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퀴로 달리는 경북도 명품길 2천km] 외씨버선길-1

입력 2023-04-12 14:15:28 수정 2023-04-12 20:18:29

사뿐 사뿐 빠져드는 4色 매력길,
외씨버선 길(Beosun trail) 245Km 라이딩의 흔적

경북 명품자전거 탐사대원들이 조지훈 문학관에 들러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경북 명품자전거 탐사대원들이 조지훈 문학관에 들러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길은 인생이다. 길은 이야기다. 흔적과 애환이 담겨져있다. 문득 1866년, 흥선대원군의 미움을 받아 옥사했다는 고산자(古山子) 김정호가 떠올랐다. 빈한한 계층 출신으로 두발로 한반도 곳곳을 누비며 그렸다는 '대동여지도'가 새삼 경외롭다. 한땀 한땀 목각으로 새겨졌을 이곳 저곳의 지형도에는 그의 피와 혼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길은 1939년 버선길로 거듭났다. 불과 19세에 불과했던 미소년 지훈(芝薰)은 놀라운 감성으로 일제의 어두운 암흑을 뚫고 우리네 정서에 새 희망의 두레박을 쏟아 부었다.

"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
.......
이 밤사 귀뚜라미 지새우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 승무, 1939년 12월 )

경북 명품자전거 탐사대원들이 영양 선바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경북 명품자전거 탐사대원들이 영양 선바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경상북도 자전거 탐사단은 이색 모험의 새로운 길 도전에 나섰다. 청록파 조지훈이 아로새긴 정감어린 시어를 두바퀴 자전거로 밟아보는 것이다. 바로 "외씨버선 길"이다. 오지중 오지라는 BYC, 청송, 영양, 봉화를 거쳐 김삿갓이 유유자적했다는 영월까지 이어지는 4색(色) 매력길 245Km의 험난한 장도다. 길은 애시당초, 산을 넘고 계곡을 가로질러 느릿느릿 스스로를 되새김질 해보는 걷는길이다.

그 길을 이참에 두바퀴 자전거로 땀 흘리며 숨가쁘게 달려가 볼 심산이다. 자전거의 접근이 힘든 산비탈이나 사찰등은 살짝 우회할 작정이다. 계곡쯤은 풍덩 두발 담그고 건널 각오다. 길은 4개군에 걸쳐 2개의 연결길, 13곳의 테마길로 엮여있다. 이름만 들어도 상상이 펼쳐지는 가슴설레는 이야기 길이다. 길은 청송에서 시작한다.

1길/ 주왕산 달기약수탕 길 18.9Km
2길/ 슬로시티 길 11.5Km
3길/ 김주영 객주 길 14.2K
4길/ 장계향 디미방 길 18.8Km
5길/ 오일도 시인의 길 11.2Km
6길/ 조지훈 문학 길 13.5Km
영양연결길 18.3Km
7길/ 치유의 길 9Km
봉화연결길 23.4Km
8길/ 보부상 길 18.9Km
9길/ 춘양목 솔향기 길 19.7Km
10길/ 약수탕 길 14.2Km
11길/ 마루금 길 16.6Km
12길/ 김삿갓 문학길 12.7Km
13길/ 관풍헌 가는길 24.6Km

이렇게 13개의 길을 오롯이 엮으면, 조지훈이 노래한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의 모양새가 만들어진다. 245Km의 장대하고 다채로운 길을 다섯번에 나누어 달린다.

경북 명품자전거 탐사대원들이 자전거를 끌며 박달령코스를 지나고 있다.
경북 명품자전거 탐사대원들이 자전거를 끌며 박달령코스를 지나고 있다.

◆산소 카페 청송, 3개의 길

청송 1길은 주왕산 대전사(大典寺)를 출발하여 너구마을을 지나, 달기폭포, 재미난 장난끼 공화국, 달기약수탕을 달리고 세종대왕의 왕비였던 소헌왕후를 기리는 소헌공원에 이르는 18.9Km의 길이다. 해발 800m까지 오른다. 2길은 11.5Km 슬로시티 길이다.

덕천 민속마을의 대표적인 고택인 송소고택의 운치를 맛보고, 소망의 돌탑을 지나 천연기념물 192호, 잘생긴 신기리 느티나무에 도착한다. 해발 300m 남짓의 얌전한 길이다. 3길은 소설가 김주영의 객주문학관을 찾아가는 14.2Km의 길이다.

