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인화의 온고지신] 지방대학은 다시 살아난다

입력 2023-01-12 13:30:00 수정 2023-01-12 17:09:57

지역의 폐교된 대학에 가보았다. 건물마다 사람이 드나들지 않은 공간의 맵싸한 먼지 냄새가 코끝에 끼쳐왔다. 4년 전 문을 닫았는데 대학에는 아직 서류들이 개펄의 진흙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잡초와 빗물과 얼음과 누수가 침식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마치 인간이 세상에 남기는 흔적이 모두 이러하다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대학이 문을 닫는 사태는 대학이 속한 지역사회 전체를 어둡게 한다.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지면 그들의 생활권이, 그들을 에워싸고 있던 한 세계가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언론에서는 저출산으로 학령인구가 줄었다고 한다. 지역에 좋은 일자리가 없어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간다고 한다. 대학이라는 조직은 원래 효율적인 의사결정이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미래는 기, 승, 전, 지방대학 소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간 사회는 그렇게 간단히 환경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인간은 희망하고 절망하고 또 희망한다. 그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이다. 우리는 자멸적인 냉소주의를 거부하고 내 인생이 선물이며 축복임을 계속 상기하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알프레드 화이트헤드는 '예측 대응 과정'이라는 진화론 모델을 설파한 바 있다.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를 예측하면서 자신을 둘러싼 환경, 조직, 개인의 활동에 대응하여 스스로 변화한다.

미래는 끝없이 복잡성이 증대되는 변화이지만 인간 역시 그런 변화를 처리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끊임없이 발전시켜 나간다. 인간은 항상 열려 있는 존재이며 과정적인 존재이다.

한국인들은 예측 대응의 높은 역동성을 간직한 국민이다. 절대빈곤으로 인한 적화 위협. 오일쇼크. IMF 환란. 미국 금융위기. 우리기 대응해야 했던 위기 상황은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그때마다 더 강한 초혁신 체질로 거듭났다.

저출산 인구 감소는 결코 절망적인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이미 연 20만 명 이상의 외국인 노동자가 필요한 초국적 경제권을 형성하고 있다. 국제협력을 통해 전 세계의 노동, 자본, 기술을 하나의 단일 단위로 받아들이는 트랜스 내셔널 사회로 들어온 것이다.

인재가 국적을 선택하고 기업이 인재를 찾아가는 잡 투 피플(Job to People)의 시대다. 인재는 기회가 있는 곳으로 간다. 한국은 한류의 상호문화주의적 개방성과 4차 산업 혁명의 선도성을 가진 국가다.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고 이민정책이 개선되면 한국은 개발도상국 핵심 인재들에게 성장의 기회를 주는 나라가 될 수 있다. 작은 미국이 되어 활기 넘치는 다문화 국가로 발전할 수 있다.

일자리로 인한 청년 인구 유출 역시 절망적인 문제가 아니다. 중앙정부는 이런 식으로 지방이 소멸하는 사태를 방치할 수 없다. 어떻게든 국비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2010년 292조에 불과했던 정부 예산은 2023년 639조가 되었다. 국비를 전략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여력이 커진 것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4차 산업 혁명의 대세는 수도권 중심의 대학 서열화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초거대 규모 인공지능은 2020년 6월 11일 지피티 쓰리(GPT-3)에서 2022년 11월 30일 챗 지피티(Chat-GPT)까지 성능이 기하급수적으로 우상향되어 왔다.

오늘날 챗 지피티는 방대한 주제의 대화, 문제 풀이, 글쓰기, 음식 조리, 긴 글 요약, 코딩, 코드에 대한 설명, 요청에 따른 코드의 개선이라는 8가지 주요 기능을 수행한다. 생각해보면 이 8가지 주요 기능은 사실 인간의 지식 노동 거의 모두를 지원하는 것이다.

포크레인이 발명되었는데 학생들에게 삽질을 가르칠 수는 없다. 이제는 학생들이 논문과 리포트를 쓰기 전에 먼저 챗지피티에 그 주제로 명령어를 넣어보는 것이 당연하고 기본적인 전제가 된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인공지능을 이용해 공부하고 졸업 후에는 인공지능을 이용해 일하게 된다. 대학은 이러한 인공지능 실증(AI-Proof)을 가르쳐야 한다.

초거대 규모 인공지능의 파운데이션 모델을 이루는 핵심 알고리즘은 누구에게나 그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상자와 같다. 인간의 학문은 이제 블랙박스의 입력값과 출력값을 공학적으로 맞춰보는 정합의 작업으로 변해간다.

이 새로운 과제 앞에 모든 대학은 평등하다. 수능 성적 최상위의 의대생, 카이스트 학생이라고 해서 인공지능 실증을 잘한다는 보장이 없다. 과거 성리학에 통달했던 중세 수재들이 삼각함수의 다변수 방정식을 배워야 하는 근대식 학교에서 눈앞이 캄캄해졌던, 그런 대전환기가 다시 찾아온 것이다.

경북은 일찍이 국가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산업화를 통한 근대화, '수출입국'에 의한 경제 발전을 선도했던 지역이다. 그러나 최근 비수도권 산업단지의 경쟁력이 약화되는 추세에 따라 어쩔 수 없는 변화를 겪었다. 기업들은 지역 밖으로 이전했고 산업단지 체제는 노후화되었으며 자동화에 의한 고용 감소가 일어났다.

인공지능 실증 시대는 경북에 찾아온 기회이다. 경북이 인공지능 실증을 중심으로 고등교육을 개선하면 그 졸업생들은 4차 산업 혁명 환경에서 생존하기에 체질이 너무 허약한 경북의 정보 근육을 강화시킬 것이다. 인재를 따라 기업이 모이고 경북에도 수도권과 대등한 고부가가치 첨단 산업들이 들어설 것이다.

지방대학은 다시 살아난다. 스탠포드 대학도 지방대였고 폐교 직전의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던 1951년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캠퍼스 부지에 산학 협력 단지를 조성한 것이 실리콘밸리의 시작이었다. 대학이 살아나자 지역이 살아났고 세계가 선망하는 지능정보산업의 메카가 되었다. 캘리포니아의 촌동네에서 일어난 일이 경북에도 일어날 것이다. 지방대학은 희망하고 진화하고 적응할 것이다.

이인화 전 이화여대 교수,소설가
이인화 전 이화여대 교수,소설가

이인화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