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애 화가
인간을 호모나랜스(Homo-Narrans)라 한다. 호모나랜스는 라틴어로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본질이 이야기하기에 있다고 하는 의미다. 앞으로 6월까지 계속될 이 칼럼은 나의 이야기다. 회화와 관련된 개별의 여러 에피소드에서 교육과 예술로 통합되는 하나의 에피소드다.
바람이 분다. 계절은 연분홍색에서 초록색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첫번째 칼럼은 '색' 이야기이다. 화가는 색을 사용한다. 모노크롬으로 작업을 할지라도 색을 사용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색이 빛을 흡수하고 반사한 결과인 이상 검은색, 흰색도 붉은색, 파란색만큼이나 엄연한 색이다. 어떤 풍의 그림을 그리든지, 어떤 표현기법이나 재료를 구사하든지 간에 화가가 색을 사용한다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즉 색의 사용은 화가의 핵심적인 일이다.
색 쓰는 일을 잘하는 데는 오랜 연습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미술을 공부한 이들은 나처럼 중·고등학생 시절에 수채화를 열심히 그렸을 것이다.
나의 본격적인 수채화 공부는 중학교 때 시작됐다. 중학교 1학년 때 미술부 선배가 사용한 미술 도구를 싸게 산다는 말은 내 일생일대의 거짓말이었다. 새로 산 전문가용 수채화 용품과 나무 이젤을 손에 쥔 나는 아버지를 속인 양심의 가책보다 전문적으로 미술을 공부하게 되었다는 꿈에 부풀어있었다. 칸칸이 20여 가지 색을 채워 놓은 팔레트는 눈부시게 감동적이었다.
수채화에서 색의 사용은 꽤 과학적이다. 미술이 무슨 과학이냐고 하는 것은 사실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수채화라고 하면 투명 수채화를 말하는데 그릴 때 합리적으로 색을 배치하지 않으면 실패하기 쉽다. 밝고 희미한 색에서 어둡고 진한 색으로 색을 겹쳐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색이 혼탁해지고 색층으로 구축된 투명한 공간감을 나타내기 어렵다. 또한 물에 약한 종이가 붓의 마찰에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그래서 수채화 공부는 색 감각, 관찰력, 합리적인 사고력과 사물(대상)에 대한 민감성, 태도를 모두 기르는 한 방법이다.
이렇게 길러진, 색을 매개로 얻은 힘은 당연히 미술 이외의 영역에서도 작용한다. 수채화 공부가 흔히 기교라고 하는 표현 기술을 기른다는 말은 참으로 한정적인 이해다. 물론 색을 사용하는 기술을 습득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공부가 종이 위에 색을 칠하고 그 결과를 주시하는 일을 반복하는 동안 만들어진다. 이처럼 교육적으로 가치 있는 미술을 학교에서 더 많이, 제대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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