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규 미술중심공간 보물섬 대표
11월 하순, 겨울로 성큼 들어선 듯 아침 버스를 타면 유리창에 뽀얀 김이 서린다. 차창 너머로 언제 그랬냐는 듯 풍성하던 잎을 다시 땅으로 돌려보내고 앙상한 가지만을 남겨 놓은 채 차디찬 겨울을 보낼 준비를 하는 들판의 헐벗은 나무를 보면서 이 추운 겨울에 나도 잘 견뎌야 한다고 생각해본다.
미국 미시시피주의 주도인 잭슨(Jackson)에 위치한 '이삭 줍기 자원봉사자'(The Volunteers Of Gleaners)는 유통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음식을 수거해 소매 시설과 병원, 교회에 제공하는 비영리 단체다. 이 단체는 음식을 시기적절하게 수집하기 위해 7대의 트럭을 운행하고 있으며, 음식을 보관할 대형 냉장고와 냉동고, 기증된 음식을 재포장할 수 있는 테이블, 싱크대를 갖춘 건물을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운영에 드는 막대한 비용은 정부 기금에 의존하지 않고 개인, 재단, 교회 및 비정부 보조금에서 마련한다고 한다. 매년 6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트럭을 운전하고 배부할 음식을 준비하는 이 단체의 페이스북 커버 사진은 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이다.
84×115cm의 당시로서 작지 않은 이 그림은 1857년 파리의 살롱에서 공개된 즉시 상류층과 중산층으로부터 격렬한 부정적 비판을 받았다. 1848년 프랑스 혁명을 겪은 부유한 계급은 이 그림을 하층 노동자를 미화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삭 줍는 사람들'은 훨씬 많은 수의 하층 계급이 반란을 일으키면 상류 계급이 전복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불온한 그림으로 여겨졌다. 프랑스 대혁명의 공포가 상류층의 마음에 생생히 남아 있었기에 이 그림은 공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구약성서 신명기에는 '곡식을 거둘 때 이삭을 밭에 남긴 채 잊고 왔거든 그 이삭을 집으러 되돌아가지 말라 그것은 떠돌이나 고아나 과부에게 돌아갈 몫이다'는 대목이 있다. 밀레는 구약의 이야기를 그의 그림에 묘사하고 싶었을 것 같다. 이렇듯 밀레의 그림은 당시 비평가들이 호들갑 떨던 정치적 의도를 가진 그림이 아니었다.
벨기에의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Agnes Varda, 1928~2019)는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다양한 종류의 이삭을 줍는 사람들을 등장시켰다. 추수가 끝난 땅에 떨어진 농산물이나 과일을 줍는 사람들, 개펄에서 조개를 줍는 사람들, 도시의 쓰레기통을 뒤져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이 영화는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사는 사회의 내부 모순들은 주워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도시의 홈리스(Homeless)에 대한 묘사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드러나며, 현대 사회의 과도하고 무분별한 소비성은 버려진 물건들을 모아서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을 통해서 고발된다.
추운 겨울이 오면 나무도 살아가기 힘들어진다. 햇빛의 양이 줄어 만들어낼 수 있는 영양분이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봄부터 피워낸 많은 잎을 가지고 겨울을 나기란 매우 힘겹다. 나무는 결단을 내린다. 잎을 떨어내고 봄이 올 때까지 버티는 것이다. 나무는 낙엽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한다고 한다. 여름의 절정인 7~8월까지 활발하게 나오는 성장 호르몬을 9월부터 멈추고 일명 '떨켜층'을 만들어내 잎들을 떨어낸다고 한다. 경이로운 자연의 섭리다. 추운 겨울이 왔다. 지금 내가 사는 이곳의 '이삭'은 무엇이며 누가 이 '이삭'을 줍고 있는가? 왜 그들은 '이삭'을 주워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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