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예천군 노상리 흑응산 자락에 자리 잡은 대창중·고등학교의 101년
일제강점기부터 6·25전쟁, 산업화와 민주화의 역사를 담긴 대창
과거 100년을 이은 미래 100년의 도약 준비
경북 예천군 노상리 흑응산 자락에 자리 잡은 대창중·고등학교가 지난 2월 개교 101주년을 맞았다.
3·1만세 운동 이후 전국에 여러 민족학교가 흔적 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거나 자리를 옮겼지만, 대창학원은 101년 전 그 터에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때문에 대창중·고교는 일제강점기부터 6·25전쟁,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친 예천의 101년의 근현대사가 스며있다.
3·1운동 이후 인재양성, 국권회복의 민족 교육 운동이 전개될 당시 개교한 경북 북부지역의 학교 중 오늘까지 남아있는 학교는 대창학원이 유일하다.
◆근현대사 교육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대창'
일제강점기. 3·1운동 직후 1922년 2월 15일 예천읍 흑응산 송대언덕의 예천향교 풍영루에 대창학원이라는 명칭으로 학교가 설립됐다. 예천청년회가 주동이 되고, 예천유도회와 예천군민이 십시일반 모아 낸 기부금 2천여원을 종잣돈 삼아 개교했다.
하지만 개교 후 일제의 탄압으로 대창학원은 운영난을 겪게 됐다. 학교가 위기 처하자 당시 예천청년회 회장이었던 벽천 김석희 선생 외 4인은 학교운영권을 공동 인수하고 학교를 지켜냈다. 김 선생은 제1대 교장을 맡아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는 기치로 대창학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당시 대창학원은 일제의 만행으로 갖은 억압과 가난에 굶주린 민초들에게 민족적 자각을 일깨워 주는 새로운 희망이었다.
이렇게 대창학원이 개교했다는 소식이 경북 전역으로 퍼지면서 예천을 비롯한 안동, 문경, 의성, 영주 등에 살던 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일제가 만든 보통학교에 입학하지 않고 대구고보나 서울로 유학하지 못했던 이들이 모여든 것이다. 이때 모인 학생만 15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학원의 학제는 4년제로 당시 공립보통학교의 6년제 과정을 4년 동안 속성으로 가르쳤다. 교과목은 고등과와 보통과로 나눴으며, 민족의식을 고취하고자 우리 역사도 암암리에 가르쳤다.
교사는 예천향교 부속 건물을 이용하다가 예천읍 노하리에 있던 조선시대 객사 건물로 옮겨 1927년 3월 2일부터 교실(현 행정실 건물)로 사용했다.
일제의 탄압에서 벗어난 해방 이후 대창학원은 1945년 대창공민학교(1947년 2월 15일), 대창공민중학교(1947년 11월 1일), 대창중학원(1948년 7월 26일), 대창초급중학교(1949년 1월 17일)로 개편 운영했다.

