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정 소설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어린 아들, 사랑스러운 아내와 함께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성공한 비즈니스맨 료타가 6년간 키운 아들이 자신의 친자가 아니고 다른 아이와 바뀌었다는 병원의 전화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친아들이건 아니건 료타는 이미 한 아이의 아버지인데, 영화 제목은 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일까?
쓰기의 기술을 어느 정도 익히고 조금의 타고난 재능이 있으면 소설을 쓸 수 있다. 거기에 약간의 운이 따라준다면 상을 받거나 지면에 작품을 발표하며 등단이 가능하다. 소설을 쓰고 등단한 사람을 우리는 소설가라 부른다. 그러니, 그들은 소설가일까?
다른 문학 장르에 비해 유독 소설가에겐 '신념'이나 '각오' 같은 마음가짐에 대한 지침서가 많고, 실제로 많은 소설가가 그런 '비장함' 비슷한 것을 품고 글을 쓴다고 나는 생각한다. 소설가가 소설을 쓰는 일은 어떤 면에서 료타가 아버지가 되어가는 과정과 닮아있다. '인물을 만들고 키우며 책임을 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자신과 달리 모든 면에서 뛰어나지 못했던 케이타가 자기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료타가 맨 처음 내뱉은 말은 "역시, 그랬었군."이다. 케이타에게 '그 집 어른들을 아빠, 엄마라고 부르며 잘 적응하는 것이 미션'이라며 돌려보내고 친아들을 데려온다. 그러나 친아들 류세이는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라고 하자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묻는다. "왜 그래야 하죠?" 반면, 료타를 믿고 미션을 충실히 이행하는 케이타는 점점 배신감을 느낀다.
소설가는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인물을 낳는다. 그것은 자식이기도 부모이기도 하고, 심지어 외계인이나 로봇이기도 하다. 그렇게 태어난 인물들은 그러나 소설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생명을 가진 그것은 그들의 의지대로 나아가며, 사건을 만나고 해결하며 나름의 인생을 경험한다. 캐릭터들은 소설가의 통제를 벗어나고, 자기 손을 떠난 인물들로 인해 소설가는 무력해진다.
이제 서로가 제법 친해졌다고 느끼던 중, 부자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을 같이 보게 된다. 그러나 떨어지는 별에 친아들 류세이가 간절히 빈 소원은, 그가 한참 무능하고 부족하다고 여겼던 그 전 '아빠, 엄마에게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 밤 료타도 우연히 케이타가 찍은 사진들을 보게 되는데, 사진기 속에는 사소하고 대수롭지 않은 자신의 면면이 가득 담겨있었다. 케이타의 시선과 그 시선에 녹아있는 무한한 사랑을 보면서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 아들을 찾아간다. 케이타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며 료타는 그제야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겼다는 이유로 료타가 아버지가 아니듯, 소설을 쓰고 등단했다고 해서 소설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소설가는 이야기 속 인물들의 생존과 실재에 관여하며 존재 이유를 부여한다. 그들이 악당이든 영웅이든, 잘났든 못났든 모두 작가의 분신임이 틀림없다. 애정으로 캐릭터들을 매만지고, 많은 시간을 인물들과 함께 고민하며, 그들의 세계를 만들고 인생에 끼어든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다할 때 비로소 '그렇게 소설가가 된다'.
나는 아직 '소설가가 되어 가는' 여정 그 어디쯤에 있고, 이미 그 길을 걸어 '그렇게 소설가가 된' 선배 소설가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이로써, 글을 쓰고 창작을 한다는 것은 오직 '영혼(만)이 득을 보는 직업'으로 시작해 진정한 글쟁이로 나아가는 '그렇게 소설가가 된다'를 끝으로 석 달간의 지면을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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