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따라 함흥으로 간 것이 생이별 될 줄이야…100살을 넘기고 보니 그립다 못해 마음이 아프다"
나의 여동생 기순아, 헤어져 지낸 지 벌써 78년이나 지났구나. 살아는 있는지, 살아 있다면 어떤 모습일지. 너무 궁금하지만 만날 방법이 없으니 참으로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돌이켜보니 너와 나의 어린 시절은 참 슬프고 힘든 시절이었더구나. 내가 7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3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우리 남매들은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살 길을 찾아야 했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내가 나이 7살이고 네가 4살 때 어머님이 돌아가시자 계모님을 맞이하였을 때, 계모님은 성격이 과격하여 화가 나면 너에게만 화풀이를 했었지. 화가 나면 너를 때리고 꼬집으며 괴롭혔고, 아파서 울면 소리 내고 운다고 더 때렸고…. 그럴 때마다 집 뒤에 몰래 숨어서 울음을 삼켜가며 "엄마 엄마 우리 엄마 우리를 두고 왜 죽었소 이왕에 죽을 바엔 우리도 함께 데려가지" 하면서 울던 너의 모습이 지금도 귀에 쟁쟁, 눈에 삼삼하구나
내가 나이가 13살이고 네가 10살 때, 아버님마저 돌아가시자 가난에다 돌봐줄 가까운 친척도 없어 남개(나무)도 돌에도 어찌할 곳 없는 외롭고 불쌍한 신세가 되자 내가 15살이고 네가 12살 때 결국은 가정은 파탄되고 너는 남의 집 정지아(부엌데기)로 주고 나는 일본으로 가면서 울면서 헤어졌지. 3년 후엔 네가 15살 때 너와 남동생 기열이를 일본으로 데려와 한 직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지.
그 때 '반드시 성공해서 가정을 이루리라. 흩어진 우리 남매도 한 집에 모아 잘 살아보리라'고 이를 악물고 다짐하며 일본에서 일했지. 3년 정도 지나니 자리를 잡게 되자 당장 너와 남동생 기열이를 도쿄로 데려와서 같은 직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했다. 4년 후 기순이 너는 직장에서 만난 나의 유일한 친구 한대웅과 19살 때 결혼을 하게 되었지.

일본의 패망이 다가오는 게 느껴지자 당시 조선 사람들은 한반도로 돌아가기 시작했는데, 이게 우리를 갈라놓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나는 고향인 밀양으로, 너는 남편을 따라 함흥으로 가게 된 것이 우리 남매에 생이별이 될 줄이야. 해방 이후 38선이 생기면서 연락할 방법이 끊겨버렸다. 그 전만 해도 편지 한두 통은 오고갔었는데 그 때부터는 편지는 고사하고 생사 확인조차 할 수 있는 방법마저 사라져 버렸어.
시간이 지나고 네가 이북에서라도 잘 살고 있는지 확인해 보려고 여러가지 방법을 써 봤단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있을 때 신청해 봤지만 너에 대한 소식은 없었어. 다른 방편으로 너의 생사를 알아보려고도 노력했다. 다행이 이북에서 나름 잘 살고 있다고 사람들로부터 전해 듣기는 했단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였던지라 만남을 시도하는 게 서로에게 좋은 일이 안 될 것 같아 조심스러웠다.
만나지 못하니 그리움만 늘어가고, 나이도 100살을 넘기고 보니 만날 수 있을거란 희망도 갖지 못하겠구나. 너도 살아있으면 곧 100살이 되지 않니. 그래서 더더욱 희망을 가지기 어려워 마음이 아프다. 너를 제일 그리워하고 너 찾으려고 제일 노력했던 기열이는 5년 전에 벌써 세상을 떠났어. 안타까운 일이지.
요즘도 네 사진을 머리맡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한 번 씩 보곤 한다. 얼마 전 설날이었는데 그 때도 참 네 생각 많이 나더라. 만약 우리가 만났다면 너와 내가 살아온 힘들었던 시절을 돌아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참 많이 나누었을텐데…. 기순아, 우리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만나게 되면 그 옛날 이야기와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며 회한을 풀고 싶구나. 이 글을 보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너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항상 그대로임을 알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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