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내가 교수로 살았던 이유

입력 2023-03-01 06:30:00

손수민 재활의학과 전문의
손수민 재활의학과 전문의

지난 1월, 오랫동안 몸담았던 영남대학교를 사직했다.

나는 원래 교수로 살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학생 시절, 강의, 진료, 연구를 다 해야 하는 의대 교수님들을 불쌍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내가 18년간 의대교수로 살았다. 역시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법이다. 사실 이전에도 사직을 고민한 적은 있었다. 5년이 지나 결국 사직했지만 당시 교수로 남았던 이유는, '사람들이 내 목소리를 더 들어줄 것 같아서'였다. 재활의학과 의사는 의도치 않아도 의료와 복지의 영역을 넘나들게 되기가 쉽다. 사람들이 장애인에 대해 갖는 편견은, 아무리 치료가 잘되어도 이 사회의 일원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거대한 벽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이런 얘기를 하기엔 교수가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라는 게 내가 교수로 살았던 가장 큰 이유였다.

진수가 진료를 보러 왔다. 4살 때부터 진료를 왔고 수능이 끝나고는 대학생이 되어 온, 자랑스러운 환자다. 진수는 뇌성마비 환자지만 인지는 정상 수준이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담임선생님께 이틀에 한 번꼴로 계속 전화를 받는다고 어머니가 걱정을 하셨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장애를 가진 진수를 담임선생님이 부담스러워하시는 것 같다고 하셨다. 내 기준으로 진수는 스스로 학교생활을 문제없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1학년 때도 도우미 선생님없이 잘 지냈던 터였다.

나는 담임선생님께 편지를 썼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진수를 담당하고 있는 영남대병원 교수 손수민이라고 합니다. 선생님이 평소 진수에게 보여주시는 관심과 애정은 진수 어머님께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진수는 선천성 뇌출혈 때문에 힘이 약해서 양손을 써야 하는 가위질이나 뜀틀 같은 체육활동은 다소 힘들지만 최근 병원에서 한 인지나 언어, 주의집중기능평가에서는 정상수준을 보입니다. 다만 진수 스스로 본인의 장애에 대해 정서적으로 다소 위축되어 있어 친구관계나 학교생활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러한 부분을 응원해 주시고 기다려 주신다면 진수는 선생님의 자랑스러운 제자 중 한 명이 될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진수에 대해 궁금하거나 의논하실 내용이 있으면 언제든 편하게 연락 주세요." 그리고 의료인이 아닌 선생님도 이해하기 쉽게 정상 MRI와 함께 진수 뇌 MRI의 출혈 부분에 빨간 화살표를 표시해서 편지에 넣었다. 이후 어머니는 선생님이 진수를 좀 더 이해해 주시는 것 같다고 하셨고 보호자분들 사이에 소문이 났는지 담임선생님께 편지를 써 줄 수 있냐고 어머니들이 종종 요청하시곤 했다.

사실 어쩌면 이런 부분은 의사가 할 일이다, 아니다 라고 딱 선을 긋기 애매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수가 이 사회에 자리매김하는 데 가족과 친구들, 선생님과 의사 모두가 협력해야 하는 건 분명하다. 그리고 난 이 일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18년 동안 교수를 했다. 교수 생활을 하면서 배운 것도 많고 얻은 것도 많다. 하지만 이젠 교수가 아니라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내 인생의 3번째 장을 열려고 한다. 아마 나는 모험심이 강한 모양이다. 교수 손수민이든, 원장 손수민이든, 영향력이 크든 작든, 힘들어하고 있는 누군가의 손을 잡아 줄 수 있기를 바라며 나의 하루를 시작한다.

손수민 재활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