가 검은 멧돼지였어요." 하며 삶의 숨통을 끊는다. 멧돼지가 출몰하는 집에서 들리는 뉴스 소리는 "뇌졸중과 치매에 걸린 아버지의 간병을 혼자서 도맡다, 칼로 찌른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거동이 불가능한 아버지를 몇십 년 동안 보살피다 간병 살인을 저지른 것인데요. 대소변을 받아낸 기저귀를 집 안 곳곳에 쌓아 두고 있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눈에 띄는 것은 공간 활용이다. 현준이네 특수한 시간과 배경을 영상으로 전경화를 이뤄 공간을 확장한 것이고 회복할 수 없는 80년대의 가족 시간을 더 이상 작동할 수 없는 가전제품들로 오브제를 이룬 것이다. 특히 오븐 렌즈 기저귀 설정은 80년대 단란한 가족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는 삶의 절망을 비극적으로 환유시킨 것이고 절망의 죽음과 살인으로 이어지는 독박 간병 사회적 문제를 멧돼지 집으로 은유한 작가적인 발상이 좋았다. 그러나 <우리 멧돼지가 나오는 집으로 갈까요?> 라는 발상만큼 독박 간병으로 인한 살인의 당위성을 채워가는 시간으로만 그려졌다. 사회적 문제만큼 특별한 현준이네 가족사가 되지 못한 것은 아쉽고 연출언어가 희곡을 확장해 무대로 채우지 못한 것은 시간만 배치하는 장면의 이미지로만 그려졌다. 좁혀 말하면, 윤미현의 <우리 멧돼지가 나오는 집으로 갈까요?>는 희곡으로 읽을 때 아프고, 무대로 펼칠 때 가족의 비극은 뉴스를 장식하는 앵커 멘트와 현실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한국 사회문제를 꾸준하게 진단하고 담아내고 있는 작가 윤미현의 희곡은 무대적 상상을 방대하게 넓혀줄 만큼 이야기는 매력적이고, 배우들의 연기는 연륜으로 무대를 채우고 있다.

◆'가정식 백반이 나오는 집' 조한빈 작, 황태선 연출<식사>

'한 끼 식사로 가족이 되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

'식사'. 극단 창작집단 지오 제공

가족 식사도 특정한'가족 모임 식사'로 대체되는 시대다. 오죽하면 이경규, 강호동의 JTBC 예능 '한끼줍쇼'가 시청률 대박을 터트렸을까. 그만큼 가족식사가 사라져가는 시대다. 신춘문예 페스티벌 조한빈 작, 황태선 연출 <식사>(창작집단 지오)는 혼밥족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는 작품이다. 작가가 연극을 하며 혼밥이 익숙해질 때 문득 작품을 구상한 작품은 웃음은 보너스다. 어느 가정집 컨셉인가 하면서도 <식사>는 핵가족 시대 사회현상을 연극적으로 능청스럽게 그려낸다. 작품은 가족이 붕괴하는 시대에 밥 한 끼 식사로 ' 가족 식사 대행 서비스'를 한다는 설정이디. 마지막 장면까지도 전화 통화 내용이나 방문객 초인종, 일탈적인 컨셉을 가족으로 생각하고 지나치면 연출설정을 이해 못 할 수 있다.

연극<식사>은 프롤로그부터 라벨의 볼레로 음악으로 가족 구성원을 그려내는데, 가족과 식사 문화가 균열되어 마치 인형처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기계적으로 희화화한다. 작가와 작품 의도를 " 야심 차게 모 대학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배우의 삶을 꿈꾸며 극단에 들어갔다가, 창작극을 하고 싶다는 대표의 등쌀에 못 이겨 써본 희곡이 덜컥 신춘문예에 당선된 아르코 예술 극장을 배우로 먼저 서야 하는데 작가로 먼저 마주하게 되어 기쁘고도 슬픈 영광스럽지만 씁쓸한 작가 조한빈" 예능프로그램처럼 재치 있게 소개하고, 상·하수의 무대 공간과 극 중 인물을 소개하며 웃음이 초반부터 빵빵 터진다. 가족 식사 역할극으로 무대를 놀이로 배치하는 황태선 연출은 장면 미장센도 조명 공간으로 처리하면서도 전경(全景)이 명확하다. 무대는 식사 대행 가족 놀이 세트와 소품처럼 살려내는 감각도 돋보인다. 한 아파트 가정집을 개조해 영업하는 엄마(한은지 분)는 몇 가지 가족 식사 규칙(식사 전 손발 씻기, 청결, 스마트폰 끄기, 노트북 안 하기) 등을 만들어 놓고 가족(손님) 식사를 예약한 사람들이 방문한다. 엄마는 발레 동작처럼 걷고 부엌에서 그릇을 래퍼 리듬으로 닦는다. 방문자들은 집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가족이 된다. 가족 식사에 허기진 사람들(아빠, 아들, 딸)이 집으로 찾아오고 아버지는 "오늘은 현관 비밀번호를 잊어버렸네요" 하며 집주인처럼 등장한다. 딸과 아들이 뒹굴며 막장 사랑을 고백하고 아버지는 식사비를 줄 수 없다며 진상 고객을 처리하라고 깽판 친다. 가족 식사 규칙을 어겨 쫓겨난 고객 항의 방문에 엄마의 칼날이 공포 분위기를 만들고 막장 가족이라고 생각할 때쯤, '아, 가족 식사 대행 서비스' 설정이네, 하며 반전의 웃음이 터진다.

가족이 되고 싶은 이들의 식탁으로 10첩 반상이 올라오고 반찬의 향과 꽃게 찌개는 관객석으로 냄새가 진동하며 가족 식사의 의미를 부여한다. 마지막 장면은 또 다른 아들이 가족 식사를 해결하려고 식사 대행 집으로 방문하면서 끝나는데, 이때까지도 웬만해서는 설정을 눈치채지 못한다. 작가는 가족이 분열되는 시대에 한 끼 식사의 의미와 혼밥으로 달래는 인간 삶의 고단한 외로움을 ' 식사 대행 서비스'라는 설정으로 극을 구성하면서도 극 중간에 진상 고객을 식탁의 칼로 격퇴하는 섬뜩한 장면이 나온다. 한 끼 식사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족이 균열하고 죽음으로 붕괴되어가는 현실을 타격하고 반찬을 만들던 식탁의 칼날은 혼자 살아가며 식사 대행 사업을 하는 엄마도 혼밥을 먹을 수밖에 없는 삶이다. 식탁 칼로 자신을 지키며 혼밥으로 채우며 식사 대행 서비스를 해야만 가족이 될 수 있는 삶이다. 엄마 역할도 혼밥 외로움으로 자신을 위해 가족 식사 대행 서비스를 생각한 것처럼 말이다. 작가의 발상과역할마다 배우들의 연기가 좋다. 놀이로 달리며 웃음을 당기는 장면설정들과 연출이 신춘문예 당선 희곡을 온전히 무대로 풀어내면서도 의미를 연극적으로 확장하는 연출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신춘문예 단막극을 잘 만들었다. 엄선일은 무대에서 잘 노는 배우고 김형건, 박원진, 엄정인은 진지한 웃음의 풍자로 극을 만들어 내고 있다. 홍종화는 음악으로 장면을 살려낸다. <집의 생존자들>(작, 윤소정 연출, 하동기)은 연출의 공간 활용과 배우들의 연기가 두드러졌고 <식빵을 사러가는 소년>(작 이익훈 연출 하일호)은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의 은유가 뛰어나다.

'식사'. 극단 창작집단 지오 제공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