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예정된 미래, 고독사

입력 2023-01-12 18:07:54 수정 2023-01-13 18:01:33

김희경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교수

김희경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교수
김희경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교수

최고 시청률 26.9%로 막을 내린 '재벌집 막내아들'은 2022년 최대 흥행작이다. 그런데 '재벌집 막내아들'은 네티즌이 선정한 '최악의 엔딩 드라마' 1위로 뽑히기도 했다. 원작 웹소설 버전에서 윤현우는 진도준으로 환생한 후, 이전 생에서의 경험과 지식을 기반으로 순양그룹을 차지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반면, 드라마 버전에서 진도준의 생은 의문의 사고로 종결되고, 윤현우의 삶이 다시 시작되는 것으로 끝난다. 진도준의 승리에 몰입해 있던 시청자들은 윤현우가 살아 돌아온 엔딩에 만족하지 못하는 듯하다.

드라마와 웹소설의 엔딩이 달라진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설정값의 차이다. 원작 버전에서 진도준은 미래에서 얻은 능력과 경험, 그리고 정보를 십분 활용해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현재와 미래를 변화시킨다. 하지만, 드라마 버전은 다르다. 진도준으로 환생한 윤현우는 어머니의 죽음, 진도준 본인의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미래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드라마 버전에서의 진도준은 원작에서의 진도준보다 훨씬 고독한 캐릭터이다.

실제 현실에서 우리 역시 엔딩의 모습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작년 12월 14일 보건복지부는 고독사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도 고독사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으며, 고독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미국의 CNN 방송에서는 한국어 발음을 그대로 옮긴 'godoksa'라는 표현을 소개하며 한국 중년 남성들의 고독사 문제를 집중 조명하기도 했다.

고독사 문제가 예정된 미래임을 우리는 일본의 사례를 통해 예견할 수 있다. 고독사(孤独死, こどくし)라는 말은 일본에서 처음 사용됐다. 규슈대학교 오독립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일본에서 미디어 등을 통해 일종의 사회적 문제로 고독사라는 말이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된 것은 1970년을 전후였다. 1973년 고독한 죽음을 맞이하는 노인들에 대한 실태조사가 처음으로 실시됐다. 하지만, 이후로 고독사 문제는 오히려 본격화됐다. 한신대지진 이후 가설주택이나 아파트 단지에서의 고독사 문제가 잇따르면서 고독사는 이제 노인들만의, 혹은 사회적 취약계층만의 문제가 아닌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2005년부터 출생자 수보다 사망자 수가 더 많아지는 '다사사회'(多死社會)로 접어들면서 이러한 흐름은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굳이 2회차 인생을 살지 않아도, 한국 사회에서 고독사 문제는 더욱 본격적인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임을 예견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은 일본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인구 고령화가 진전되고 있다. 또한,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 체제로 빈곤 문제를 해결해 왔던 노동 관행에 기대어 경제 성장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실직과 같은 사회적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공적 기반의 구축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며, 돌봄의 책임과 부담은 고스란히 가족에게 전가되어 왔다. 사회적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공적 기반이 만들어지지 못한 상황에서 실직을 하거나, 병에 걸리고, 가족에게 도움도 받지 못할 형편인데, 공적 지원체계조차 부실하다면 그 끝은 고독사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포괄적인 공적 지원체계를 구축하여 고립된 삶들을 돌보지 않은 채, 고독사만을 문제시하는 방식으로는 고독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문제되지 않은 죽음을 만들기 위해 죽음 직전의 상황만을 조정하는 데 그칠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의 만족스러운 엔딩을 위해 고독사 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대처해야 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