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조규성 재발견…4년뒤 활약 기대
한국 축구대표팀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여정은 16강에서 멈췄다. 사상 첫 원정 8강 무대를 밟진 못했으나, 뒷맛은 개운하다. 최고의 무대에서도 우리만의 축구가 통한다는 사실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뚝심의 '빌드업'이 이뤄낸 업적
2018년 8월 17일 한국 대표팀을 맡은 파울루 벤투 감독은 '빌드업'이라는 키워드를 대표팀에 이식했다. 수비진에서부터 목표의식이 정확한 패스로 득점을 만들어 낸다는 게 골자였다. 변화의 초반엔 비판이 쏟아졌다. 지난해 9월 아시아 예선 초반 좋지 않은 경기력을 보이자 '빌드업 축구' 무용론과 함께 벤투 감독 조기 경질론까지 일었다.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가 가시지 않는 상황에서 도전한 월드컵 무대.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한국을 조별리그 H조에서 1승 1무 1패(승점 4)의 성적으로 포르투갈(2승 1패·승점 6)에 이어 2위로 16강에 올랐다. 과정은 더 좋았다. 벤투호는 우루과이, 포르투갈과 같은 강호들을 상대로 두려움 없이, 준비했던 '빌드업 축구'를 펼쳤다.
그렇게 벤투호는 이번 대회에서 한국 축구의 새 역사를 세웠다.
먼저 2002 한일월드컵(4강), 2010 남아공월드컵(16강)에 이어 사상 세 번째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원정으로 좁히면 두 번째다. 또 한국을 포함해 일본, 호주까지 16강에 오르며 사상 최초로 아시아 3개 국가가 월드컵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아쉬운 기록도 있다. 주장 손흥민은 이번 대회에서 박지성, 안정환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한국 월드컵 최다골(3골) 기록 경신에 도전했지만, 1도움을 올리는 데 그쳤다. 이번 대회 4경기에 모두 출전한 손흥민은 몇 차례 득점 기회가 있었지만, 상대 골키퍼 선방 등으로 인해 골망을 흔들지 못했다.

◆차세대 스타의 등장…다음 4년 기대하기에 충분
이번 월드컵은 신예 선수들의 활약이 인상 깊었던 대회였다. 특히 이강인(21)과 조규성(24)은 차세대 축구 스타 자리를 예약해뒀다고 할 만큼 국민들에게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
'골든보이' 이강인은 소속팀에서의 좋은 활약에도 불구, 대회 직전까지 벤투 감독의 외면을 받은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러나 이강인은 본선 무대에서 실력을 유감없이 선보이며, 스스로 입지를 넓혔다.
이강인은 1차전인 우루과이전에 이어 가나전에 교체 출전했고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는 선발로 나섰다. 브라질과의 16강전에서도 후반 교체 출전하면서 이번 대회 한국의 모든 경기에 투입됐다. 교체로 나서든 선발로 나서든 이강인은 창의적인 패스와 과감한 드리블로 경기 흐름을 바꿔 놓았다. 특히 가나전에선 교체 투입 직후 곧바로 상대를 압박해 공을 뺏어 낸 뒤, 자로 잰 듯한 '택배 크로스'로 조규성의 첫 골을 도왔다.
이제 이강인은 대표팀에 없어서 안 될 핵심 전력이 됐다. 손흥민이 지난 10년간 대표팀을 이끌었던 것처럼, 이강인은 앞으로의 10년을 책임질 만한 선수다.
조규성도 '깜짝 활약'을 펼치며 한국의 새로운 최전방 공격수로 기대감을 모았다. 애당초 대표팀 주전 공격수 황의조의 후보 자원이었지만, 실전에 강한 면모를 선보이며 주전 자리를 꿰찼다. 조규성은 우루과이와 조별리그 1차전 교체 출전 이후 나머지 3경기 모두 선발 출전하며 대표팀 내 입지를 공고히 했다.
특히 가나와 2차전에서는 아시아 선수 최초로 월드컵에서 머리로만 2골을 넣는 등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한 경기 멀티골을 넣은 한국 선수도 조규성이 처음이다. 여기에 거친 몸싸움과 헤더 경합도 마다하지 않는 투지를 보여주면서 차세대 스트라이커로 존재감을 굳혔다.
첫 번째 월드컵 출전이었다. 다양한 축구 강국과의 대결은 좋은 경험이 됐다. 4년 뒤 열릴 2026 캐나다·멕시코·미국월드컵에서 이들이 대표팀의 중심을 맡는다면 사상 첫 원정 월드컵 8강 진출의 꿈을 꿔볼 만하다.
이강인과 조규성은 이번에 처음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축구강국과의 맞대결은 좋은 자양분이 됐을 것이다. 4년 뒤 열릴 2026 캐나다·멕시코·미국월드컵은 이들의 전성기에 열린다. 우리가 다음 대회에도 희망을 걸 수 있는 이유다.
◆벤투의 유산 이어나가는 게 과제
이제 한국은 다음 4년을 바라봐야 한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한국과의 여정을 끝냈지만, 4년 4개월간의 신뢰를 보답하듯 큰 유산을 남겼다. 한국 축구는 그가 제시한 방향성을 가슴에 새긴 채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벤투 감독은 6일(한국시간) 브라질전 종료 후 "한국 대표팀 감독직 재계약을 안 하기로 했다"고 밝히면서 벤투호의 기나긴 여정이 마침표를 찍었다. 2018년 8월 17일 선임되고 이날까지 달려온 4년 4개월의 시간은 한국 축구 역대 최장수 감독 재임 기록이다.
그렇게 4년 넘게 한 감독 체제로 준비한 한국이 받아든 성적표는 역대 두 번째 원정 16강이다. 그저 운이 좋아 이뤄낸 결과도 아니다. '빌드업 축구'라는 분명한 철학 아래 매 경기 전투적으로 싸웠다. 조별리그에선 강팀을 상대로도 대등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비록 벤투 감독은 떠나지만, 그가 한국 축구에 이식한 철학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주장 손흥민은 브라질전 직후 "감독님의 축구에 대해 한번도 의심을 한 적이 없다"며 "이런 부분을 분명히 인지하고 앞으로 더 잘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벤투 감독과 계약 종료로 협회는 이제 새로운 대표팀 감독을 찾아야 한다. 먼저 국내 감독을 선임할지, 다시 한 번 외국인 감독을 선임할지 정해야 한다. 국내 감독 후보군 중에는 김학범 전 올림픽 축구 대표팀 감독, 최용수 강원 감독 등이 거론된다. 내년 3월 A매치를 치러야 하는 만큼 새 감독 선임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4년여 간의 시간을 쏟은 벤투 감독의 축구는 세계 무대에서 분명한 성과를 냈다. 새로운 사령탑이 '빌드업 축구'를 잘 계승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인물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면 장기적인 투자와 인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카타르 도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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