설립자 벽천 김석희 선생을 이어 1950년 10월 20일 제2대 교장으로 송원 김교용 선생이 취임을 했다. 송원 김교용 선생은 1997년까지 대창중·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이후에는 2012년까지 대창학원 이사장을 맡았다.
김교용 교장이 취임을 한 같은해 6월 1일에는 대창초급중학교에서 대창중학교로 교명을 바꿨고 1953년 4월 15일에는 대창고등학교를 설립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1969년 2월 각 학년 5학급으로 증설 인가를 받아 전체 15학급으로 학교를 운영했으나, 인구가 줄면서 1973년 11월 학년 4학급으로 감축됐다.
학생수가 줄고 학급이 감축되는 상황임에도 대창학교는 학생들을 위한 시설들을 건립하는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73년 2월 15일 개교기념일을 기념해 교사 3층 3개 교실을 완공했고, 같은해 11월에는 예천향교 풍영루 유지에 2층 건물로 특별교실을 지었다.
대창학원은 1948년 7월 20일까지 제25회 졸업생 2천409명(여학생 148명 포함)을 배출했으며, 뒤를 이은 대창중학교에는 현재 120여 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다. 대창고등학교에는 220여 명이 재학 중이다. 올해까지 대창중·고교 졸업생은 2만3천여 명에 달한다.
대창중·고교는 교명과 경영자가 바뀌지 않고 유지된 역사 그 자체다. 1979년 4월 19일 흑응산 송대언덕의 자리 잡은 학교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송대언덕 의 이름을 딴 송대도서관을 개관했다.
2000년에는 제1대 교장의 호인 '벽천'의 이름 딴 대창고교 기숙사 '벽천학숙'을 준공했다. 벽천학숙은 우수 인재 발굴과 학습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학교의 경영방침을 잇고자 건립됐다. 기숙사는 3인 1실, 수준별 학습실 등을 갖추고 있다.
대창학원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경북 북부지역의 명문사학으로 올려놓는데 큰 공헌을 한 고(故) 송원 김교용 선생의 업적을 추모하고자 매년 기념 강좌를 열어 그의 유지를 이어가고 있다.
그의 유지를 이어가고 있는 대창학교의 학생들의 학구열은 전국에서 손꼽힌다. 2011년 당시 대창고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태우 군이 KBS '도전! 골든벨'의 82대 명예의 전당에 오른 것이다.
이어 같은해 연말에 열린 왕중왕전에서 100명의 도전자를 물리치고 왕중왕을 차지해 전국에 대창고등학교를 알리기도 했다.

◆100년의 역사를 품고 미래 100년으로 도약 준비하는 '대창'

대창학교 동문들은 대창의 100년의 역사를 기록해 책으로 엮어 낼 계획이다. 100년의 역사를 앞으로 100년의 대창을 이어갈 후배들을 위해 물려주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회(회장 정용인 전 대전고등법원장)를 만들어 '민족교육의 요람, 대창중·고등학교 개교 100년사' 편찬과 역사 자료 수집 전시 등 각종 기념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100년사에는 1924년 대창학원 1회 졸업생 권동하(전 2공화국 경북도의회 부의장), 제8대 조계종 서암(西庵) 종정의 유고(遺稿)가 담길 예정이다.
또 이수창 삼성생명회장, 세계 해외한인무역인협회장을 지낸 기업인 권병하 씨, 경한코리아 대표인 이상연 전 재경경북도민회장, 김종창 전 금융감독원장, 전 한국경제학회장인 김정식 연세대 상대학장, 트렉스타 권동칠 대표, 장해랑 EBS사장, 하이델베르크대학 철학박사 출신 김윤구 명지대 교수 등 많은 동문들이 대창학교과 관련된 애틋한 추억이 추억이 서린 글이 실린다.
미래 100년의 바통을 이어받은 제8대 남병규 대창고등학교 교장의 포부도 남다르다.
남 교장은 지난해 개교 100주년을 맞아 '바른 인성과 창의적인 사고로 미래를 주도하는 인재 육성'이라는 교육 목표로 미래 100년을 이끌어 갈 학교를 만들어 가고 있다.
또한 그는 학생 중심의 교육 과정 운영과 행복한 학교문화 조성, 구성원 모두가 주인이 되는 학교 공동체 구축 등에 온힘을 쏟고 있다.
경북도청 이전과 함께 경북의 중심이 된 예천을 기회로 삼아 '경북에서 가장 오고 싶은 학교'라는 슬로건도 내걸었다.
학생들이 오고 싶은, 학부모가 보내고 싶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자율과 자치로 함께 성장하는 인성 교육 ▷창의력 신장을 위한 독서 토론 ▷진로 설계를 위한 맞춤형 진로 탐색 프로그램 ▷고교학점제 선도학교 등을 추진하고 있다.
남병규 교장은 "101년 역사를 맞이하는 오늘까지는 졸업한 대창의 동문들의 몫이었다면, 앞으로의 새로운 100년은 재학생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며 "100년의 역사를 품고 미래 100년을 준비하는 대창학교의 앞날을 위해 많은 응원과 격려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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