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환의 세계사] 튀르키예 가지안테프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입력 2023-03-03 14:30:00 수정 2023-03-03 18:43:30

동서 화합 상징 도시, 지진 피해 딛고 부활 날갯짓 기대

가지안테프 시내 아타튀르크 동상과 광장
가지안테프 시내 아타튀르크 동상과 광장

지난 달 6일 발생한 진도 7.8 튀르키예 강진의 진앙지는 가지안테프 북서쪽 37km지점이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가지안테프는 인구 177만명(주변 포함 210만명)으로 튀르키예에서 6번째로 큰 도시다. 쿠르드족이 많이 살고, 내전 중인 시리아 난민도 다수 들어와 산다. 역사적으로는 아르메니아인과 유대인, 아랍인도 살아, 이 지역 방언은 아르메니아와 아랍어 발음의 영향을 받았다.

가지안테프는 튀르키예 공화국 성립과정에 애국심의 도시로 이름 높다. 오스만 튀르키예 제국이 1918년 1차 세계대전 패전국이 되면서 가지안테프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이때 무려 6천여 명의 시민들이 목숨 바쳐 항쟁했다.

1921년 앙카라 조약으로 가지안테프를 프랑스로부터 돌려받은 튀르키예는 왕, 지배자라는 뜻의 가지(Gazi)를 원래 이름 아인탑(Ayıntap)에 붙여 가지안테프(Gaziantep)로 명명했다. 애국심의 도시 가지안테프 일대는 역사적으로 그리스와 페르시아 문명이 합쳐진 화합의 상징 도시였다. 그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르네상스 화가 보티첼리가 1487년 그린 작품이다. 비너스가 오른손으로 가슴, 왼손으로 여성의 상징을 가리는 장면은 고대 그리스 조각에서 완성된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르네상스 화가 보티첼리가 1487년 그린 작품이다. 비너스가 오른손으로 가슴, 왼손으로 여성의 상징을 가리는 장면은 고대 그리스 조각에서 완성된 '수줍어하는 비너스(modest venus)' 조각기법을 오마쥬한 것이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소장.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비너스의 탄생'

가지안테프로 가기 전 먼저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도시 이탈리아 피렌체로 가보자. 중세 암흑의 시기 공화국 전통을 지켰던 인류 민주주의 역사의 보배 같은 도시다. 공화국 청사 동쪽에 아르노강이 흐르고, 단테의 베아트리체를 향한 연정이 스민 베키오 다리가 자리한다. 공화국 청사와 아르노 강 사이에 우피치 미술관이 맞아준다. '우피치'는 영어로 '오피스'에 해당하니 공적 사무소란 의미다.

피렌체를 지배한 메디치 가문이 살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미술관겸 박물관으로 전 세계 수많은 탐방객을 불러 모은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 보티첼리의 주옥같은 작품들도 이곳에 전시돼 있다. 보티첼리가 1487년 그린 "비너스의 탄생" 은 미술애호가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작품 앞에는 늘 구름 인파가 몰린다. 마치 파리 루브르의 레오나르도다빈치 작 "모나리자" 앞에 관객이 붐비듯이 말이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뒷쪽에는 종탑이 있는 중세 피렌체 공화국 청사.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뒷쪽에는 종탑이 있는 중세 피렌체 공화국 청사.

우리 역사로 치면 조선 성종 시대 그려진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찬찬히 뜯어보자. 바다를 배경으로 큼직한 조개가 놓여 있고, 조개 속에서 아름다운 금발여인이 수줍은 듯 두 손으로 알몸을 가리는 포즈다. 그리스 고전기인 B.C 4세기 완성된 '수줍어하는 비너스(Modest Venus)'기법을 오마쥬했다. 그리스로마 신화 미의 여신 비너스(그리스어 아프로디테)가 탄생하는 장면이다.

비너스 왼쪽에는 바람의 신 제피로스가 숨을 내쉬며 비너스를 해안가로 보낸다. 오른쪽 해안가에는 계절의 여신 호라이가 화려한 옷을 들고 비너스에게 입히려 기다리는 구도다. 문화나 예술은 한 시대에서 후대로 또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 다시 태어난다. 보티첼리가 피렌체에서 "비너스의 탄생"을 그리며 르네상스를 완성해가는 시점에서 천여년 시간을 되돌리고 장소를 동방의 튀르키에로 옮겨 보자.

