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집권화, 무능이 임진왜란 불러, 지방 홀대 징비록에서 교훈 얻어야
왜구(1592년 5월 23일)는 빨랐다. 부산진에서 한양까지 스무 날 걸렸다. 조선의 무능과 안이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경상우수사 원균은 적선(敵船)이 90척이라 보고했다. 경상감사 김수는 400척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본이 이끌고 온 선봉 함대는 700척, 군사는 1만8천700명에 달했다. 정보 부족이 임진왜란을 키웠다.
서애 류성룡은 '징비록'(懲毖錄) 첫 장에 '다시는 같은 전란(임진왜란)을 겪지 않도록 지난날 조정의 실책을 반성하고 앞날을 대비하기 위해 저술한다'고 적었다. 징비록에는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조선 반도의 전화(戰禍)가 담겨 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최근 틈만 나면 '징비록' 읽기를 권한다. 중앙집권의 폐해가 임진왜란을 불렀고, 당시 상황이 '징비록'에 잘 나와 있다는 이유를 든다.
대부분 지방 관료는 한양에서 파견, 지역에 대한 애정이 약하고 복귀할 기회만 노린다. 이 과정에서 심한 수탈이 자행됐고 지방의 삶이 무너졌다. 지방의 위기는 곧 나라 전체를 위태롭게 했다는 논리다.
이 도지사는 "낙동강은 경북에 있는데 환경부 관할이고, 구미에 있는 금오공대 역시 교육부가 전권을 행사한다"며 "지방을 모르는 중앙에서 지역을 관리하니 엇박자가 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세계 최대 규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첨단 반도체 제조공장 5곳, 국내외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설계 기업 150곳 유치)를 경기 용인 일대에 둔다는 계획을 발표한 뒤 경북이 상실감에 빠져들고 있다.
수도권 공장 총량 규제가 사실상 붕괴, 윤석열 정부가 간판으로 내세웠던 국가균형발전 정책도 '속 빈 강정'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어서다.
특히나 경북은 지난 대선에서 전국 최고 득표율로 윤석열 정부 탄생을 견인한 터라 허탈감이 배가되고 있다. 당장 경북도와 구미시가 사활을 걸고 있는 '구미 반도체 특화단지' 유치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지역 정치권 등에서는 정부의 발표 내용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데 있다. 임진왜란도 왜구에 대한 정보 부재가 화근이 됐다.
정부의 안배와 균형 정책 없이는 지역 산업 생태계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몇 안 남은 대기업마저 수도권으로 스멀스멀 옮겨 가면 끝내 지역 산업 생태계는 붕괴된다. 인력을 공급하는 대학도, 지역의 인구도 쪼그라들게 된다.
한때 '경북 사투리만 써도 사윗감 70%는 따고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경북이 산업과 인재의 요람이었고 오늘날 대한민국을 있게 한 주역이라는 자부심이 컸다.
작금은 경북 사투리가 튀어나오면 '촌뜨기'라 놀림받기 일쑤다. 이명박 정부 때 수도권 규제가 야금야금 풀리기 시작하면서 생긴 지방의 '변방화' 현상이다.
지방의 변방화는 보수의 몰락까지 불렀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등한시한 정부도, 수도권 논리에 가로막혀 약속을 깨고 백지화한 밀양 신공항도 모두 보수 정부 때 자행됐다.
보수는 간발의 차이지만 정권교체를 이뤄냈고 연이은 지방선거에서도 승리했다. 하지만 죽을 고비 넘겼다고 태평성대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정권교체 8할은 보수가 잘해서가 아닌 전 정부의 무능, 더불어민주당의 오만과 독선이었다.
서애는 징비록에서 편안할 때 환란이 닥친다고 경고했다. '태평성대'인 양 지방을 차별하고 절제와 균형을 망각한 채 오만한 국정을 편다면 또 어떤 '고난'이 닥칠지 모른다. 지금이라도 지방을 살리는 보수의 '징비'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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