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30여년 만에 폐지한 '중간종료 방식'…승객-버스기사 온도차 극명

입력 2023-02-19 16:00:41 수정 2023-02-20 07:46:15

기사 "차고지까지 돌아가면 새벽 1시 훌쩍 넘어"
승객 "중간에 내려 걸어가지 않아도 돼 편리"

18일 밤 10시 30분 칠곡우방타운에서 출발해 종점인 시지지구까지 가는 724번 버스의 막차. 버스 내부에 있는 정류장 안내판에
18일 밤 10시 30분 칠곡우방타운에서 출발해 종점인 시지지구까지 가는 724번 버스의 막차. 버스 내부에 있는 정류장 안내판에 '시지(종점)까지 운행합니다'라는 문구가 표시돼 있다. 한소연 기자

"승객들은 편하겠지만 시내버스 기사들은 종점에 갔다가 차고지까지 돌아가야 하니 퇴근 시간이 더 늦어집니다. 한쪽이 편의를 얻으면 다른 한쪽은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어요."

18일 밤 10시 30분 대구 북구 관음동의 한 시내버스 차고지. 724번 시내버스 기사 김상우(60) 씨가 칠곡우방타운에서 출발해 종점인 시지지구까지 가는 막차의 운전대를 잡았다. 이날 밤부터 대구 시내버스는 밤 11시 30분이 되면 종점이 아니어도 중간에 운행을 끝내는 '중간종료 방식'을 폐지하고 종점까지 운행하기로 했다. 김 씨는 그 첫 주자가 됐다.

어둑한 차고지에서 만난 김 씨는 종점까지 운행하는 것에 기대를 보이면서도 퇴근 시간이 늦어지는 것을 우려했다. 김 씨는 "724번은 기존보다 30분 더 운전하면 되지만 2시간 30분 거리를 주행하는 939번 버스는 종점까지 갔다가 차고지로 돌아오면 새벽 1시가 훌쩍 넘는다"며 "도착 시간이 0시 20분을 넘기지 않도록 조정한다고는 했지만 종점까지 갔다가 차고지로 돌아와야 하는 기사들의 고충은 시간표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17년째 시내버스를 운행하고 있는 기사 황용섭(57) 씨도 "서울은 막차가 종점까지 돌아와도 수요가 있으니 괜찮지만 대구는 밤 11시가 넘어가면 출발지에서 종점까지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 자체가 많이 없다"며 "시내버스 연료비 지원이 세금으로 이뤄지는 만큼 합리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북구 관음동에서 출발한 버스는 중간 지점인 2.28기념중앙공원까지 약 1시간을 주행하는 동안 2~3명 정도만 버스를 이용했다. 시내인 2.28기념중앙공원 정류장에서 7명이 탑승하긴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3명만이 버스에 남았다.

반면 버스를 이용하는 시민들은 바뀐 방식을 반겼다. 2.28기념중앙공원앞 정류장에서 승차한 시민 하재혁(23) 씨는 종점인 시지지구 직전에서 하차했다. 하 씨는 "오늘부터 종점까지 간다는 것을 알고 탔다"며 "원래 밤 11시 30분에 운행이 멈추면 내려서 지하철을 타거나 택시를 탔는데 이제는 살고 있는 동네까지 버스로 갈 수 있으니 편하다"고 말했다.

대륜중고등학교앞 정류장에서 하차한 승객 오모(23) 씨 역시 "중간종료 방식 때는 중간에 내려서 걸어가곤 했다"며 "이제는 버스가 종점까지 가니 그럴 필요 없어서 좋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종점까지 갈 일이 없어 당장의 혜택은 없는 시민도 바뀐 방식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경신고등학교 앞 정류장에서 내린 승객 김지현(23) 씨는 "종점까지 갈 일 없는 동네에 살아서 큰 혜택인지는 모르겠지만 종점 근처에 사는 지인들은 바뀌는 운행 방식을 반기고 있다"며 "만약 종점까지 갈 상황이 생기면 편리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