로마시대 비너스의 탄생. 알몸의 비너스가 조개에서 태어나는 모습을 그렸다. 2-3세기. 가지안테프 제우그마 모자이크 박물관
로마시대 비너스의 탄생. 알몸의 비너스가 조개에서 태어나는 모습을 그렸다. 2-3세기. 가지안테프 제우그마 모자이크 박물관

◆가지안테프 제우그마 모자이크 박물관 '비너스의 탄생'

2009년 가지안테프를 찾았을 때 시내 아타튀르크 동상 광장 주변에 가지안테프 고고학 박물관이 자리했다. 시내 중심 언덕에는 로마 시대 성채가 상징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 이번 강진으로 역사유적인 로마 성채가 크게 훼손됐다고 한다. 필자가 가지안테프를 다녀온 2년 뒤, 2011년 가지안테프 고고학 박물관은 새로 지은 제우그마 모자이크 박물관으로 유물을 옮겼다.

유물의 대부분이 모자이크여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 모자이크는 그리스로마 시대 대리석이나 유리를 2-5mm로 잘게 조각낸 테세라(tessera)로 원하는 바닥을 포장하는 건축기법이다. 신화나 일상 같은 다양한 모습을 담은 예술작품이기도 하다. 대저택 바닥에 주로 설치했다.

리코메데스 궁정의 아킬레스. 병역기피를 위해 여장을 하고 숨어살던 아킬레스가 발각되는 장면을 그렸다. 2-3세기. 가지안테프 제우그마 모자이크 박물관
리코메데스 궁정의 아킬레스. 병역기피를 위해 여장을 하고 숨어살던 아킬레스가 발각되는 장면을 그렸다. 2-3세기. 가지안테프 제우그마 모자이크 박물관

제우그마 모자이크 박물관 모자이크들은 관람객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할 만큼 빼어나게 아름답다. 비록 모자이크 유물 수효는 안타키아의 하타이 고고학 박물관에 뒤지지만, 모자이크 하나하나의 예술적 가치는 그에 못지않다. 무엇보다 전시 공간은 하타이 고고학박물관은 물론 튀니지 수도 튀니스의 바르도 박물관보다 넓다. 세계 최대 규모의 전시장을 가진 로마 모자이크 전문 박물관인 셈이다.

제우그마 모자이크 박물관 작품 가운데 "비너스의 탄생"이 눈길을 끈다. 바다 속 조개에서 미의 여신이 태어나고, 양 옆으로 포세이돈의 아들이 트리톤이 호위하는 구도다. 피렌체 보티첼리 작품과 닮은꼴이다. 2세기 작품이니 1천년도 더 앞섰지만, 비너스의 자태는 더 야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을 손으로 가리지 않으니 수줍어하는 비너스가 아니다.

파시파에와 시녀. 남편인 크레타왕 미노스를 대신해 포세이돈의 벌을 받아 황소를 사랑하는 왕비 파시파에의 가련한 눈길. 2세기. 가지안테프 제우그마 모자이크 박물관
파시파에와 시녀. 남편인 크레타왕 미노스를 대신해 포세이돈의 벌을 받아 황소를 사랑하는 왕비 파시파에의 가련한 눈길. 2세기. 가지안테프 제우그마 모자이크 박물관

시공을 초월해 하나로 합쳐지는 "비너스의 탄생"에 시선을 오래 고정시킬 수 없다. 비너스를 돌려세울 만큼 눈부신 미모의 크레타 왕비 파시파에가 미노타우로스를 낳은 애꿎은 사연의 "파시파에와 다이달로스", 트로이 전쟁 참전을 피하려 여장을 하고 스키로스 왕국 리코메데스왕 궁정에서 공주들과 함께 살다 발각되는 아킬레스를 다룬 "리코메데스 궁정의 아킬레스", 제우그마 모자이크 박물관의 상징과도 같은 "집시(마에나드)" 작품이 헬레니즘풍 로마모자이크의 진수를 선보인다.

◆그리스 셀레우코스 장군과 페르시아 아파미아 부부 사랑

'제우그마' 이름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가지안테프 동쪽 멀지 않은 곳에 유프라테스강이 흐른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상징하는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은 터키 동부지역에서 발원해 시리아와 이라크를 거쳐 페르시아만으로 흘러간다. 이 유프라테스 강변에 B.C 300년 알렉산더 휘하였던 셀레우코스 장군이 도시를 건설했다.

