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새해에 가슴이 웅장해지셨습니까?

입력 2023-01-08 21:57:01

이상헌 뉴스국 부국장
이상헌 뉴스국 부국장

荒村建子月(황촌건자월·황량한 마을에 새해가 밝았지만)

獨樹老夫家(독수노부가·늙은이 사는 집엔 나무 한 그루 서 있네)

蜀酒禁愁得(촉주금수득·촉에서 빚은 술이 있어야 시름 막을 텐데)

無錢何處賖(무전하처사·돈이 없으니 누가 외상으로 술을 주려나)

새해를 노래한 시 한 수 읊어본다.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당나라 시대 두보의 '초당즉사'(草堂即事) 중 일부다. 평탄치 못한 생을 보냈던 그는 '안사의 난'을 피해 쓰촨성 청두로 온 뒤 교외에 초가집(완화초당·浣花草堂)을 짓고 은거했다.

새해를 맞는 자세는 각자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불행 끝 행복 시작을 다짐하며 투지를 불태울 테지만 누군가는 오늘보다 못한 내일을 걱정하며 진저리치리라. 모진 삭풍 들이닥치는 초가에 앉아서도 백성들의 빈한(貧寒)을 걱정하는 두보 같은 이도 있겠지만….

계묘년 들어 경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수출은 흔들리고, 살아나는 듯했던 내수마저 침체에 빠지는 등 어느 때보다 엄혹한 시기가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위기가 고조되면서다.

당장 주요 기업들의 올해 신년사에서 경각심이 느껴진다. 기업 경영분석 전문연구소인 'CEO스코어'가 국내 10대 그룹 신년사를 조사한 결과 '위기'는 사용 빈도에서 4위로 급상승했다. 2021년과 지난해에는 10위권 안에도 들지 못했던 키워드였다.

실제로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3고' 탓에 경제지표는 비관적이다.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대에 그친다는 예측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글로벌 금융위기,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다.

저성장 난기류에 대통령실과 행정부에도 비상이 걸렸다. 윤석열 대통령과 총리, 경제부처 장관들은 신년사에서 한목소리로 대책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비효율 요인을 제거하고 차세대 먹거리를 육성하는 구조 개혁의 계기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패러다임 변화를 추진하겠다는 '선언'이 빠져 아쉽다. 윤 대통령은 위기를 수출로 돌파해야 한다며 해외 수주 500억 달러 프로젝트, 무역금융 역대 최대 규모 확대 등을 언급했다. 외교의 중심을 경제에 놓고, 수출 전략을 직접 챙기겠다고도 했다.

그런데 세계가 불황에 직면한 판에 우리만 수출을 늘릴 수 있을까? 대통령이 꼽은 해외 인프라 건설, 원전, 방산 분야에서 최근 낭보가 이어졌다곤 하나 박정희 시대처럼 수출입국(輸出立國)을 외치는 건 신년사 초안을 썼을 참모들의 '심기 경호'에 불과하다.

양적 성장이 한계에 도달한 지금 성장담론은 실현하기 힘든 약속이다. 문재인 정부가 각종 경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처럼 억지로 숫자를 꿰맞추지 않으면 허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1%대 아니 0%대 성장이라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대신 노동·교육·연금 등 각종 제도와 시스템 혁신을 통한 성장잠재력 제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대통령 신년사처럼 기득권 유지와 '지대 추구'(地代 追求)에 매몰된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 우리의 성장 동력을 갉아먹고 있는 불평등과 불공정 완화가 그 시발점이다.

정책에 정답은 없다. 기대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과정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창조적 파괴 말고는 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