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환의 세계사] 2400년 전 동서양의 축구

입력 2022-12-09 14:30:00 수정 2022-12-09 18:14:36

허벅지로 축구공을 다루는 그리스 청년. 무덤에 넣은 묘지석의 일부다. 축구 장면을 담은 가장 오래된 유물이다. B.C400년.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허벅지로 축구공을 다루는 그리스 청년. 무덤에 넣은 묘지석의 일부다. 축구 장면을 담은 가장 오래된 유물이다. B.C400년.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이 강호 포르투칼을 꺾으며 일궈낸 역전 골은 고대 그리스 연극(演劇)처럼 드라마틱(dramatic)했다. 마치 허구의 서사를 쓰듯, 1-0으로 지다 1-1 동점에 이어 후반 여유시간에 2-1 극적 역전골을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공을 달고 70여m를 내달린 손흥민의 폭발적인 질주, 뒤따라온 황희찬을 흘깃 바라본 예리한 눈빛, 수비수 가랑이 사이로 영리한 어시스트. 찰나의 순간에 이를 받은 황희찬의 정확하고 강력한 발길질에 2022 월드컵 공인구 '알 리흘라'가 골망을 찢을 듯 흔들었다.

브라질 골망을 가른 백승호의 일품 슛도 마찬가지다. 선수들의 정교한 발놀림에 춤추던 '여정'이란 뜻의 '알 리흘라'를 들고, 2400여 년 '여정'을 거슬러 고대 그리스로 날아간다.

◆2022 카타르에서 2400년전 고대 그리스 아테네로

구름이 낮게 깔리고 흐린 날이 많은 지중해의 12월. 그리스 수도 아테네로 가보자. 이오니아 양식 기둥 4개를 전면에 세운 테트라 스타일 그리스 신전을 모방한 네오 클래식 양식의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수많은 그리스 도자기와 조각이 전 세계에서 그리스 문명을 동경하며 찾아온 탐방객을 매혹시킨다.

그 가운데서도 단연 눈에 띄는 유물은 B.C 5세기 완성된 그리스 고전기 조각들이다. 인체 해부를 통해 골격과 근육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사실적으로 재현해낸 조각 예술은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낸다. 희노애락의 감정을 넘어 인간의 숭고한 정신을 얼굴표정에 담아낸 B.C 5세기 그리스 조각은 르네상스를 거쳐 현대 조각의 모태를 이뤘다.

그리스 신화의 주역인 제우스나 아프로디테 같은 다양한 신과 디스코포로스(원반 든 청년) 같은 인체 실물 크기 동상들 숲 사이로 그리 크지 않은 장례 기념 조각이 탐방객의 눈길을 앗아간다. 상체를 약간 숙인 채 허리춤까지 치켜올린 무릎 위로 '알 리흘라'를 꼭 빼닮은 판박이 공을 올려놓고 발기술을 연마하는 그리스 청년. 2400백 여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에게해 고대 그리스와 페르시아만 2022 카타르 월드컵을 이어주는 조각에 두 눈을 크게 뜨지 않을 수 없다.

공다루는 그리스 청년 확대 모습. B.C400년.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공다루는 그리스 청년 확대 모습. B.C400년.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고대 그리스 청년 무릎 위 '알 리흘라'

축구 조각은 망자(亡者)를 기리는 B.C400년 경 묘지석의 일부다. 그리스 도자기의 한 종류인 루트로포스 형태다. 결혼식 첫날밤 목욕물을 담는 데 쓰인다. 아테네 남쪽 해안에 위치한 아테네의 관문 피레우스 항에서 출토됐다. 아테네 북동쪽으로 마라톤 방향에 자리한 험준한 돌산 펜텔리쿠스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연노랑 펜틸레쿠스 대리석은 햇빛을 받으면 금빛으로 반짝여 고급 조각이나 건축 소재로 쓰인다.

1896년 현대 올림픽 부활 장소 아테네 판아테나이카 스타디움도 이 펜텔레쿠스 대리석으로 조성했다. 망자로 추정되는 건장한 청년은 당시 그리스 풍속대로 옷을 벗고 운동에 열중한다. 그리스 남성 용 겉옷 히마티온은 뒤쪽 기둥에 포개뒀다. 청년은 오른손을 몸 뒤로 돌려 왼쪽 손목을 잡고, 상체를 기울여 오른쪽 무릎으로 '알 리흘라' 크기의 공을 다루는 중이다. 월드컵 축구선수들이 몸 풀기 동작으로 공을 무릎으로 툭툭 치는 연습과 판박이다.

◆고대 그리스 14인 공놀이 에피스키로스(하르파스톤)

고대 그리스인들은 B.C5세기 이런 공놀이를 에피스키로스(Episkyros), 혹은 하르파스톤(Harpaston)이라고 불렀다. 경기방식은 먼저 14명 안팎의 선수들로 두 팀을 짠다. 경기장 가운데 요즘 하프라인에 해당하는 스쿠로스라는 흰 선을 긋는다. 흰 선은 각 팀의 뒤에도 있었으니 오늘날 코너킥을 차는 골라인과 같다. 오늘날 축구와 달리 손도 사용할 수 있었다.

골대를 세우고 망을 걸어 골을 넣는 경기는 아니다. 공을 상대팀 머리 위로 던지거나 상대팀 뒤쪽 선까지 보내는 경기다. 굳이 비교하자면 오늘날 럭비와 닮았다. 공을 땅 위에서 튀기는 아포락시스(Aporrhaxis), 공을 공중으로 높이 던지는 오우라니아(Ourania) 경기도 있었다.

