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소주, ‘서민의 술’ 탈락?

입력 2023-03-01 20:28:36

이대현 논설실장
이대현 논설실장

TV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빈부(貧富) 격차를 여실히 보여 주는 것 중 하나가 술이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돈 많은 주인공 '진도준'은 고급 양주를 마시는 반면 '한지붕 세가족'의 돈 없는 주인공 '순돌이 아빠'는 소주를 마신다.

소주는 막걸리와 함께 대표적인 '서민의 술'이다.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해 우리 국민은 소주를 많이 마신다. 2021년 기준 국내 제조장에서 반출된 소주량은 82만5천848㎘, 360㎖들이 병 기준으로 22.9억 병이다. 성인 1인당 1년에 평균 52.9병을 마신 셈이다.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소주가 잘 팔린다'는 말이 오랫동안 정설이 됐었다. 경제지표가 악화한 상황에서 소주 판매량이 증가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불황에 소주가 많이 팔린다는 말은 옛말이 됐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부터는 소주도 소비 심리 위축을 피해 가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소주 가격 인상을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지난해 2월 소주 업계가 약 3년 만에 소주 가격을 8% 가까이 올렸다. 소주 원료인 주정(酒精) 가격이 오르자 소주 업체들이 출고가를 인상한 것이다. 출고가가 오르자 식당이나 주점에서 파는 소주 가격도 덩달아 올랐다. 소주 판매가가 4천 원에서 5천~6천 원으로 뛰었다. 일부 업소에선 1병에 1만 원을 받는다고 한다. 소주가 더 이상 '서민의 술'이 아니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급기야 정부는 고물가 대책의 하나로 소주 가격 6천 원 고착화를 제어하겠다며 실태 조사에 나섰다.

식당과 주점을 운영하는 이들에게 전적으로 화살을 돌리는 것도 무리가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재료비 인상으로 식당과 주점을 운영하는 소상공인들의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김병훈 시인은 시 '소주와 삼겹살'에서 '소중한 친구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 술이 빠질 수 없다// 삼겹살 같은 사람은/ 소주 같은 친구를/ 만나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일하고/ 찌푸린 일상에/ 그만 지친 그대여/ 이제 편히 쉬어도 좋다'고 했다. 퇴근 후 삼겹살에 곁들이는 소주 한잔은 고단한 하루에 대한 보상이자 내일을 위한 응원 역할을 톡톡히 한다. 삼겹살값도 오르고, 소주 가격도 올라 서민들이 시름을 푸는 것이 만만찮게 됐다. 갈수록 서민들이 살기에 팍팍한 세상이 되는 게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