자신의 이름을 따 '셀레우코스-유프라테스'. 이어 강 건너 동쪽 편에 도시를 하나 더 건설하고 '아파미아'라고 불렀다. 셀레우코스 장군의 아내 이름이다. 국적은 페르시아. 사연은 이렇다. 알렉산더가 다리우스 3세를 물리치고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한 뒤, 진정한 동서화합,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화합을 추진하면서 통혼 정책을 폈다.

파시파에의 청을 듣고 나무를 깎아 암소를 조각하고 있는 천하의 목공 다이달로스. 오른쪽은 아들 이카로스. 왼쪽은 파시파에의 황소 사랑 이야기를 전해주는 파시파에의 보모. 2세기. 가지안테프 제우그마 모자이크 박물관
파시파에의 청을 듣고 나무를 깎아 암소를 조각하고 있는 천하의 목공 다이달로스. 오른쪽은 아들 이카로스. 왼쪽은 파시파에의 황소 사랑 이야기를 전해주는 파시파에의 보모. 2세기. 가지안테프 제우그마 모자이크 박물관

자신도 페르시아 여인 록사나와 결혼했고, 페르시아 마지막 황제 다리우스 3세의 딸을 두 번째 아내로 맞았다. 부하 장군들도 모두 페르시아 여인들과 결혼하도록 했다. 알렉산더 사후 대부분의 그리스 장군들은 페르시아 아내와 이혼했다. 하지만, 셀레우코스 왕조를 열어 메소포타미아와 과거 페르시아의 광활한 영토를 통치한 셀레우코스는 해로했다.

금실 좋은 다문화 가정이었다. 애정이 도탑던 부부만큼이나 두 도시를 다리로 연결해 하나처럼 발전시켰다. 하지만, B.C 64년 로마가 이 지역을 정복한 뒤, 도시 이름을 제우그마(Zeugma)로 고쳤다. 부부사랑을 시샘했나? 로마시대에도 제우그마는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과 교류하면서 번영을 이어갔다.

부유층은 유프라테스강이 내려다보이는 터에 호화 빌라를 지었고, 바닥에 화려한 모자이크를 깔았다. 256년 사산조 페르시아 침략 때 파괴돼 3m 흙 속에 묻히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모자이크들은 1987년 우연히 발견됐다. 이후 1995년 튀르키예 정부가 유프라테스강에 댐을 만들면서 발굴돼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유프라테스강. 가지안테프 근교 제우그마를 흐른다. 그리스로마 시대 특유의 의인화 기법을 적용한 모자이크. 무생물인 유프라테스강을 사람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오른쪽 팔 아래 물단지 히드라에서 유프라테스 강물이 흘러나온다. 2-3세기. 가지안테프 제우그마 모자이크 박물관
유프라테스강. 가지안테프 근교 제우그마를 흐른다. 그리스로마 시대 특유의 의인화 기법을 적용한 모자이크. 무생물인 유프라테스강을 사람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오른쪽 팔 아래 물단지 히드라에서 유프라테스 강물이 흘러나온다. 2-3세기. 가지안테프 제우그마 모자이크 박물관

◆아랍 이슬람, 돌궐(튀르키예), 십자군, 몽골 일칸국 지배 역사

가지안테프 일대는 동로마 제국 관할에서 661년 다마스커스에 수도를 둔 아랍 이슬람 움마야 왕조 손으로 넘어갔다. 이후 바그다드에 수도를 둔 이슬람 압바스 왕조, 카이로에 거점을 둔 이슬람 툴룬 왕조등을 거쳐 1067년 돌궐족 일파 셀주크 튀르키예의 통치를 받았다.

31년만인 1098년 잠시 서유럽 십자군이 차지하지만, 13-14세기에는 징기스칸의 손자 훌라구가 페르시아 땅에 세운 몽골 일칸국의 지배를 받았다. 이어 이집트 거점 마물루크 왕조를 거쳐 1516년 오스만 튀르키예의 손에 넘어가 오늘에 이른다. 알렉산더 이후 오랜 기간 다양한 민족과 문화의 융합 역사도시 가지안테프가 지진 피해를 딛고 속히 부활의 날갯짓을 펴기 바란다.

역사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