고대 아테네나 스파르타에서는 청년들의 체력단련을 국가적 관심사로 삼았다. 강건한 신체의 시민이 유사시 훌륭한 군인이 되기 때문에 스파르타에서는 1년에 한번, 국가 주도로 5개 팀이 참가하는 에피스키로스 대회를 열었다. 대통령배 전국 축구대회라고 할까.

그리스 하르파스톤을 계승해 로마시대 하르파스툼을 즐기는 여인 모자이크. 손을 사용해 공중에서 볼을 다룬다. 4세기. 이탈리아 피아짜 아르메리나.
그리스 하르파스톤을 계승해 로마시대 하르파스툼을 즐기는 여인 모자이크. 손을 사용해 공중에서 볼을 다룬다. 4세기. 이탈리아 피아짜 아르메리나.

◆로마 여인들도 즐긴 공놀이

이탈리아의 지중해 진주 시칠리아 피아짜아르메리나로 가보자. 4세기 초 로마의 대형 빌라 유적 모자이크에 로마 여인들이 알록달록한 공을 손으로 치고 있다. 그리스 운동장 팔레스트라의 공놀이방 스파이리스테리온에서 행해지던 공놀이 풍속이 로마에 그대로 전파됐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비키니 차림의 여성들까지 공놀이를 즐긴 점이 이채롭다.

로마로 들어온 시기는 B.C 2세기 경. 로마에서는 하르파스툼(Harpastum)이라고 불렀다. 팍스 로마나 아래서 공놀이는 지중해 전역으로 퍼졌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시절 이집트 나일 삼각주 도시 나우크라티스 출신 그리스인 아테나이우스는 흥미로운 기록을 남겼다.

자신도 하르파스툼을 즐기는데, 목이 너무 아프다고 하소연하는 내용이다. 축구처럼 헤딩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개를 들고 지속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손으로 공을 친 탓이다.

◆영국서 부활해 19세기 현대축구로 거듭나

로마의 하르파스툼은 중세 영국에서 명맥을 잇는다. 12세기 많은 사람들이 공놀이에 열중하자 금지령도 나온다.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에 정착한 바이킹으로 1066년 영국을 정복해 현대 영국왕실의 시조가 된 노르만 왕조의 헨리 2세(재위 1152년-1189년)가 그 주인공이다.

금지 이유가 흥미롭다. 전투력과 무관한 공놀이에 열광하는 것을 막자는 취지였다. 이후에도 경기가 거칠고 패싸움도 자주 일어나자 튜더 왕조 시기인 엘리자베스 1세(재위 1558년-1603년)때 다시 금지령의 철퇴를 맞는다. 곡절 끝에 영국에서 마침내 1862년 축구 규칙이 만들어지고, 이듬해 1863년 영국 축구협회가 결성돼 현대축구로 거듭난다.

이후 세계 각지로 퍼져 1904년 파리에서 국제축구협회(FIFA)가 탄생한다. 1930년 1회 월드컵이 이번에 우리와 0대0으로 비긴 우르과이에서 개최되고,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이어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 이른다.

지금까지 발굴된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축구공 유물. 털을 뭉쳐 만들었다. 서한시대 B.C206년-A.D8년. 돈황 출토. 난주 감숙성 박물관
지금까지 발굴된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축구공 유물. 털을 뭉쳐 만들었다. 서한시대 B.C206년-A.D8년. 돈황 출토. 난주 감숙성 박물관

◆한나라 시대 2천년전 '알 리흘라'와 고구려 축구

중국 황하 문명의 젖줄, 황하 황톳물이 넘실대는 중국 서부 감숙성의 성도 난주(蘭州)로 가보자. 감숙성 박물관에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축구공이 기다린다. 서한(西漢) 시기(B.C206년-A.D8년) 공이다. 이시기 '알 리흘라'는 털을 똘똘 뭉쳐 가죽으로 싼 공이다.

돈황에서 출토된 이 공 놀이 이름은 축국(蹴鞠). 축(蹴)은 발로 찬다는 의미, 국(鞠)은 손으로 잡을 크기의 가죽 공이다. 가죽(혁, 革)에 쌀을 한 움큼 움킬 만큼의 크기(국, 匊)가 합쳐진 형성문자다. 그러니까, 오늘날 구(球)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전 고대 중국에서 국(鞠)을 붙인 축구를 즐긴 거다.

사마천이 한나라 무제 때 B.C108년-B.C91년 사이 저술한 『사기(史記)』 권69 「소진열전」에 제나라 사람들이 축국(蹴鞠)을 즐겼다고 나온다. 소진이 전국시대(B.C 403년-B.C221년) 인물이므로 그리스 축구 조각과 비슷한 시기다.

『삼국유사』 김춘추전의 공놀이 축국(蹴鞠) 원문을 보자. "蹴鞠于庾信宅前(유신의 집 앞에서 축국을 했다)". 907년 당나라가 멸망하고 들어선 5대10국 시대 3번째 왕조로 석경당이 건국한 후진(後晉, 936년-947년)때 집필된 『구당서(舊唐書)』<동이전>을 보자.

고구려에서 "人能蹴鞠(사람들이 축국을 잘한다)"고 기록해 고구려인들이 축구로 만주벌판을 달궜음을 말해준다. 고구려 축국 실력을 계승한 한국 축구가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선전하길 기대해 본다.

역사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