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홍길 아양아트센터 전시기획팀 주임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선택의 갈림길 앞에 놓인다. 아주 사소한 것들부터 시작해 학창 시절에는 진로에 대한 선택, 성인이 됐을 때는 직업의 선택 앞에 놓이며 매번 정답이 없는 결심을 통해 정해지는 길을 좇아간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방향을 잃고 지치는 순간도 오기 마련이다. 이처럼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시련과 고통의 순간에서 우리는 때로 우연히 만나게 된 누군가와의 인연을 계기로 이 순간을 극복하기도 한다. 나 또한 진로에 대한 연이은 실패로 인해 고난을 겪었던 순간이 있었고, 이때 나를 알아봐 준 고마운 분이 있다.
대학 입학 이후 내 목표는 교편을 잡고 많은 학생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미술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그 꿈을 위해 20대 시절 휴학, 여행 등을 미루고 대학원에 진학하며 학업에 집중해왔다. 취직을 위한 자격을 모두 갖춘 후 지역에 제한을 두지 않고 많은 학교들에 지원서를 제출하고 실제로 기간제 교사로 짧은 기간 학생들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으나, 이후에도 이어지는 수많은 도전에도 불구하고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렇게 하염없이 무용한 시간들을 흘려보낸 끝에 냉혹한 현실 앞에 이 꿈을 포기하기로 결심한다. 이후 고향인 거창으로 돌아가 변변치 못한 갖가지 일들을 하며 하루하루 지내고 있을 무렵 나에게 새로운 꿈을 선물해 준 한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우연한 기회로 취직하게 된 한 사무실에서 만난 선생님은 내 삶에 스승님, 멘토, 사부와 같은 다양한 수식어로 자리 잡았다. 일을 배우며 몰랐던 부분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짜릿한 성취감과 희열을 느낄 수 있었고, 마음 역시 잘 맞는 직장 동료들과 함께 나날이 자라나는 꿈들로 가득한 일상을 보냈다. 업무가 많은 탓에 늘 야근을 했지만 다 함께 밤을 새는 날에도 불만을 내뱉는 직원 없이 힘을 합쳐 어떤 일이던 부족함 없이 마무리해냈다.
그분과 함께하는 나날들을 통해 나는 새로운 목적지를 찾을 수 있었다. 서툴더라도 시간을 들여 잘 해내고 싶은 일이 생겼고 꾀부리지 않고 노력하며 자리를 잡아갔다. 선생님은 구태여 티 내지 않는 나의 숨은 노력들을 모두 알아주는 분이셨다. 그렇게 인정받고, 더욱 노력하며 나의 몸과 마음은 다시금 건강해졌다.
선생님은 식사하실 때 분홍 소시지와 탄산음료를 즐겨 드셨는데, 나는 선생님의 건강을 염려해 말리곤 했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선한 마음씨로 주인 잃은 유기견, 유기묘를 집에서 돌보며 길을 잃은 동물들에게 따뜻함을 내어주는 분이셨다. 그렇게 자신보다 주변의 것들을 먼저 챙기며 정도(正道)를 걷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직업적인 측면에서뿐 아니라 내 삶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목적지를 뚜렷이 그려볼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나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는 결과들에 책임을 가지며 주체적으로 나의 인생을 만들어간다. 하지만 선택의 갈림길에서, 혹은 고난의 순간에서 뜻하지 않게 만난 누군가로 인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기도 한다. 삶은 외로운 것이라 치부하기엔 우리 곁에 참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누군가에게서 받은 영향력으로 나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음을 잊지 않고 나에게 다채로운 영향을 전달하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되새겨 본다.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의 힘든 순간에 전환의 계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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