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연결되지 않을 권리

입력 2023-03-20 20:35:14

석민 디지털논설실장
석민 디지털논설실장

정부의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이 '주 69시간 장기간 노동' 프레임의 덫에 걸려든 것 같다. 주 69시간을 일하려면 하루 10시간씩 일주일 내내 일해야 한다. 쉬지 않고 한 달 내내 하루 10시간씩 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주 69시간 노동 허용'이라는 뜻은, '주 52시간 근로'의 기본틀 안에서 '아주 특별한 경우 노사의 합의 아래 실시하는 예외적인 사례'로 해석하고 적용해야 한다. 갑작스럽게 납기일을 맞추기 위한 잔업이라든가, 벤처기업에서 막바지 개발에 열을 올릴 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주' 단위 52시간 근로를, '월' '분기' '반기' 등으로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이 그렇게 반대할 일인가 하는 생각이다.

확실하고 즉각적인 보상은 노동시간 유연화의 전제 조건이다. 나중에 '장기 휴가'를 보장한다는 식의 발상은 사문화(死文化)할 우려가 크다. 정부에서 보완책을 마련한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민노총·한국노총과 공공 부문 및 대기업 노조 등 일부는 기득권 세력으로 군림하고 있지만, 여전히 수많은 노동자들이 알게 모르게 이런저런 형태로 부당하게 핍박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가 근로시간 제도 개편과 함께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겠다고 밝혀 눈길을 끈다. 스마트폰과 SNS의 사용으로 언제 어디서나 업무가 가능해지면서 새롭게 정의되고 있는 노동기본권이다. 퇴근 후 회사에서 연락받지 않을 권리라고 해도 좋겠다. 프랑스는 2017년부터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실제로 취업 포털의 직장인 대상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3.5%가 퇴근 후 업무 관련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64.1%는 바로 답장을 했고, 19.4%는 알람을 끄거나 보지 않고 다음 날 답장했다.

현실적으로 퇴근 후 또는 휴일에 회사로부터의 연락을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나중에 회사에 출근해서 해도 될 일을 마구잡이로 문자·카톡하는 일부 상사들의 행위는 노동자에게 '노동 아닌 노동'을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쩌면 법적인 문제라기보다 에티켓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다.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은 사용자 측면에서의 합리성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 보호에 주안점을 둘 때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