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꼬붕’과 ‘오야붕’

입력 2023-03-19 18:28:40 수정 2023-03-19 19:19:51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꼬붕'이라는 속어가 다시 정치권에 등장했다. 17일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전한 "이재명 대표 외엔 답이 없으니 단합해야 한다"라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말에 더불어민주당 중진 이상민 의원이 "우리가 (문 전 대통령의) 꼬붕인가?"라며 반박한 것이다. 일본어에서 온 '꼬붕'(子分)은 '오야붕'(親分)의 부하 조직원을 가리키는 야쿠자 용어다. 비속어인 '똘마니'와 같은 의미라고 볼 수도 있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강성 지지층인 소위 '개딸'(개혁의 딸)에 장악돼 이 대표의 사당이 된 지 오래다. 박 전 원장이 옮긴 문 전 대통령의 발언은 이 같은 민주당 내 상황을 인정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 대표를 중심으로 단합하라"는 전직 대통령의 '상왕 정치'에 중진 의원이 발끈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문 전 대통령 시절 정부 요직과 당권을 장악하면서 잘나가던(?) '친문'(親文)계 의원들은 당내 소수파로 전락, 민주당이 전직 대통령의 '꼬붕' 노릇을 할 리가 없다. 다만 문 전 대통령의 발언은 이 대표가 사법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 하더라도 지금 상황에서는 딱히 이 대표를 물러나게 하고 대안을 찾기는 어렵다는 현실을 인정한 것일 터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직 대통령이 당내 상황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훈수를 두는 모습은 자신의 비서실장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사면초가에 빠진 상황에서도 대표직을 내려놓지 않는 이 대표의 처신을 비판하던 중진 의원의 눈에 시답잖게 비친 모양이다.

지금 민주당은 이 대표의 '꼬붕' 노릇을 자처하는 친위 부대인 친명계가 다수지만 소수의 '친문'도 있고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비명·비문이 혼재하고 있다.

정치권은 대권 주자나 유력 정치인을 중심으로 계파를 만들어 세력 다툼을 벌이는 것이 상례화된 집단이다. 그래서 '오야붕'을 중심으로 한 '꼬붕 정치'에 대해 용어를 문제 삼아 비난할 이유는 없다. 소신파인 박용진 의원도 초선들에게 "중진의 '꼬붕'이나 '가방모찌'가 돼선 안 된다"며 당내 계파 정치에 초선들이 물드는 상황을 신랄하게 지적한 바 있다.

국회의원들이 공천권을 가진 실세나 권력자에 줄을 서는 꼬붕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오야붕'으로 섬기는 '꼬붕'이 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didero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