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국선 변호인이 만난 사람들

입력 2023-03-09 10:53:01 수정 2023-03-11 07:35:05

몬스테라 지음/ 샘터 펴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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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테라 지음/샘터 펴냄
몬스테라 지음/샘터 펴냄

"나에게 배당되는 것은 사건이지만 내가 마주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사건과 배당. 변호인 이야기다. 10년 간 사선변호를, 8년간 국선변호를 맡아 온 한 여성 변호인이 책을 펴냈다. 저자의 활동명은 몬스테라 변호사다.

왜 몬스테라일까. 식물 몬스테라인 것인데, 이 식물은 자라면서 잎이 찢어지고 구멍이 생기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이것을 정상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18년 간 변호인 생활을 하며 저자는 2천여 건의 사건을 맡아왔다. 결국 2천여 명의 사람을 만난 셈인데, 그가 마주한 사람들은 몬스테라 같았다. 마음이 찢어지거나 구멍난 채로 살아가는. 그 과정에서 저자는 깊이 고민한다. 잎이 찢어지고 구멍이 생겨 그 자체로 아름다운 몬스테라처럼 우리도 그렇다는 것을.

국선변호인은 빈곤 등의 이유로 변호사를 선임할 수 없는 형사 피곤을 위해 법원이 선임해 붙이는 변호인이다. 그중 국선전담변호사는 오로지 국선 사건만 담당하는 이로, 소속된 법원과 재판부가 정해져 있고 매달 일정한 개수의 사건을 배당받는다. 저자의 책상 위로는 늘 두둑한 사건 기록지가 배달되는데 묵직한 서류 더미 속에서 저자는 본인 앞에 당도할 한 '생'을 목도한다. 사건 너머 사람이 보이는 순간이다.

어쨌든 법원이다. 즉 모두 범죄를 저지른 게 확실한 이들일 텐데 몬스테라 변호사는 죄의 경중이나 상대를 가리지 않고 이들을 기꺼이 두 팔 벌려 맞이한다. 그가 한층 인간적인 이유는, 그렇게 맞이한 상대와 부둥켜 안은 채로 함께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범죄자들이 다시 길을 나설 수 있도록 신발 끈을 단단히 메어주기도 하는 데 있다. 저자가 살아가는 세상도 어떤 부당함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막막함에 눈물흘리기도, 순간의 웃음으로 행복해지는 세상이다. 저자 역시 사람을 마주하는 사람이다.

책의 모든 에피소드에서 독자는 법적 조력을 넘어 선의의 영역에서 마음껏 유영하는 변호인을 만날 수 있다. 변호인의 순간의 도움이 큰 도움이 되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보면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그 역시 어린 시절 도라지를 파는 할머니 옆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가난이 무엇인지 모르는 나이였지만 도라지를 다 팔지 못하면 할머니가 다시 무건 짐을 머리에 얹고 위험한 산길과 흙길을 힘들게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만은 알았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 앉아 밥을 먹어본 사람은 매우 근시안적이고 일시적인 도움도 얼마나 절실한지 아는 셈이다.

몬스테라 변호사는 이렇게 단순히 타인에 대한 동정이 아닌 자신이 겪는 아픔에 비춰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한다. 범죄를 옹호하는 게 아니라 범죄자가 돼버린 그들을 생각하는 건데 결핍이나 단순한 사고만으로 인생이 막막해질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렇기에 사회가 안전망을 짜야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리고 그것이 타인의 위한 일뿐만이 아니며 우리 역시 그 안전망을 이용할 수도 있다.

'우리가 빈곤한 사람, 취약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쓰는 것은 언젠가 나와 내 가족이 이용할 수도 있는 그물을 함께 짜는 일이다. 그럴 때 우리는 낯선 서로의 보호자가 돼 줄 수 있다'

이 국선변호인이 말하는 것은 거창한 담론이 아니다. 우리가 놓쳐버린 사람, 외면했던 삶 그리고 미처 알지 못했던 세상이다.

문득 9년 전 한 장면이 떠오른다. 세월호 참사 당시 전국의 모든 자원봉사자가 목포로 몰렸다. 그중 한명의 뉴스 인터뷰였는데 왜 자원봉사를 왔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 사고 역시 나의 일, 나의 가족일이 될 수도 있었다. 참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나와 같은 평범한 시민들이 뭐라도 해야한다"

사람을 향해 마음을 쓰는 일의 힘을 믿는다. 284쪽, 1만7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