경북 명품자전거 탐사대원들이 소설가 이문열의 고향인 두들마을을 지나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경북 명품자전거 탐사대원들이 소설가 이문열의 고향인 두들마을을 지나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인물의 보고(寶庫), 영양 5개의 길

영양은 의외로 다채로운 인물들로 꽉 차있다. 제4길은 고현지를 출발하여 이문열을 만나고 조선중기 음식의 대가였던 장계향에서 입맛을 다시고 곧게 솟구친 바위가 병풍처럼 휘감긴 선바위에 이르는 18.8Km의 길이다. 5길은 오일도 시인을 따라 영양읍내를 관통하는 11.2Km 길이다. 이제 본격으로 산속으로 들어선다. 노루목재, 금촌산길을 힘겹게 넘어 조지훈의 생가인 주실마을에서 끝나는 6길 13.5Km이다.

영양 연결길은 험준하다. 홍림산 휴양림, 도계임도를 거쳐 야생화가 흐드리지게 핀 일월산 자생화공원에 이르는 18.3Km이다. 이제 백미로 접어든다. 바로 제7길 "치유의 길" 6.7Km다. 짧은 거리이지만 내내 아름드리 낙엽송의 울창함이 탄성을 부르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아름다운 숲길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다.

경북 명품자전거 탐사대원들이 숲속 춘양목을 배경으로 사진을 촤령하고 있다.
경북 명품자전거 탐사대원들이 숲속 춘양목을 배경으로 사진을 촤령하고 있다.

◆선비의 정취, 봉화 4곳길

봉화 연결길은 깊고 힘겹다. 23.4Km에 이른다. 우련전을 출발하여 마당목이, 죽골 숲속을 달려 산타마을 분천역에 이르는 길이다. 해발 900m까지 오른다. 이어서, 제 8길 보부상길이다. 맷제를 지나 소천마을을 거쳐 자작나무숲, 살피재, 모래재 이윽고 춘양목의 본고장에 다다르는 18.9Km 길이다. 만산고택을 돌아보고 춘양목 군락지를 지나,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 뒷산을 지나는 19.7Km길은 제9길이다.

점점 험난한 10길, 14.2Km의 숲속으로 빠져든다. 주실령, 박달령, 오전약수터를 숨가쁘게 넘어 물야저수지를 건너 상운사 초입에 이른다. 해발 900m를 넘나든다. 하지만, 이건 약과다. 인내의 코스가 이어진다. 단단히 각오해야하는 영월이 기다린다.

경북 명품자전거 탐사대원들이 춘양역에 도착했다.
경북 명품자전거 탐사대원들이 춘양역에 도착했다.

◆김삿갓 풍류의 영월의 3길

외씨버선길 중 가장 최난이도 길속으로 들어선다. 제11길, 마루금길 15.2Km다. 상운사의 깊은 숲속에서 회암령, 어래산, 곱돌령을 숨가쁘게 지나 김삿갓 문학관에 안착한다. 해발 1,300m를 넘는다. 때론 길없는 길을 힘겹게 자전거를 어깨에 들쳐매고 걸어야 한다. 이윽고, 김삿갓의 풍류를 즐기는 12.7Km의 제12길을 마주한다. 김삿갓묘역을 지나 조선민화 박물관, 삿갓교, 와석리 마을, 들모래미, 김삿갓 면사무소까지 죄다 김삿갓 일색이다.

드디어 대망의 마지막 13길이다. 관풍헌 가는 24.6Km의 거리다. 남한강 계곡을 휘감아 돌아, 고씨동굴, 동강과 서강이 교차하는 팔괴마을, 마침내 영월읍내에 들어섰다. 청령포에 유배와 있던 비운의 단종이 한때 머물렀다는 관풍헌에서 245Km의 외씨버선길은 대장정의 매듭을 짓는다.

길은 일렁대는 감동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시작은 누구나 호기를 부릴수 있으되 끝매듭까지 버티는 일은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다. 그래도, 새벽잠 설치며 전국 각지에서 모인 외씨버선길 답사단 20명은 마지막 화룡점정을 위해 땀과 인내로 버텨냈다.

조지훈, 승무, 외씨버선길! 길은 외씨버선 마냥 얌전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땅에서 이토록 벅찬 감동을 주는 "길"을 만난 건 분명 큰 행운이다. 이제 그 격분속으로 촘촘히 들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