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욕설은 기본, 만취 환자와의 전쟁터…대구의료원 주취자응급의료센터

입력 2023-02-20 16:50:20 수정 2023-02-20 21:35:52

이달에만 벌써 75명 이송…지난달보다 50% 이상 증가
만취 환자 시설로 인계하거나 알코올 중독 치료 받을 수 있는 체계 구축 시급

지난 18일 오전 2시 50분쯤 대구의료원 주취자 응급의료센터. 119대원이 의식을 잃은 30대 만취 환자를 응급실 침상으로 옮기고 있다. 김주원 기자
지난 18일 오전 2시 50분쯤 대구의료원 주취자 응급의료센터. 119대원이 의식을 잃은 30대 만취 환자를 응급실 침상으로 옮기고 있다. 김주원 기자

18일 오전 1시 30분쯤 대구의료원 주취자 응급의료센터에 '삐-빅 삐-빅' 알람이 울리자 당직 근무 중인 대구 서부경찰서 소속 박모(39) 경사가 손에 의료용 라텍스 장갑을 끼기 시작했다. 경찰의 보호를 받아 센터에 도착한 40대 여성이 오자마자 입구에 놓인 쓰레기통에 구토했다. 박 경사는 항상 있는 일이라는 듯 토사물이 담긴 쓰레기통을 치웠다.

의료진과 경찰은 환자의 소지품을 확인해 신원을 파악한 후 응급실 입구에 있는 환자분류소로 옮겼다. 간호사는 환자의 혈압과 맥박, 호흡 등을 확인했고 외상이 있는지도 살폈다. 환자의 입술 안쪽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계단에서 부딪혀 찢어진 상처로 보였다. 당직 의사인 조용준(35) 응급의학과장의 진료가 끝나자 수액을 맞고 이내 잠들었다. 토사물 냄새와 술 냄새가 격리실을 가득 메웠다.

지난 2014년 문을 연 대구의료원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는 지역에서 유일한 주취자 의료 서비스 전담센터다. 경찰관과 의료진이 함께 근무하며 알코올 중독이 의심되는 상습 주취자와 거리에서 발견된 환자, 노숙인 등을 보살핀다.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생긴 이곳은 문을 연 후 지금까지 모두 9천729명의 환자를 돌봤다. 하루 평균 3명꼴이다.

오전 2시 50분을 지나자 두 번째 환자인 30대 여성이 119구급차에 실려 왔다. "눈 떠 보세요"라는 의사의 말에도 아무런 미동조차 없었다. 환자는 119구급대원들에 의해 응급실 침상으로 옮겨졌다. 쓰러지기 전 발작이 있었다는 남편의 말에 의료진은 피검사와 CT 촬영을 진행했다. 검사 결과 이상이 없다는 의료진의 말에 남편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되고 날씨도 점차 풀리면서 대구의료원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는 만취 환자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응급의료센터를 방문한 만취 환자는 이달 들어 75명이 넘었다. 지난달 48명보다 56.25% 늘었다. 의료진은 사명감으로 이들을 대하지만, 대구 8개 구·군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만취 환자가 센터로 보내지는 만큼 고충도 크다.

1년째 응급의료센터에서 근무 중인 간호사 오모(40) 씨는 "지난주에는 화요일 오전에 이송된 만취 환자가 뇌 손상이 있어 보여서 CT 촬영을 해야 했지만, 거듭 난동을 부리는 탓에 결국 돌려보내야 했다"며 "당시 환자가 휘두르는 팔에 의료진과 경찰이 맞을 뻔했다"고 털어놨다.

경찰과 현장 의료진은 만취 환자들이 시설에 들어가거나, 알코올을 끊을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경사는 "경찰과 의료진은 환자가 최소한의 치료라도 받고, 독립보행이 가능한 상황까지 병원에 남아있게 하려고 하지만, 조금의 강제성이라도 보이면 신체구금이라고 해석될 우려가 있어 돌려보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용준 응급의학과장은 "만취 상태로 센터에 오시는 분들 대부분이 마땅히 지낼 곳이 없거나 돌봐줄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다"며 "70~80%는 늘 오던 분들이 오시는데, 병원에서 치료와 보호조치가 이뤄진 후 퇴원했을 때 인근 보호 시설로 인계가 이뤄지거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체계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첫 번째 환자는 수액을 다 맞아갈 무렵인 오전 3시 50분쯤 잠에서 깨어났다. "일어날 수 있겠냐", "현관 비밀번호가 기억나시냐"는 의료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환자는 경찰의 부축을 받아 병원 앞까지 이동했고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오전 4시 30분이 되자 두 번째 환자도 잠에서 깨어나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며 남편과 함께 택시를 타고 집으로 이동했다. 응급실은 잠깐의 평온이 찾아왔다.

지난 18일 오전 1시 30분쯤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로 이송된 40대 만취 환자에 대해 의료진이 혈압과 맥박, 외상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김주원 기자
지난 18일 오전 1시 30분쯤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로 이송된 40대 만취 환자에 대해 의료진이 혈압과 맥박, 외상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김주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